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이 지난 12일 공식 제기한 '평화적 핵연료 재처리' 등 핵 권리 회복은 김영삼 정부 시절 '민간 주도' 형식으로 추진되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중단됐다고 김영삼 정부 때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14일 밝혔다.

    박 전 의장은 이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YS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이 결성한 마포포럼을 중심으로 1997년 당시 미 클린턴 행정부 및 민주당 관련 인사들을 접촉, '핵연료 재처리' 등 우리의 평화적 핵 주권 회복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박 전 의장은 "정부 차원에서 추진할 경우 외교적 마찰이 우려돼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뒤 김시중 전 과학기술처 장관과 원자력연구소장,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 등과 함께 클린턴 2기 행정부와 미 의회를 상대로 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위한 여론 조성에 나서자는 데 뜻을 모으고 조셉 나이(Nye) 하버드대 교수와 미 민주당 산하 연구소 등을 비밀리에 접촉해 이런 문제를 상의했다"고 했다. 나이 교수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가정보회의(NIC) 의장과 국방 차관보를 지냈다.

    박 전 의장은 "당시 한국전력은 '사용 후 핵연료'를 해외에서 재처리해 반입하는 문제를 성사시키기 위해 미국의 유력 로펌과 계약을 맺고 미국 정부와 의회를 설득하는 로비활동을 벌였다"고 했다. 실제 한전은 1997년 '사용 후 핵연료를 영국 회사에서 재처리해 다시 반입하는 프로젝트 추진을 지원한다'는 내용으로 미 로펌 '호건 앤드 하트슨(H&H)'과 100만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박 전 의장은 "한전이 해외에서의 재처리를 추진한 건 한국 내 재처리를 추진할 경우 미국측이 경계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전 의장은 "그러나 이 같은 활동은 DJ 정부 출범 뒤 사실상 중단됐다"고 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서 우리가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이종찬 당시 국정원장을 만나 '한전이나 민간 단체 차원에서 핵 주권 회복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건의했고 이 전 원장도 '좋은 의견'이라고 동의했다"며 "그러나 김대중 정부 관련 인사가 '전 정부 사람들이 위험한 일을 벌인다'고 반대해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당시 박 전 의장의 주장에 공감했으나 북한 금창리 핵시설 의혹 등이 터지면서 '핵 주권론'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했다.

    박 전 의장은 "패전국인 일본도 나카소네 수상 시절 미국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민간 차원의 핵 관련 외교를 벌여 재처리 및 농축시설 보유 등 핵 주기 완성과 평화적 핵 이용을 이뤄냈다"고 했다. 따라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규정을 엄격히 준수해온 우리가 핵 주권을 회복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한나라당 등의 '핵 권리 회복론'에 대해 "미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민간 차원의 용의주도한 여론 조성작업이 병행돼야 한다"며 "이명박 대통령도 오바마(Obama)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핵 주권 회복론과 관련한 한국 내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거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