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주체사상' 김일성, 인민들을 짐승 취급…삼성은 사람 키워 부국강병
  • 三星의 人事 비결
기적을 만든 李秉喆 李健熙 부자의 '사람중심 경영'

趙甲濟   

김일성은 '사람중심의 주체사상' 운운하면서 인민들을 짐승 취급했지만
이병철, 이건희 父子는 사람을 키워 돈을 벌고 국가의 富强(부강)에 기여했다.
자본주의의 재해석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서울시내의 한 CJ 빌딩 안엔 故(고) 李秉喆(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을
이렇게 요약하여 새겨놓았다. 
   
   人材第一(인재제일)
   事業報國(사업보국)
   合理經營(합리경영)
   
   이 3大 원칙엔 李秉喆의 위대한 안목이 녹아 있다.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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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업경영의 원리를 사람 중심으로 파악하였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인재육성임을 간파한 것이다. 그는 일자리는 모자라고 사람은 남아돌던 시대에 인재발탁과 교육을 중시한 偉人(위인)이다. 
       
       2. 국가건설期의 한국에서 기업의 존재목적이 富國强兵(부국강병)에 이바지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세금을 많이 내는 게 기업인의 애국이다. 그는 안중근, 유관순에 못지 않은 위대한 애국자였다. 
       
       3. 경제는 과학이다. 집념, 뚝심, 배짱 같은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아니라 합리성이 成敗(성패)의 관건이다. 치밀한 계획과 정확한 판단이 뒷받침되지 않는 뚝심은 蠻勇(만용)이다. 
       
       지난 봄 金東吉 선생과 함께 기차를 타고 대전에서 열리는 강연장으로 가면서 재미 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삼성그룹 창립자 李秉喆 회장을 수십 년간 모셨던 운전기사가 모는 차를 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늙은 기사는 金 박사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李秉喆 회장님은 삼성보다도 나라를 더 생각하신 분입니다." 
       
       최근 삼성전자의 人事 부문 간부로 일했던 이를 만났다. 그는 "李秉喆, 李健熙 회장으로 이어진 人材第一이란 정신은 말단 직원들에게까지 스며 들도록 한 것이 삼성의 성공 비결이라고 봅니다. 삼성의 성공은 人事에서 시작되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삼성 人事의 원칙, 즉 인재 발탁과 교육의 원칙을 능력, 청렴, 공정이라고 설명했다. 
       "제가 주로 한 일이 인사에 地緣(지연)이나 學緣(학연)이 게재되는 것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사람을 뽑아 適所(적소)에 배치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도록 한 뒤 평가를 정확하게 하고, 信賞必罰(신상필벌)하되 대우를 잘해주면 열심히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삼성은 경쟁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 끊임 없이 개혁해가는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한 일본인이 삼성전자로 옮겨 경영에 참여하였다가 일본으로 귀국한 뒤 쓴 책을 읽어보니 삼성 성공의 다른 요인은 '시간'이었다. 그는 일본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꽂이구이', 삼성을 '사시미(회膾) 접시'라고 비유했다. 일본 회사는 일을 할 때 계획, 검토, 결정, 집행의 과정을 꽂이구이 식으로 순서대로 꿰어서 하는데, 삼성전자는 각 과정을 회처럼 접시에 늘어놓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수직적으로, 삼성은 수평적으로 한다는 이야기이다. 일본식 수직법은 한 단계의 일이 끝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없지만 '사시미 접시' 식에선 각 단계의 작업을 독자적으로, 동시적으로 해놓았다가 나중에 종합하면 된다. 이런 동시다발식 상품 제조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소비자들이 바라는 것을 정확하게 집어내 만족시키는 데 유리하다. 
       
