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임기자 “얼마나 미개한 사회인가”라며 ‘국가 잘못’ 운운
  • ▲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는 민관군 구조대 모습.
    ▲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는 민관군 구조대 모습.

    지난 16일 청해진 해운 소속 카페리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한 뒤 전 국민이 고통과 슬픔에 빠져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구조 작업을 하려는 미군 헬기까지 막았다”며
    세월호 침몰의 책임을
    박근혜 정부와 군, 해양경찰에게 돌리는 음성 칼럼
    (http://pod.ssenhosting.com/rss/guitarkirk/3minute.xml)이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다. 

    칼럼의 제목은 ‘서화숙의 3분 칼럼’.

    서화숙 씨는 한국일보 선임기자다.
    인터넷에서 ‘서화숙의 3분 칼럼’이 화제라기에 한 번 들어봤다.

  • ▲ 오픈라이브강의 프로젝트 '올리브'에 출연한 서화숙 한국일보 선임기자. [올리브 강의 캡쳐]
    ▲ 오픈라이브강의 프로젝트 '올리브'에 출연한 서화숙 한국일보 선임기자. [올리브 강의 캡쳐]

    실제로는 6분 길이의 방송 내용을 들으니 기가 막혔다.

    그의 말을 들으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선장이 구조방송을 게을리 하고 먼저 도망친 것에 대한 원망 보다는
    해양경찰, 군 당국, 그리고 현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이 가득했다.

    “…신고를 받았으면 해양경찰, 군인 인근의 모든 구조 병력이 출동해
    구조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근해에 있는 미군이 헬기 두 대로 구조한다는 것을 막기까지 했다.
    이 나라에 국민을 보호할 '국가'라는 시스템이 있기는 한 것인가.”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현 정부는 ‘무능력’을 넘어 ‘사악한 정권’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게 사실일까? 취재 결과는 이렇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시간은 공식적으로 오전 9시가 되기 전이었다.
    한편 세월호 구조요청을 전달받은 미군은
    오전 11시 “우리 헬기 2대로 현장 지원하겠다”고 우리 해경에 연락을 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세월호는 선수의 고물만 남겨둔 채 가라앉은 상태였고,
    그 상공에는 소방헬기 3~4대가 매우 좁은 간격으로 아슬아슬하게 비행 중이었다.
    ‘미군 헬기’가 아니라 ‘미군 할아버지 헬기’가 와도 방법이 없었다.

    우리 해경은
    “통제사항이 많은 공역에서 공중지원활동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대기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군도 이를 받아들여 헬기를 띄우지 않았다고 한다.

    서화숙 선임기자의 방송은 이어졌다.
    그는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을 가리켜
    “구조대책 미비로 생때같은 젊은 군인들을 잃었다.
    구조작업을 하던 선원까지 죽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 중 일부를 들어보자. 

  • ▲ 지난 16일 침몰 직후 세월호의 선수 고물 모습.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6일 침몰 직후 세월호의 선수 고물 모습.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세월호 사고 당일에는 날씨가 맑아서 구조를 서둘렀다면
    이처럼 실종자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에서) 승객을 버리고 떠난 선장이 가장 사악하지만
    현장에 당도한 해경은 왜 제대로 구조를 하지 못했는가.
    이미 9시 6분에 배를 떠나도록 지시했는데
    배 주변에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면
    해양경찰, 군인들이 긴급구조에 나섰어야 하는 것 아니냐….”


    헛웃음이 나왔다.

    해난사고는 육상사고와 다르다.
    물 바깥 뿐만 아니라 물 속의 환경도 따져야 한다.

    지난 19일부터 언론들도
    세월호 사고 현장이 ‘맹골수도(孟骨水道)’여서
    구조작업이 어렵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했다.

    ‘맹골수도’는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에 있는 바닷속 물길이다.

    이순신 장군이 남은 전함 13척으로 100여 척이 넘는 왜적을 침몰시킨
    울돌목과 맞먹을 정도로 물길이 거센 곳이다.
    세계에서 5번째로 물길이 거세다고 한다.

    강풍이 부는 지역은 사람이 서 있을 수라도 있다.
    반면 공기보다 밀도가 800배 높은 물속은 다르다.
    유속이 3km/h만 넘어도 스킨 스쿠버 활동을 못하게 하는 게 바다다.
    세월호 사고 당시 ‘맹골수도’의 유속은 12km/h 수준.
    이 정도면 남성들이 달리기를 하는 수준이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이런 사고 현장에 대한 설명은 모두 빼고
    “해경과 군 당국이 빨리 구조하지 않아 실종자가 많아졌다”고만 주장했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이어 우리 사회를 “미개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이야기다.

    “구조대가 갈 테니 시키는 대로 따르면 된다고 말했던 가족들의 심경은 어땠을까.
    그들에게는 시키는 대로 따를 수 있는 이들이 없었다.
    …선원을 믿었다는 이유로 자책해야 하는 사회라니 얼마나 미개한 사회인가.”


    가슴이 미어 터지는 가족들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 책임을 모두 구조대와 정부에게 넘기다니.

    21일 오전, 정몽준 서울시장 선거 예비후보의 막내아들(1996년 생)이
    자신의 친구와 페이스북에서 논쟁을 벌이다
    우리 사회를 “미개하다”고 한 말 때문에 하루 종일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데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도 아닌,
    ‘국내 유력 일간지의 선임기자께서’
    방송을 통해 우리 사회를 가리켜 “미개하다”고 지적했음에도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일각에서는 그의 방송을 “배울 점이 많다”며 퍼뜨리고 있다.
    이건 또 무슨 이중잣대인가. 

