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안 해”→“지금 얘기 못해”...“직권상정, 법률상 불가”
  • ▲ 28일 서울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 앞에서,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사진 왼쪽)와 설전을 벌이고 있는 정의화 국회의장. ⓒ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28일 서울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 앞에서,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사진 왼쪽)와 설전을 벌이고 있는 정의화 국회의장. ⓒ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주옥순 엄마부대봉사단 대표: 의장님이 비상사태라고 하셨잖아요.

    정의화 국회의장: 누가 그래? 이 말을 누가 했어?

    주옥순 대표: 비상사태라고 하셨잖아요?

    정의화 의장: 내가 언제 그랬어요! 내가 언제 그랬어요 내가! 아주머니 잘 봐요.

    엄마부대 회원: 우리가 왜 아주머니인가요?!

    정의화 의장: 사모님 보세요. 내가 이런 소리를 한 적이 없는데...


    노동개혁 법률안과 기업활력제고법(일명 원샷법) 등 쟁점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좀처럼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법안에 대한 직권상정을 촉구하는 시민단체와 정의화 국회의장이 설전을 벌였다.

    정의화 의장은 시민단체 회원들과의 대화 도중 갑자기 언성을 높이는가 하면,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가 이내 말을 바꾸는 등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엄마부대봉사단(대표 주옥순)은 28일 오전 8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 계류 중인 쟁점법안의 연내 처리를 촉구했다.

    엄마부대가 정의화 의장의 직권상정을 촉구한 쟁점법안은 ▲노동개혁 5법 ▲기업활력제고법(일명 원샷법) ▲서비스 산업 발전법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이다.

    이날 엄마부대 회원들은,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면서 집회를 벌였다. 회원들은 공관이 주택가 근처에 있는 점을 감안해 정 의장이 출근하는 시간까지 사실상 침묵시위를 이어갔다.

    회원들은 ‘수많은 기업과 국민의 탄식이 들리지 않습니까?’, ‘정의화 국회의장은 선거법 직권상정하기 전에 5개 법안을 먼저 처리하라’, ‘정의화 국회의장님, 대한민국 좀 살려주세요’ 등이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쟁점법안 연내 처리를 위한 정의화 의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들 시민들의 침묵이 깨진 건 오전 9시를 조금 넘어서였다.

    오전 9시 5분쯤 정의화 의장이 탄 차량이 공관 정문을 나와, 엄마부대가 집회를 벌이는 장소 앞에 멈춰 섰다. 예정에 없던 정 의장의 등장에 엄마부대 회원은 물론, 현장에 있던 경찰관계자들도 멈칫했다.

    외투를 걸치지 않은 양복차림으로 차에서 내린 정 의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엄마부대 회원들에게 다가가, 자신도 쟁점법안 처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정 의장은 부드러운 말투로 농담을 던지다가도, ‘국회의원 밥그릇 챙기기’, ‘국가비상사태’라는 표현에는 굳은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 ▲ 정 의장은 이날 엄마부대와의 만남에서, 온화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국회의원 밥그릇 챙기기', '국가비상사태'라는 말에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정 의장은 이날 엄마부대와의 만남에서, 온화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국회의원 밥그릇 챙기기', '국가비상사태'라는 말에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특히 정 의장은 대화 도중 “난 국회의원 안 한다”, “5월 30일(19대 국회 임기만료일) 끝나고 안 하려고 한다”며 내년 4월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가, 발언의 진위를 묻는 취재기자에게는 “출마를 하든 안 하든 1월 중순이나 말쯤 적당할 때 발표할 것”이라며 말을 바꿨다.

    정 의장은 비례대표를 염두하고 있지 않느냐는 한 시민의 질문에 “나는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뉴스1> 보도에 따르면, 정 의장은 지난 9월 1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광주 출마설을 부인하며, 내년 총선에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중구·동구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정 의장은 "배에도 평형수 얘기가 나오듯이 우리 국회도 좀 더 무게를 잡기 위해, 김원기·임채정·박관용 전 의장님 등에게 비례를 줘서, 내년에 다 국회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당시 김무성 대표는 정 의장의 발언을 전해 듣고, "난해한 얘기를 (했다). 연구를 좀 해봐야 겠다"며 "혼자 외롭게 계시니까 별의별 연구를 다하셨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SNS상에서는 정 의장의 발언에 대해 '본인이 비례대표에 관심을 두고 있어, 저런 말을 한 것이 아니냐'는 댓글이 이어지기도 했다.

    정 의장은 약 15분 동안 시민단체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노동개혁 및 경제활성화법안 처리와 관련돼, 직권상정할 뜻이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직권상정은 전쟁이나 사변과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한 경우만 할 수 있도록 법이 정하고 있다”며, “법으로 못하게 돼 있는 것을 의장이 마음대로 하면 나라가 평안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 의장은 시민단체 회원들이 경제활성화법안에 대한 직권상정의 필요성을 거듭 밝히자, “(법안 직권상정과 관련돼) 두 곳의 로펌에 알아보고 하는 것”이라며, “의장이 뭐 잘났다고 지 맘대로 결정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정 의장은 “경제가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는 한 시민의 발언에, “올해 크리스마스에 해외 나간 사람이 작년보다 더 많다. 공항이 북적댄다. 우리나라 신용등급이 세계 7등”이라고 반박했다.

    정의화 의장은 “내일 비상사태가 온다고 해도, (국회법에 따르면) 오늘은 비상사태라고 할 수가 없다. 비상사태가 오면 (그때 비로소) 비상사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국회법 규정에 따른 직권상정 불가론을 거듭 강조했다.

