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학년 학부모들에게만 인기, 고학년 되면 혁신학교 기피 “혁신학교, 없어져야 한다”..“다른 학교 돈 뺏어 재정지원, 공평치 않다” 전교조 교사들, 교장 지시보단 전교조 지시 더 중요하게 여겨
  • ▲ 2010년 10월 6일, 취임 100일을 맞은 기자간담회에서 서울형 혁신학교에 대한 청사진을 밝히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연합뉴스
    ▲ 2010년 10월 6일, 취임 100일을 맞은 기자간담회에서 서울형 혁신학교에 대한 청사진을 밝히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연합뉴스

     

    혁신학교는 2010년 치러진 전국 교육감 선거에서 단연 최고의 화제였다.

    정체된 교단의 변화를 바라던 학부모들은 혁신학교와 친환경 무상급식을 내세운 [깡통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들에게 표를 던졌다.

    그만큼 혁신학교에 대한 세상의 기대는 컸다.

    같은 동네에 있는 일반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새로 문을 연 혁신학교는 아이들로 붐볐다.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만족도 역시 대체로 높았다.

    교장과 교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교조 교사들로 채워진 혁신학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견해도 있었지만, 이런 평가는 체험학습과 평등, 공동체 교육을 내세운 혁신학교의 새로운 모습에 묻혔다.

    혁신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인기는 정말 좋았다.

    일반 학교보다 혁신학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우려 섞인 지적에도 불구하고, 서울지역의 혁신학교는 첫 해 23곳에서 올해 61곳으로 크게 늘어났다.

    전교조는 혁신학교를 공교육 전체의 대안이자 희망이라고 역설했다.

    지난해 말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재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전교조 위원장 출신 [깡통진보] 후보를 철저히 외면했음에도 혁신학교에 대한 전교조의 자신감은 여전했다.

    이같은 자신감의 바탕에는 학부모들의 높은 지지가 깔려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혁신학교 인근 전세값이 1억원 넘게 뛰어오르는 기현상마저 나타났다.

    혁신학교에 대한 인기와 높은 만족도는, 교육감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전교조가 자신감을 잃지 않는 원천이 됐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사실 서울지역 교단에서 혁신학교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교장과 교감 등 학교관리자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평교사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학교에 비해 뒤처지는 학업성취도에 대한 우려와 전교조 교사들이 중심이 된 교원 구성 등의 폐단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와도 같았다.

    오늘 만난 A교장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몹시 무겁게 말을 꺼냈다.

    자신과 함께 일하고 있는 전교조 교사들과, 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듯 했다.

    그러나 그는 본인이 체험했고 봤으며, 알고 있는 혁신학교에 대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에는 혁신학교 2년의 빛과 그림자, 일반인은 알지 못했던 혁신학교에 대한 불편한 진실, 그리고 일선 현장에서 바라본 혁신학교의 실제와 전교조 교사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A교장은 61곳에 이르는 ‘서울형 혁신학교’ 교장 중 한 명이다.
    교단 경력은 약 40년.
    혁신학교 교장을 하기 전에는 일반학교 교장으로도 있었다.

    그가 있는 혁신학교 역시 전교조 교사들이 상당히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전교조 교사들과의 충돌은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혁신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교육적 관점에서만 볼 때 혁신학교는 없어져야 할 대상이란 것이다.

  • ▲ 서울형 혁신학교 안내 페이지 화면 캡처.ⓒ
    ▲ 서울형 혁신학교 안내 페이지 화면 캡처.ⓒ

     

    1. 혁신학교 교장으로 부임하고 나서 첫 느낌은 어땠나?

    좋았다.
    나도 좋았고 교사들도 좋았다.

    어차피 전교조 교사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왔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부딪히는 일도 없었다.
    전교조 교사들도 다른 선생님이었으면 더 많이 싸웠을 텐데 자신들의 의견을 잘 반영해 줘서 고맙다는 뜻을 나타내곤 했다.


    2. 밖에서 볼 때는 초빙교원들과 전교조 교사들 간 불화가 있다는 말들이 있는데.

    그건 맞다.
    교장은 원하는 경우 절반 정도의 교사들을 초빙해 올 수 있다.

    교장이 마음에 맞는 교사들과 함께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자율권이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교장이 초빙한 교사들과 전교조 교사들이 학교운영을 놓고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갈등이 깊어지는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3. 초빙교사(비전교조 교사)와 전교조 교사간 갈등의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

    전교조 교사들은 전교조이슈들에 대해 지시를 받는게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다면평가 거부와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 같은 것이다.


    4. 다면평가라면 교원평가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현재 교원평가는 제도적으로 동료간 평가가 있다.
    이것을 다면평가라고 하는데 전교조가 이것을 반대하도록 지시를 하는 것이다.

    전교조 교사들은 중앙에서 지시를 받은대로 다면평가를 거부하고, 반면 초빙교사들은 그런 전교조 교사들과 대립하면서 다툼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교장이 받는 스트레스가 정말 매우 크다.


    5. 비정규직 합법화는 지난해 말 급식노조 파업의 주요 이슈였다.

    이것도 전교조가 이슈화해 교사들이 교장들에게 요구하는 사항 중 하나다.
    혁신학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들을 정규직화 하고 인건비도 올려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사항이다.
    이 부분에서도 초빙교사들과 갈등을 빚는다.

    전교조 교사들은 교육청에서 받은 지원금(1년간 1억 4천만원 정도)을 활용해 비정규직들의 인건비를 올려줄 것을 요구하지만, 초빙교사들은 학생들을 위해 써야 할 돈을 그렇게 쓸 수는 없다며 반대한다.


