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방·남북 회담 등 외교 일정 속 일방적 개헌 스케쥴 발표…논의할 시간조차 없어
  • ▲ 진성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이 19일 오전 개헌안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DB
    ▲ 진성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이 19일 오전 개헌안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DB
    청와대가 오는 26일 개헌안을 발의하기 위한 마무리작업에 착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헌법 개정안을 3월 26일 발의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위해 오는 20일부터 3일간 조국 민정수석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관련 내용을 브리핑할 예정이지만, 대통령 순방·남북 고위급 회담 등 외교일정과 맞물리는 시기여서 꼼수 개헌을 감추기 위한 요식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진성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은 이날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당초 대통령은 3월 22일부터 28일까지의 해외순방 일정을 감안, 귀국 후 발의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헌법이 정한 국회 심의기간 60일을 보장해달라는 당의 요청을 수용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진 비서관은 "대통령은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분야별로 국민께 상세히 공개하고 설명하라 지시했다"며 "20일에는 전문·기본권, 21일에는 지방분권·국민주권, 22일에는 정부형태 등 헌법 기관의 권한과 관련한 사안을 공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청와대는 대통령 개헌 발의 시점을 지난 21일로 내부적으로 검토했으나 늦췄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시한은 법적으로 정해졌다. 그때까지 (국회에서) 합의나 논의의 진전이 없으면 대통령으로서는 발의하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의 발의시한 문제는 법률적으로 21일까지이지만 정무적으로는 국회의 합의·논의에 달려있다"고 했다.

    이날 진 비서관은 "당초 21일도 검토한 바가 있었지만 21일은 행정적 절차를 수행하는 절차에 필요한 시일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물리적으로 필요한 시간은 78일인데, 그럴경우 마지막 시한은 26일"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설명에 따라 청와대는 오는 20일부터 22일까지 개헌안의 주요내용을 설명한 뒤, 26일 대통령이 발의하는 방식으로 개헌을 추진할 전망이다. 그러나 곧바로 '꼼수'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개헌안 내용의 공개에서 발의까지 시간적 여유가 없고, 환경적인 조건도 개헌안을 논의할만한 상황이 못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당초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국민헌법 자문특별위원회의 자문을 구하고도 작성한 개헌안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시일을 미루다가 대통령 개헌안의 주요내용만 공개하게 된 것이다.

    또한 청와대가 마지막으로 개헌안의 내용을 설명하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순방일정에 올라 개헌안의 내용에 관해 여론을 수렴할 방법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베트남과 UAE(아랍에미리트)를 거치는 빡빡한 일정을 앞두고 있다. 개헌안 발의 역시 전자결재로 이뤄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일단 대통령 개헌안은 한 번 발의하고 나면 중간에 더하거나 빼는 방식으로 고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발표하는 개헌안 역시 충분한 공론화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방의 해설 형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조국 민정수석이 직접 세 차례에 나눠 당위성과 방향, 내용을 말씀드리고 설명하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법무비서관실이 실무를 담당하는데 총괄이 민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 순방 이후 일정도 개헌안을 널릴 알릴 수 있을만한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 당장 청와대는 4월 말 진행되는 남북정상회담의 준비를 위해 3월 말 남북 고위급회담을 먼저 개최키로 한 상태다. 여기에 5월말 미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한미 정상회담은 물론 일본이 참여하는 한일·한중일 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대로라면 개헌안이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채로 6.13 지방선거에 오를 가능성이 큰 셈이다.

    실제 청와대는 "주요 쟁점은 6.13 지방선거때 동시 개헌투표 문제와 권력구조, 발의주체인데 투표 문제는 국민적 압도적인 의견이 동시투표로 모아졌다"며 "발의주체 역시 대통령이 발의해도 국회가 더 논의해서 합의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어, 대통령이 발의하지 말고 국회에 넘기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개헌 이슈를 대통령이 주도해 끌고가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다만 대통령이 개헌안을 낸다고 하더라도 국회에서 3분의 2를 넘겨야 하는 점은 여권에 남겨진 숙제다. 자유한국당의 의석수는 현재 116석으로, 당내 세력만 잘 결집시킬 수 있다면 독자 저지가 가능하다. 실제 개헌안이 국민투표까지 갈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이유다.

    이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개헌을 주도하면서 야당을 압박하는 한편, 개헌논의가 깨질 경우 '야당책임론'을 들어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이날도 청와대는 국회가 개헌 논의에 속도를 내달라고 재차 강조했다. 진성준 비서관은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국회의 합의를 존중할 것"이라며 "국회가 신속히 논의·합의해달라 당부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