       동시다발식 일처리는 임기응변에 능한 한국인의 소질에도 맞다. 전통적인 제조업 시대보다는 속도가 생명인 IT 시절에 더 적합하다. 일본식이 아나로그라면 한국식은 디지털 방식이다. 삼성은 일본의 장점과 한국의 장점을 겸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인의 정확성과 한국인의 창의성, 일본인의 고지식함과 한국인의 자유분방함을 결합, 삼성 식으로 만든 셈이다. 위대한 것은 相反(상반)되는 요소를 균형 있게 통합할 때 생긴다. 
       
       한국인들을 잘 다루려면 울타리를 넓게, 높게 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재량권이나 자율권을 폭 넓게 보장하되 금지선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한국인들은 신바람 나게 일하면서 엄청난 생산성을 보여준다. 
       
       이건희 회장을 '이병철의 아들'이라고만 보는 것은 과소평가이다.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와는 단위가 다른 회사를 만들어 세계를 상대한 '글로벌 플레이어'였다. 두 사람의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사람중심의 경영, 즉 人材제일이란 핵심은 변함이 없다. 김일성은 '사람중심의 주체사상' 운운하면서 인민들을 짐승 취급했지만 이병철, 이건희 父子는 사람을 키워 돈을 벌고 국가의 富强(부강)에 기여했다. 자본주의의 재해석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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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鄭周永(정주영)을 흔히 배짱과 도전의 경영인으로 평한다.
    그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李明博(이명박)은 鄭회장이 작고한 직후, 2001년 5월호 월간조선과 한 인터뷰에서 俗說(속설)과 다른 평가를 하였다. 기자가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돌파력, 이것이 鄭회장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십니까"라고 물었다. 후에 대통령이 되는 이명박 씨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게 잘못됐습니다. 사람들은 鄭회장을 가리켜 「무모할 정도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기업인」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鄭회장에 대한 왜곡된 편견입니다. 그런 식으로 일을 하면 한두 번이야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30년 동안 그랬겠어요. 그는 우리나라가 농경시대에서 산업사회로 진입하고 개화하는 데 主役(주역)을 맡았던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기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그것을 체질 속에 익힌 사람도 아니고 오로지 배운 것이라고는 농사 짓는 경험 조금 가지고 산업사회를 일으킨 사람입니다. 그는 오늘날의 그 어떤 벤처기업인보다 더 벤처정신의 소유자였습니다. 
       그의 젊음, 그의 판단력, 그의 무서운 결단력과 용기, 이런 덕목들은 육체적으로 쇠잔해지지 않았다면, 21세기의 정보화시대에도 똑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는 시대가 낳은 요행의 산물도 아니었고, 그냥 밀어붙이는 우직한 용기 하나 가지고 일어난 사람은 더구나 아니었습니다." 
       
       "李秉喆 회장은 매우 치밀한 경영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대로 鄭周永 회장은 무모한 모험가로 흔히 대비되곤 합니다. 만약 李秉喆 회장이 치밀하기만 하고 결단력과 모험심이 없었거나, 鄭周永 회장이 무모한 모험심만 있고 치밀하지 못했다면 두 사람 다 오늘의 삼성과 現代라는 거대한 기업집단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고, 국가 경제 발전에 끼친 공로도 별 것 아니었을 것입니다. 
       鄭회장의 「신화」에 빠질 수 없는 몇 대목이 모두 도박과 같은 모험과 배짱, 그리고 밀어붙이기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돈 500원짜리에 찍힌 거북선 그림을 가지고 영국 로이드은행 사람들을 설득시켜 거액의 차관을 빌어왔다거나, 서산간척지 공사의 최종 물막이공사 때 낡은 유조선을 들이대어 성공시킨 일이라든가… 그런 것들은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만으로 신화를 만든 것일 뿐입니다. 
       그 이면에는 무서울 만큼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바로 보지 않고 신화 같은 얘기에만 매달리면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차관을 빌거나 공사를 따거나, 또는 공사를 성공시킬 수 있겠습니까?"
       
       정주영 또한 이병철처럼 합리경영으로 성공하였다는 이야기이다. 합리경영이란 게 관료적 무사안일이 아니고, 과학적 타당성을 확실히 한 바탕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모험을 하는 태도이다. 예컨대 철 구조물을 바지선으로 중동까지 끌고 간 것도 다 계산이 있었다. 
       