    6. 재정지원 이야기가 나왔으니 물어보겠다.
    혁신학교는 연간 1억원이 넘는 재정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비용은 대체적으로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하다.

    혁신학교 지원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사실상 학교의 재량사항이나 다름없다.
    시교육청이 규제를 한다고 하지만 자율의 폭이 크다.

    특히 지원금을 인건비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교조는 이를 근거로 비정규직에게 지원금을 쓰자는 요구를 한다.

    그런데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7.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비정규직에게 인건비를 올려주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비정규직도 법령에 따라 각각 정해진 급여가 있다.
    그런데 혁신학교 조례를 근거로 하면 인건비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조례대로 그리고 전교조 교사들의 요구대로 비정규직들의 인건비를 올려주면, 법령에 반하는 것이 된다.

     

    8. 또 어디에 지원금을 쓰는가?

    학생들의 체험학습 같은 곳에 쓰인다.
    혁신학교에서 이뤄지는 체험학습은 대부분 공짜다.
    이게 학부모들이 혁신학교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아이가 혁신학교에 다니면, 부모의 금전적 부담이 대폭 줄어든다.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신설된 혁신학교는 더 그렇다.
    보통 신설학교의 학생 수는 1~2백명에 불과한 곳들이 적지 않다.
    이런 학교에 7천만원(학기당)을 준다고 생각해 봐라. 뭐는 못하겠나?


    9. 혁신학교이기 때문에 특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이 풍족하기 때문에 차별화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더 큰 문제는 이 돈이 남의 것을 뺏어온다는 데 있다.
    교육예산이란 것은 한정돼 있다.
    혁신학교에 대한 지원금은 결국 다른 학교들이 받아야 할 예산을 뺏어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억원이 넘는 혁신학교에 대한 재정지원은 다른 학교에 대한 역차별이다.

    돈만 많으면 다른 학교들도 혁신학교처럼 무료로 체험학습 갈 수 있다.
    진짜 혁신학교를 할 거면 돈을 주지 말아야 한다.

    현재와 같은 방식의 혁신학교는 다른 학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서라도 하면 안 된다.


    10. 혁신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는 이야길 들었다.
    전교조도 이 점을 강조하곤 한다.
    혁신학교 주변 전세값이 폭등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혁신학교 주변 전세값은 다른 곳보다 1~2억원씩 뛰어오르는 곳들이 적지 않다.
    혁신학교로 전입하려는 학생들도 많다.
    그만큼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저학년에서만 인기가 높다.
    고학년은 아니다.


    11.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저학년 학부모들은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내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정원보다 두 배 넘게 학생들이 몰리는 학교도 있다.
    공부보단 체험이 주류고 공짜고 하니까 인기가 많다.

    그런데 고학년 학부모들은 그렇지 않다.
    (학업이)뒤떨어질 것을 불안해 해서 오히려 혁신학교를 보내려고 하지 않는다.

    혁신하교 주변 전세값이 오르는 것도 저학년 학부모들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 때만 혁신학교 다니게 하고, 고학년이 되면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기 때문에 집값이 아니라 전세값이 오르는 것이다.


    12. 재정지원 말고 혁신학교가 다른 학교와 차별화되는 것은 무엇이 있나?

    학교운영에서 다른 학교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혁신학교에서는 사소한 것도 모든 교사들이 협의를 해서 결정을 해야 한다.

    혁신학교에서 교장은 다른 교사와 같이 ‘n분의 1’일 뿐이다.

    전교조 교사들에겐 교장도 교사 중 한 명이란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교장의 지시나 권한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레서 어떤 사항이든 ‘다모임(모든 교사들이 모인다는 뜻을 가진 전체 회의. 전교조 교사들이 흔히 부르는 말이라고 함)’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리더가 없다.
    5분이면 해결할 일은 10시간, 20시간이 넘도록 회의만 하고 끝을 맺지 못하는 일들도 있다.

    사공이 많으니 배가 바다로 가는지 산으로 가는지 모를 때가 많다.

     

  • ▲ ⓒ서울형 혁신학교 메인페이지 중.
    ▲ ⓒ서울형 혁신학교 메인페이지 중.


     

    13. 혁신학교 교장으로서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평가는?

    개개인을 보면 정말 열심히 하는 교사들이다.
    열정이 대단한 분들이다.

    다만 전교조 이슈들이 있을 땐 지시가 있으니까 그걸 실천하려고 한다.
    그들은 교장인 내 지시보단 전교조 지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전교조 이슈와 학교운영이 맞지 않거나, 교장의 생각하고 자신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싸우게 된다.


    14. 혁신학교 교장들의 심정적 스트레스가 상당히 클 것 같다.

    교육감까지 바뀌었으니 위(교육청)와 아래(전교조 교사들) 사이에 끼어서 교장들의 스트레스가 더 심해질 것이다.
    아마도 현재 (혁신학교)교장 중에 명퇴(명예퇴직)하겠다고 나오는 사람들이 분명히 생길 것이다.


    15. 오로지 교육적 관점에서 볼 때, 혁신학교를 어떻게 보는가?

    없어져야 한다.
    남의 돈 뺏어서 혁신학교 하는데, 형평성에 맞지 않다.
    정말 하고 싶으면 재정지원 없이 해야 한다.

    다른 학교랑 똑같이 해야 한다.
    전통있는 학교, 여건이 좋은 학교들이 돈 때문에 역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현직 교장들 중에 어느 누구도 혁신학교 운영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 줄 아는가?

    바로 전교조 선생님들 때문이다.

    학교마다 전교조 교사들하고 싸우기 싫어 부담인데, 혁신학교가 생기면 그 지역 전교조 교사들이 그곳으로 모두 빠지니까, 다른 학교 교장들 입장에선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