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남침전쟁이라 부르면 안 된다니

    되새겨보는 6.25 남침전쟁(2013년)


    유동열  

      
     

  • 오늘은 1950년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이 발발한지
    63주년이 되는 날이다.

     필자는
    지난 6월 21일 <동아일보>에 게재된
    <6.25 전쟁의 진실과 역설>(김명섭 연세대 교수)이란 글을 읽고
    깜짝 놀랐다.

    6.25를 남침(南侵)전쟁이라 부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김교수는
    “6·25전쟁 대신 <6·25남침전쟁>을 공식 용어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남침]은 자칫 [남쪽의 침략]으로 곡해(曲解)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곡해한다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모든 국어사전에서
    [남침]이란
    “북쪽에서 남쪽으로 침략함”을 의미한다.
    국제정치학계나 역사학계에서도
    러시아의 남진정책, 중국의 남진정책이라 하면,
    남쪽으로 진출하는 정책,
    동진정책하면 동쪽으로 진출함을 의미하는 것은 상식이다.
    심지어 북한의 역사책자(조선전사, 현대조선력사 등)에서도
    남침에 대해 같은 의미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남침하면 [남쪽의 침략]으로 곡해할 수 있어
    <6.25 남침전쟁>으로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비과학적이며 정말 한심한 주장이다.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 남침을 그렇게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용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주도록 계도해야 되는 것 아닌가?
    (또한 김명섭 교수의 글에서는
    이 문제말고도 6.25에 대해
    창조전쟁이니, 남북한에 억압체제를 낳은 전쟁이었다는 등의
    상식적으로나 학술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반론하기로 하자) 

    우리가 <6.25전쟁>을 <6.25 남침전쟁>이라고 호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북한 김일성이 자행한 반문명적-반민족적-반인륜적 침략전쟁의 책임소재를
    명백히 하자는 것이다.  

    실제, 6.25를 앞두고
    매년 정부나 언론사 등에서는
    학생이나 성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데,
    올해에도 역시
    상당수가 6.25 남침전쟁의 발발연도와 북한의 남침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국가발전을 담당해야 할 청소년들이
    현대 한국사의 대비극인 <6.25 남침전쟁>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것은
    정말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종북세력들의 6.25에 대한 입장이다.
    이들은 6.25전쟁에 대한 북한당국의 왜곡된 선전을 그대로 수용하여,
    미국과 한국이 야합하여 도발한 북침전쟁이며
    북한이 이에 대항한 정의의 조국해방전쟁-민족해방전쟁이라고 정당화하고 있다.
    정말 망국적 인식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한국 현대사의 대비극인 6.25전쟁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첫째,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발발된
    명백한 침략전쟁이다.
    이러한 사실은
    ① 전쟁 중에 노획된 북한군의 <선제타격작전계획>이란 비밀문서
    ② 전쟁포로들의 증언과
    ③ 한국과 미국의 자료들에서도 입증되었지만,
    공산권 붕괴이후 밝혀진 구 소련의 비밀자료 등에서 명백히 확인되고 있다.  
    1994년 러시아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러시아 옐친(Boris N. Yeltsin) 대통령이 제공한 6·25전쟁 관련 비밀문서에는
    "김일성의 요청을 스탈린(Joseph V. Stalin)이 승인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다”
    내용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또한 흐루스쵸프 전(前) 소련공산당 서기장 회고록에서도 이를 확인해준다.
    결국 구 소련 비밀문서의 공개에 따라
    북침설, 좌파 수정주의학자들의 전쟁유도설, 내란확전설 등은
    명백한 사실(fact) 왜곡, 역사조작임이 드러났다.

    특히 6.25전쟁에 대해 국내에 좌파수정주의 사관을 유포시킨 주범인
    부르스 커밍스(Cumings,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최근 서울신문과 대담을 하며
    1980년대 초 내놓은 남침유도설을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늘어 놓고도 아직 반성하지 못하고, 6.25전쟁은 미국과 한국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하는 궤변을 늘어 놓고 있다.(이에 대해서도 곧 반박한 글을 쓸 예정이다)
    커밍스의 대담 내용은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민과 세계지성사를 우롱하는 것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3년 1개월에 걸친 6.25 남침전쟁으로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되는 등 한반도 전체가 폐허화됐고,
    민간인 인명피해는 2,490,968명(한국 990,968명, 사망 244,663명, 학살 128,936명, 부상 229,625명, 납치 84,532명, 행방불명 303,212명, 북측 1,500,000명)과
    피난민(320만여명), 전쟁미망인(30만여명), 전쟁고아(10만여명)를 양산시켰다.  

    북한군은 점령기간 중
    군인-경찰과 그들 가족-우익애국인사-지식인-종교인 등 양민 13만 명을 학살하였으며,
    남한청소년 40여만 명을 의용군으로 징집하여 형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하는
    동족상잔의 만행을 저질렀다.
    한국군 및 유엔군의 인명피해를 보면,
    전사 178,569명, 부상 555,022명, 실종 28,611명, 포로 14,158명으로
    무려 총776,360명에 달한다.
    이러한 엄청난 인명피해가 북한의 남침에 의해 발생한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 소련의 지원에 의한 북한군의 기습남침과 중국군의 참전으로
    낙동강방어선까지 밀려 공산화의 직전상황에서 한국이 기사회생한 것은
    바로 미국과 유엔군 신속한 참전과 적극적인 지원때문이었다.
    이 역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군 등 유엔참전국 용사 4만여 명이 전사하였으며,
    부상,실종자까지 무려 154,881명의 인명피해을 입었다.  

    미국 워싱톤D.C.의 링컨기념관 옆에 있는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에는
    6.25 남침전쟁때 참전한 미국군 한소대가 비를 맞으며 전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19인의 용사상>과
    참전비에 새겨진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우리는
    6.25전쟁시 조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국군장병들과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인 한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국가부름을 받고 희생당한 미군 및 참전 유엔군들에게
    머리 숙여 애도와 경의를 표해야 하며,
    이분들의 희생이
    오늘 세계12위권의 경제대국인 자유 대한민국의 번영을 있게 한 밑거름이 되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6.25 남침전쟁 발발 63주년 아침,
    김명섭교수의 주장과 부르스커밍스의 궤변은
    필자로 하여금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참전용사들을 뵐 면목이 없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