       "사우디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에 소요되는 철 구조물을 울산에서 제작하여 바지선으로 중동까지 끌고 간 일은 밖에서 보기에는 분명 모험이었고, 바보 짓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뿐이 아니에요. 그토록 위험한 수송작전을 감행하면서 鄭회장의 현대건설은 위험에 따른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鄭회장을 비롯한 현대건설 사람들이 모두 미쳤기 때문이었을까요? 반대입니다. 
       당시 우리는 보험에 들지 않아도 된다는 치밀한 계산과 구상을 했습니다. 울산에서 바지선으로 끌고간 철 구조물들은 그 부피가 산 같았습니다. 남지나해와 인도양 등 험한 바다 위로 거대한 산을 끌고 가면서,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수십 번에 걸쳐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도 바보 짓인데 보험조차 들지 않았다는 것은 대체 무슨 배짱이었을까요. 이유는 간단해요. 
       철 구조물은 거대하지만 직경 1m가 넘는 파이프로 이루어져 있고, 그 양쪽 끝부분은 모두 막혀 있으므로 배가 침몰하여 물에 빠져도 가라앉지 않도록 되어 있어요. 鄭회장의 참모들은 계산했습니다. 필리핀 앞바다는 계절풍이 불면 아주 위험한데 수송작전은 계절풍을 피해서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한가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태풍에 의한 조난을 각오해야 할 텐데 그 경우 철 구조물이 海流(해류)를 타고 어디까지 흘러가서 멈출 것인가를 계산해 보니 대만해협으로 떠내려갈 것이라는 계산이 나와요. 그렇다면 비싼 보험료를 내는 것보다는 조난당해도 건져서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시간도 덜 소요되어 중동 공사를 차질 없이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최종 판단과 각오는 鄭회장의 몫이었지요."
       
       1992년 鄭周永 현대그룹 창업자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직전에 있었던 일이다. 한 신문이 <정주영 회장은 하루 네 시간씩만 자고도 정력적으로 뛴다>는 요지의 보도를 하였다. 한 측근이 그 신문을 鄭 회장에게 보여주었다. 鄭 회장이 기사를 읽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루에 여섯 시간은 자야 일이 되는 사람이에요. 하루에 네 시간밖에 안 잔다는 자는 病者(병자)가 아니면 사기꾼입니다. 그런 자와는 절대로 동업하면 안 됩니다." 
       鄭회장은 모자라는 잠은 車中에서 보충하였다고 한다. 차만 타면 1분 안에 단잠에 들었다. 한 측근이 그 비결을 물었더니 鄭회장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차창 밖 경치는 매일 보는 건데 그걸 왜 또 봐요? 눈을 감고 잠이나 자 두는 게 낫지."
       흔히 나폴레옹이 하루에 네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는 평소에는 하루 8시간씩 충분히 잠을 잤다. 일찍 일어나면 측근들로부터 정보보고를 받고 그 자리에서 명령을 구술하곤 했다. 그는 하루 평균 15통의 명령을 구술했다. 아침에 집중적으로 일을 했다. 다만 전투중일 때는 잠을 줄였다고 한다. 
       잠 안 자면서 일한다는 사람처럼 미련한 인간은 없다. 밤에는 잠을 안 자고 일하지만 모자라는 잠을 낮에 보충하는 경우가 많다. 잠이 모자라면 心身(심신)이 피로하여 정상적인 思考(사고)와 업무를 할 수가 없다. 알고보면, 鄭周永이나 李秉喆의 생애엔 神話(신화)가 없다. 일하는 재미, 애국심과 합리성이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은 다른 듯하지만 공통점이 더 많다. 모든 성공의 일반적 조건은 인간에 대한 이해, 애국심이나 호기심 같은 열정, 합리성, 그리고 運(운)일 것이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