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민주당 기억해야"… 천정배, 호남 맹주는 무리라는 반론도
  • ▲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30일 국회에 등원해 선서를 마친 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싱긋 웃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30일 국회에 등원해 선서를 마친 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싱긋 웃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단기필마(單騎匹馬)로 돌아온 천정배 의원이 내지른 일성(一聲)에 130석의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 어수선하다.

    4·29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30일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내년 총선에서 광주·호남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경쟁하겠다"며 "(새정치연합) 의원 절반 정도를 빼와 다 뒤집어 엎어야겠다"고 자신했다.

    천정배 의원은 이날 아침 MBC·SBS·CBS라디오에 연속 출연한 자리에서도 "문재인 대표가 최대 계파(친노)의 수장이기도 하기 때문에 (선거 패배의) 책임이 가장 큰 것"이라면서도 "다른 계파, 이른바 486 계파도 패권 적폐가 심각하다"라고 밝혔다. 덧붙여 "비노라는 계파는 과연 있는지 없는지도 잘… 지리멸렬한 사람들을 비노라고 부르는 것 같다"며 "당 자체로서는 도저히 쇄신이 불가능한 상태에 와 있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내년 총선까지 광주를 중심으로 호남에서 DJ를 이을 만한 그런 인재들을 널리 모아 새정치연합과 경쟁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겠다"며 "그럼으로써 우리 (호남) 유권자들에게 실질적인 선택권을 드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신당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이르다"고 선을 긋기는 했으나, 사실상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선언한 것에 대해 새정치연합내 호남권 의원들은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총선을 채 1년도 남기지 않은 채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호남 민심의 냉랭한 현 주소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 ▲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30일 국회에 등원해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30일 국회에 등원해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지난 2·8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을 때 일찌감치 친노(親盧, 친노무현)에 대한 호남 민심의 이반을 경고한 바 있었던 새정치연합 박주선 의원의 발언은 호남 의원들의 동요 심리를 대변한다.

    박주선 의원은 30일 본회의 산회 직후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 참석해 "(재보선) 결과를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광주와 호남의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며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개 무소속에 불과한 천정배 의원이 호기롭게 정계개편을 외치고 나선 것은 친노, 그 중에서도 새정치연합호(號)의 새로운 선장이 된 문재인 대표의 헛점을 노렸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평민당이나 그 후신(국민회의 등)과는 이렇다할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친노라고는 해도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동교동 자택에서 당직까지 섰을 정도로 DJ와도 깊은 인연을 맺었고, 이해찬 의원도 평민당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한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2·8 전당대회 직후 박지원 전 원내대표 측에서 선거운동을 했던 한 인사가 "이제 당대표회의실에서 사진 하나는 떼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던 것은 이런 정서를 반영한다. 새정치연합은 국회 당대표회의실과 원내대표회의실에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놓고 있는데, DJ와 아무 인연 없는 문재인 대표가 당대표로 선출됐으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만 남겨놓고 DJ는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꼬았던 것이다.

    천정배 의원이 보궐선거 운동기간 중에 '호남 정치의 복원'을 부르짖고, 당선 직후 '뉴DJ'를 운운한 것은 문재인 대표의 이러한 빈틈을 파고들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실제로 천정배 의원은 1996년 DJ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정계에 복귀할 때 직접 발탁한 인물이기 때문에, 'DJ 계승 전쟁'에서 문재인 대표보다는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는 이번 보궐선거 기간 중 내걸었던 자신의 현수막에 1996년 경기 안산을 출마시 DJ와 자신이 함께 찍었던 사진을 사용하기도 했다. 19년 전 사진을 현수막에 쓰는 것은 민망하다는 지적과 새정치연합의 비난 논평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 ▲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30일 국회에 등원해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 강창일 제주도당위원장 등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30일 국회에 등원해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 강창일 제주도당위원장 등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다만 천정배 의원의 계산대로 새정치연합의 분당(分黨)에 가까운 호남발 정계개편이 잘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야권 내부에서도 전망이 엇갈린다.

    새정치연합 이춘석 전략홍보본부장은 29일 "광주에서 진 것은 매우 뼈아픈 일"이라며 "앞으로 '호남판 자민련'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이미 정치세력화가 상당 부분 진척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신중식(17대·열우·전남 고흥보성), 홍기훈(13~14대·평민·전남 화순), 염동연(17대·열우·광주 서구갑) 전 의원 등이 이번 보선에서 천정배 의원을 돕거나 공개 지지했다. 현직 시의원·구의원을 대상으로 한 영입 작업도 상당 부분 진척돼, 새정치연합은 이번 보선을 치르면서 1명의 광역의원과 2명의 기초의원을 천정배 의원 공개 지지 사유로 제명해야 했다.

    반면 천정배 의원이 동교동계의 정신적 지주인 권노갑 상임고문을 축출했던 정풍 운동의 일원이었고, 2003년 열우당 창당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DJ를 계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광주 지역의 새정치연합 의원실 관계자는 "광주 유권자들은 친노가 싫어서 그런 거지, 천정배가 좋아서 뽑아준 것이 아니다"라며 "호남 맹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천정배 의원이 생각하는 뉴DJ를 모으겠다는 것도 결국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삭줍기'를 하려는 것 아니겠느냐"며 "예전에도 정통민주당이니 평화민주당이니 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다 실패했다"고 말했다.


  • ▲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30일 국회에 등원해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전 원내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30일 국회에 등원해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전 원내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천정배 의원만으로 부족하다면 누군가가 더 가세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그러면 천 의원이 되레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아직까지 '뉴DJ'를 자처할 정도로 모두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은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박지원 전 원내대표라든지 권노갑 상임고문 등 동교동계 인사가 가담해야 일이 풀릴 것이라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천정배 의원도 이 가능성을 살려두기 위해 정동영 전 의원이 가담해 있는 국민모임과 거리를 둔 채로 합류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모이되, 박 전 대표는 신당의 당권만 맡고 후년 대선에서는 다른 사람을 내세우는 것을 모색한다는 것도 하나의 정계개편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박 전 대표가 전대 과정에서 내세웠던 당권·대권 분리론과도 일맥상통하고, '제2의 DJP연합'을 노리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의 접점을 모색했던 권노갑 상임고문의 입맛에도 맞는다는 것이 그 근거다.

    야권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러한 시나리오를 거론하면서 "후년 대선에서 누구를 내세우느냐는 일단 백지 상태에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다양한 인재를 끌어들이기에도 유리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 관계자도 "친노 지도부만 어떻게 하면 호남 지역의 민심은 결국 '2번'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며 "당분간 당내 동요는 계속되겠지만, 집단 탈당을 일으킬 정도의 동력 확보는 당장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