블로그에 심경 토로 "드라마라도 진실 승리하길"
  • 13일 오전 김경만PD는 자신의 블로그에 '고 김성재 사망사건 특종취재한 PD로서'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REPLAY, SBS 싸인 캡처
    ▲ 13일 오전 김경만PD는 자신의 블로그에 '고 김성재 사망사건 특종취재한 PD로서'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REPLAY, SBS 싸인 캡처

    드라마 '싸인'으로 인해 1995년 세상을 떠난 고 김성재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가운데 당시 타살의혹을 처음 제기한 PD가 글을 올려 주목받고 있다.

    13일 오전 김경만PD는 자신의 블로그에 '故 김성재 사망사건 특종취재한 PD로서'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지난 6일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싸인'의 아이돌 살인사건과 관련, 김성재 사건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이후의 일이다.

    김경만 PD는 "김성재 사건의 타살 의혹을 처음 제기한 사람이 나다. 여자친구를 최초로 언론에 공개한 것이 나다. CCTV를 지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처음 취재한 것이 나다. SBS 드라마 '싸인'을 보고 이번엔 블로거로서 기사를 쓰고 싶었지만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있었다"며 "사실 무서웠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무섭다. 날 바라보며 '김경만 피디시죠?'하면서 묻던 그녀의 눈빛과 말투가 16년이 지난 오늘도 눈과 귀에 선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당시 경찰에 증거로 제시했던 자료들과 관련해 “죽기 전날 김성재의 오른팔에 아무 상처가 없었다는 점, 오른손잡이였던 김성재의 오른팔에 스물여덟방의 주사자국이 있었다는 점, 검출된 약성분이 환각용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 김성재의 부검을 막았던 여자친구의 행동들” 등을 언급했다.

    김 PD는 "결정적으로 그녀가 동물마취제를 샀다는 것이 동물병원 의사의 제보로 밝혀졌고 그 약을 팔았던 의사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그녀가 부탁한 것도 밝혀졌다"며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환상의 변호인단을 구성한 그녀가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고 밝혔다.

    또, 그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오른손잡이인 성재가 왼손으로 동물마취제 스물 몇 방을 주사로 혼자서 놓고 죽었고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에 같이 있었던 것은 우연이고 동물마취제를 산 것도 우연의 일치다"라며 "죄도 없는 그녀에게 PD로서 내가 한 짓은 죽어 마땅한 짓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바꾸고 잘 산다는데 그녀가 '싸인'이라는 드라마 때문에 또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으로 짐작된다. 소름끼치도록 미안하고 죄스럽다"고 사과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김 PD는 "드라마에서라도 진실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대리만족하고 싶다"는 솔직한 바람을 밝히며 "우연치고는 더럽게 이상하다. 모든 것이 다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데 진실은 아니란다."라며 분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불어 김성재의 어머니에게 "항상 행복한 일만 주위에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슬픔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 믿고 있습니다"라는 격려의 말을 전했다.

    한편, 故 김성재의 여자친구 김 모 씨는 사건당시 고인의 호텔을 방문해 주사기로 약물을 과다 투입한 혐의로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법원 측은 사망시각을 단정할 수 없고 살해 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다음은 김 PD가 올린 글의 전문이다.

     

    故 김성재 사망사건 특종취재한 PD로서

     

    1995년 김성재 사건의 타살 의혹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나다. 여자친구를 최초로 언론에 공개한 것이 나다. CCTV를 지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취재한 것이 나다.

    SBS 드라마 <싸인>을 보고 이번엔 블로거로서 기사를 쓰고 싶었지만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무서웠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무섭다. 날 바라보며 “김경만 피디시죠?”하면서 묻던 그녀의 눈빛과 말투가 16년이 지난 오늘도 눈과 귀에 선하다. 소름 끼친다.

    오늘 경향신문에서 성재의 어머니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난 또 여사님의 당시... 눈물이 항상 맺혀있던 참담한 눈동자를 기억한다. 그리고 인기가요에서 신나게 노래하고 대기실에서 즐거워하던 성재의 눈빛을 기억한다.

    나 또한 특종이란걸 하고 나서 오랜 세월 고통에 시달렸다. 재판정에도 증인으로 출석하고, 무죄 선고 이후 나의 잘못된 취재 때문에 금전적 피해를 SBS에 입혔다. 승소했으면 성재에게도 육여사님(김성재의 어머니)에게도 떳떳했을 텐데...

    죽은 성재에게도 죄스러웠고, 육여사님에게도 죄스러웠고, 피해를 끼친 회사에도 죄스러웠고, 무죄가 된 그녀에게도 죄스러웠다.