    서화숙 선임기자는 세월호 사건을 말하다 갑자기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한 마디로 “박근혜 물러가라”는 것이었다.

  • ▲ 세월호 침몰 사고 다음날인 17일,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세월호 침몰 사고 다음날인 17일,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민소득이 2만 6,000달러에 이르러 선진국 대열이라는 지금,
    여객선 선장이 혼자서 살겠다고 도망을 쳤다.
    책임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하물며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과 각료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데
    어떻게 구성원들이 규칙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겠는가.

    모두들 규칙을 지키지 않아 사회가 무너지면
    희생된 이들은 남들도 자기처럼 규칙을 지킨다고 믿은,
    한국 사회가 선진사회라고 믿은 선량한 약자들이다.

    간첩조작사건이 나도 국정원장이 책임지지 않고,
    은행원은 은행을 통해 수천억 원의 불법대출을 일으키고 개인정보가 줄줄 새도
    은행장도, 카드회사 대표도, 금감원장도, 부처장관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과
    이 모든 것이 연장선상에 있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이어 천안함 폭침을 다시 언급하며 이런 주장을 했다.

  • ▲ 북한군 어뢰에 폭침당한 천안함 선체 인양작업.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북한군 어뢰에 폭침당한 천안함 선체 인양작업.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똑같은 사고가 터지지 않도록 고민하기보다
    피격 당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핑계 대겠다는 데만 몰두한 결과가 이 꼴이다.
    북한의 공격이라면 막지 못한 이들이 책임져야 하는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일부는 승진까지 한 이런 가치전도의 사회에서
    국민 각자가 어떻게 책임을 배울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번에 미군의 도움을 거절한 것이
    천안함 때와 비슷하게 비칠까를 우려해서라는 말까지 나온다니 기가 막힌다.
    어떻게 보일까가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구하는 게 먼저 아닌가.
    그것조차 모르는 이 정부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어뢰공격 때문이었다.
    잠수함과 잠수정은 '전략적 공격무기'로 분류된다.

    그 이유는 엔진을 가동하지 않으면 돌덩이로만 보이고,
    서해와 같이 탁류(濁流)가 흐르는 바다 속에서는 탐지조차 어려워서다.
    해서 세계 각국은 잠수함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그런 잠수함에 기습공격을 당했는데 ‘맞는 사람이 잘못’이라고?
    적의 기습매복공격에 당한 군인을 처벌하면,
    세상의 어떤 군인이 ‘작전’을 펼치겠는가.

    만약 앞뒤가 맞는 말을 하려면
    “왜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대응작전을 펼치지 않았는가”라고 비판해야 하지 않나. 

    서화숙 선임기자의 속내는 마지막에 드러났다.

    “어떤 사회도 적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는다.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다.
    사회기강을 흔들어놔서 국민을 보호할 기본 시스템조차 무너뜨릴 정도라면,
    그래서 질서를 지키려한 어린 학생의 목숨조차 지키지 못하는 정부라면
    차라리 이쯤에서 대한민국을 책임질 능력이 없다고 물러서는 게 낫지 않는가.”


    서화숙 선임기자가 내린 결론은
    “박근혜 정부는 사회기강을 흔들어놔서 국민을 보호할 기본 시스템조차 무너뜨릴 정도의,
    그래서 질서를 지키려한 어린 학생의 목숨조차 지키지 못하는 정부”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말 그런가?

    세월호가 대통령이나 해양경찰, 국방부, 해군, 민관군 구조대 때문에 침몰했나?
    서화숙 선임기자는 혹시 ‘맹골수도’의 조류를
    정부가 수도꼭지 잠그듯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우리 정부에 그 정도 능력이 있다면 애초에 사고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칼럼에서 미국 정치경제학자 마가렛 레비를 인용,
    “납세자는 통치자가 공동의 편익을 제공해주며
    다른 사람들도 세금을 잘 낸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세금을 잘 낸다”고 전했다.

    맞다.

    그런데 서화숙 선임기자가 자신의 칼럼 또는
    자신이 진행하는 TBS의 방송에서 호의를 보인,
    ‘親盧세력’들은 과연 그랬던가?

    그래서 노무현 前대통령의
    ‘민주화 측근들’께서는 줄줄이 감옥에 갔던 건가?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서화숙 선임기자의 방송 칼럼 가운데는
    2만 6,000달러의 1인당 국민소득이면 선진국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 정도면 선진국? 이건 우리나라 언론과 관료사회가 떠들던 이야기 아닌가?
    세계 30위권 후반인 국민소득이 그에게는 ‘선진국’인가?

  • ▲ 민주평통자문회의 연설 중인 故노무현 대통령. [사진: 당시 보도화면 캡쳐]
    ▲ 민주평통자문회의 연설 중인 故노무현 대통령. [사진: 당시 보도화면 캡쳐]

    서화숙 선임기자의 주장대로라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가 났을 때 ‘참여정부’는 뭐 했나?
    그 이후 북한이 핵실험을 하며
    한반도 전체를 불안과 긴장에 몰아넣었을 때 '참여정부'는 어땠나?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으로 평화가 왔나?
    그럴 때 당시 대통령(또는 정부)는 왜 물러나지 않았나?

    이중잣대도 정도껏이어야 상대편도 귀를 기울이는 법이다.
    도를 넘어서면 그건 상대방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