    엄마부대 : 의장님, 며칠 남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대한민국 운명이 의장님 손에 달려있습니다.

    정의화 의장: (웃으며) 내 손에 달려있어? 내 손이 조그마한데?

    엄마부대 : 의장님 우리 엄마들은 국가를 위해서라면 무서울게 없습니다.

    정의화 의장: 왜 무서울게 없어요? 애들이 건강하고 가정이 화목해야지.

    엄마부대 : 가정이 행복하려면 의장님이 방망이를 제대로 치셔야지요.

    정의화 의장: 내가 방망이를 제대로 안친게 뭐가 있어?

    엄마부대 : 의장님이 비상사태라고 하셨잖아요.

    정의화 의장: (목소리 높이며) 누가 그래? 이 말을 누가 했어? 내가 언제 그랬어요!! 아주머니 잘 봐요. 사모님 보세요. 내가 이런 소리를 한 적이 없어요!

    엄마부대: 그렇게 억압적으로 말씀 하시면 안 돼요.

    정의화 의장: 내가 언제 억압적으로 말했어요?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세요. 대한민국 국회의장이 국가가 비상사태라는 말을 하면 안돼요. 그러니 저거(피켓) 당장 없애라고. 내가 설명을 해 주려고 내렸는데, 여러분들 추운 날 고생하는데, 여러분들 애국심이나 나나 똑같아요. 저도 같은 마음이에요.

  • ▲ 정의화 의장이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에게 직권상정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정의화 의장이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에게 직권상정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정의화 의장은 “여야가 쟁점법안을 합의처리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노력을 해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의화 의장: 나라가 제대로 가려면 모두 법을 지켜야해요. 의장이 법을 안지키면 어떻게 되겠어요?

    엄마부대: 의장님은 나라 경제 걱정을 안하시는것 같아요.

    정의화 의장: 내말 들어봐요. 나도 얼마나 답답하겠어. 내가 재경위원장도 했고, 경제를 국회에서 6년을 했어요. 잘 압니다. 문제는 직권상정은 절차가 있는데, 법절차가 있어요. 절차를 어기면 어떻게 되겠어요? 온 나라가 두 조각, 세 조각 납니다.

    집안이 어려울수록, 부부가 의논해서 하나하나 차분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에요. 법을 지키면서 하나하나 해 나가야 해요. 그래서 나도 며칠 동안 고생하고 있어요. 여야가 서로 타협해서 합의점을 찾아야 합니다.

    엄마부대: 지금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잖아요.

    정의화 의장: 그것을 내가 노력하고 있잖아요. 노력을 하고 또 해도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에요.


    정의화 의장은 선거구 획정안이 쟁점법안보다 우선하느냐는 엄마부대 회원의 지적에, “의회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이고, 그 다음이 행정부”라며, “의회를 구성하는 선거를 두고, ‘밥그릇 챙기기’라고 하면 안된다”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 ‘위기’라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 ▲ 정의화 국회의장이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에게 손 피켓에 적힌 '국가비상사태'라는 말을 빼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정의화 국회의장이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에게 손 피켓에 적힌 '국가비상사태'라는 말을 빼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정 의장은 “(우리나라 경제가) 어째서 무너지느냐? 올해 크리스마스 때 작년보다 해외 나가는 사람이 더 많았고, 공항도 북적북적했다”며, “우리나라는 신용등급이 세계 7등 안에 들어가는 나라”라고 말했다.

    정의화 의장: 우리나라가 경제 비상사태다라고 제가 말하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하겠어요? 아닌 것을 왜 거짓말해서 나빠지게 합니까?

    지금 우리나라는 신용등급이 세계 7등안에 들어가는 그런 나라에요. 내일 비상사태가 온다고 해도, 제가 오늘 비상사태라 할 수는 없어요. 비상사태가 왔을 때만, 비상사태라고 할 수 있는 거에요. '내일 불이 날 수 있으니 오늘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못한다는 거에요.


    정 의장은 내년 총선출마 여부와 관련돼, 모호한 태도를 나타냈다. 그는 엄마부대 회원들에게 “‘밥그릇 챙기기’ 얘기는 듣기 싫다. 난 국회의원 안할 것”이라며, “난 그런 소리(비례대표 한다는 얘기는) 를 한 적이 없다. 5월 31일을 끝으로 안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의장은 본지 기자와의 만남에선 "(총선 출마여부에 대해) 이 자리에서 말 할수는 없고, 1월 중순이나 말쯤 적당한 시점에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 ▲ 엄마부대봉사단은 28일 오전 8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 계류 중인 쟁점법안에 대한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엄마부대봉사단은 28일 오전 8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 계류 중인 쟁점법안에 대한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엄마부대 회원들과 대화를 이어가던 정 의장은 ‘출발하셔야 한다’는 측근들의 말을 듣고, 차에 올랐다.

    차에 오르기 전, 정 의장은 엄마부대 회원들과 일일히 악수를 한 뒤, “국회의장실로 오시면 따듯한 차라도 드리겠다”고 말했다.

    한편,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여ㆍ야가 합의해 처리한다고 큰 소리만 쳐놓고, 지금까지 차일피일 시간만 허비한 것을 정 의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임시국회에서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경제ㆍ민생ㆍ일자리를 위한 경제활성화법과 노동개혁법,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을 반드시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옥순 대표는 정의화 의장을 향해 “현재의 절박한 경제위기야말로 국가적 비상상황임을 인정하고, 국회의장에게 주어진 직권상정 권한을 당당히 행사해 국민의 여망을 이뤄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