    이 혼란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모든 사람에게 죄스러웠고 나를 위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꿈속에서 계속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 뿐... 김경만 피디시죠? 김경만 피디시죠?

    내 잘못된 취재는 이랬다.

    경찰에도 증거화면으로 제출했지만 죽기 전날 인기가요 방송 당시, 저녁 때 대기실에서 웃통을 벗고 있던 성재의 오른 팔에는 아무 상처가 없이 깨끗했다. 피자를 먹었던가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저녁 식사 후 홍제동 호텔에 들어갔고, 멤버들 모두 기쁘게 솔로 컴백 무대를 축하하고, 거실에 그녀와 성재만을 남긴채 모두 방에 들어가서 잤다. 그때도 멤버들은 오른팔을 들고 이야기하는 성재의 팔에 상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침에 오른팔에 스물여덟방의 주사자국을 남기고 시체가 되어 있었던거다. 사인은 청장년 급사 증후군이란 건데, 특별한 사인을 밝히지 못했을 때 붙이는 이름이라고 들었다.

    이후 약 성분이 검출됐는데 졸리틸이라는 동물 마취제 성분 두가지가 나왔다. 애견병원을 돌아다녀봤더니 쉽게 구할 수 있는 마취제였다. 많이 주사하면 죽는다고 했고, 동물을 운반할 때도 마취시키기 위해 쓴다고 했다. 마약 쪽 전문가들한테도 알아봤는데 이 약을 환각용으로 쓰는 사람은 못봤단다.

    자, 정리해보면 나의 타살 의혹 문제제기는 이랬다.

    하룻밤 만에 동물마취제 스물몇방을 오른손잡이였던 성재가 오른팔에 놓고, 컴백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혼자서 미친 듯 주사하고 죽었다. 오른손잡이라는 것도 각종 팬사인회와 원본 테이프를 다 뒤졌는데 분명 오른손잡이였다. 듀스 멤버 이현도와 전화통화를 해보니 여자친구에 대해 놀라운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사건 직후 마약설이 제기됐지만 졸레틸에 들어있는 성분이 환각용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을 인터뷰했다.

    이 상황에서 의심 안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죄 없는 그녀를 내가 발견하고 공개하고 살인자로 몰아간 것이다. 더욱 힘들었던 건 죽은 김성재에게, 그리고 육여사님에게 죄송했다. 법원의 판결로 완전히 잘못된 보도를 한 것이기에 후속 취재도 할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무죄의 이유는 이랬다.

    물론 무죄추정의 원칙이 주요했고, 그녀가 구입한 동물마취제 약의 양으로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거였다.

    그녀는 자신의 강아지를 안락사하는데 동물마취제를 썼다고 했다.

    그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오른손잡이인 성재가 왼손으로 동물마취제 스물몇방을 주사로 혼자서 놓고 죽었고, 그녀가 죽기전 마지막에 같이 있었던 것은 우연이고, 동물마취제를 산 것도 우연의 일치다.

    죄도 없는 그녀에게 PD로서 내가 한 짓은 죽어 마땅한 짓이었다. 그녀가 <싸인>이라는 드라마 때문에 또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으로 짐작된다. 소름끼치도록 미안하고 죄스럽다.

    홍제동 S호텔에 가서 관계자 인터뷰 중 사건 당일 CCTV화면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녹취는 방송을 했다. 근데 나중에 경찰 조사결과 CCTV화면이 없단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어떻게 가장 중요한 단서인 CCTV가 없다는 건지... 참 우연치고는 드럽게 이상하다. 모든 것이 다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데 진실은 아니란다.

    그래도 난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녀에게 용서를 빈다고...

    하지만 김성재 사건 이후 바로 또 김광석씨가 세상을 떠났다. 취재팀 중 단연 1등으로 장례식장에 달려갔다.

    이 사건 또한....

    뒤얽힌 복잡한 실타래가 생각보다 복잡했다. 난 이 취재를 접고 말았다. 무서웠다. 내 목숨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진실을 위해서라면...

    하지만 난 세상이 무서웠다. 진실을 아는 것이 무서웠다. 진실의 힘없음에 뼈저리도록 아프고 힘든 세월을 보냈다.

    드라마 <싸인>에서라도 진실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정의가 승리하는 것을 대리만족하고 싶다.


    P.S. 육여사님이 이 글을 보신다면 이렇게라도 인사드리고 싶네요.

    항상 맘 속에 무거운 짐 하나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늘 어머님이 걱정되고 생각나는데 인사 한번 못드렸네요...
    잘 살고 계시죠?
    항상 행복한 일만 주위에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슬픔을 충분히 이겨내실 수 있는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