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작가 동명 소설 뮤지컬 무대로…박은태·이규형·신성록 등 출연2026년 3월 8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서 초연
  • ▲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의 출연 배우 박은태와 신성록이 9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연합뉴스
    ▲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의 출연 배우 박은태와 신성록이 9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연합뉴스
    자격루, 측우기, 다연발 무기 신기전 등을 발명한 장영실(1385~미상)은 노비의 신분이었지만 세종의 총애를 받아 종3품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는 1442년 임금이 타고 갈 수레를 잘못 만들어 태형 80대에 처해진 뒤 쫓겨났다는 마지막 기록을 남기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어디에서 죽었고 후손은 누구인지 어떤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이상훈 작가의 장편 소설 '한복 입은 남자'(2014, 536쪽)가 동명의 뮤지컬로 재탄생된다. 작품은 곤장을 맞고 쫓겨난 이후 장영실의 행적을 좇는다. 이상훈 작가는 자료를 조사하던 중 장영실의 발명품과 도르래 원리를 이용한 기중기, 다연발 로켓, 물시계, 비차 모형도 등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스케치 사이에서 유사점을 발견했다.

    작가는 장영실이 세종의 배려로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건너가서 다빈치의 스승이 됐다는 역사적 가정 아래 놀라운 상상력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서양인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 그림이라고 알려진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의 모델과 명나라 정화의 마지막 행적, 실록이 전하지 못한 장영실의 생애를 촘촘하게 연결했다.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는 엄홍현 총괄 프로듀서를 필두로 권은아 연출·극작, Brandon Lee(이성준) 작곡·음악감독, 서숙진 무대디자이너, 문성우 안무감독, 오유경 의상지다이너 등이 합류했다. 1막은 조선, 2막은 유럽을 배경으로 펼쳐지며 한국적 미학과 유럽의 화려함이 공존하는 무대 연출이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엄홍현 총괄 프로듀서는 다빈치의 이야기로 뮤지컬을 제작할 계획이었다가 코로나 당시 소설책을 읽고 마음을 바꿨다. 그는 "신작을 올리는 데 평균 7년이 걸린다. 그동안 유럽을 배경으로 하거나 전 세계 진출을 목표로 뮤지컬을 개발하고 결정했다. '한복 입은 남자'를 읽고 '과연 내가 다빈치라는 세계적인 천재보다 장영실을 잘 알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제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털어놨다.
  • ▲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공연 장면.ⓒEMK뮤지컬컴퍼니
    ▲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공연 장면.ⓒEMK뮤지컬컴퍼니
    이어 "K-컬처가 유행하고 있는 시점에서 장영실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건 아니다.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역사에 이런 분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해주면 흥미롭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며 "영어·중국어·일어 자막기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 작품이 언제 해외에 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마음이 모여서 노크하다 보면  세종대왕과 장영실에 관해 해외 관객들도 함께 느끼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이제 그만 너를 놓아주려 한다. 하늘이 내려준 인재이거늘, 힘없고 약한 이 땅에서 태어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도다. 부디 이 좁은 조선 땅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가라."(339쪽) "알아보는 사람들을 피해 녹사복 차림으로 급히 이곳을 떠나거라. 돈의문을 나가면 붉은 전립을 쓴 사람이 말을 가지고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말에 오르거든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가 이끄는 대로 달리거라. 그가 너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해줄 것이다."(340쪽)

    권은아 연출은 방대한 소설의 원작을 줄이기 위해 "장영실이 다빈치를 만났다는 설정은 예술적 창의성에서 기발하고 참신하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다빈치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범접할 수 없는 천재댜. 장영실이 다빈치를 만났든 만나지 않았든 그의 업적이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천재성을 가진 아이와의 만남으로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된 지점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설에서 현실 속 진석과 유럽으로 간 영실이 어떤 대단한 승리를 거두지는 않는다. 그 점이 고민스러웠다. '나도 소위 말하는 매운 맛과 도파민에 중독된 어른이 됐구나' 싶었다. 진석과 영배가 또 다른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사회가 정한 성공이나 승리에 행복의 기준을 맞추지 말자는 위로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풍성한 오케스트라로 구현된 서정적인 한국적 선율과 깊은 울림을 주는 음악은 장영실의 여정을 한층 드라마틱하게 완성한다. '그리웁다', '비차', '너만의 별에', '한 겹' 등 주요 넘버는 시대와 공간을 넘어 인물의 감정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며 이목을 사로잡는다.
  • ▲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의 출연 배우들이 9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연합뉴스
    ▲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의 출연 배우들이 9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성준 음악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서양음악을 중심으로 작업해 왔다. 이번에 한국 음악을 공부하면서 제 마음과 리듬 속에 한국적인 요소들이 많았더라. 초등학교 시절 민요를 부르고, 풍금을 통해 배우던 음악들이 었었다. 왕이 등장할 때는 대취타와 태평소를 사용한다. 장영실이 부산 태생인데, 나름 연결고리를 맞추기 위해 밀양아리랑을 인용했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보편화된 것들을 오케스트라와 전통악기들로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뮤지컬은 전 배역이 1인 2역을 맡아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는 인물들을 연기하며 사회의 모순과 인간 군상을 입체적으로 담아낸다. 조선의 천재 과학자 '영실'과 비망록의 진실을 추적하는 학자 '강배' 역에 박은태·전동석·고은성,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과학 발전에 힘쓴 '세종'과 비망록 속 진실을 좇는 방송국 PD '진석' 역에는 카이·신성록·이규형이 무대에 오른다.

    신성록은 작품 참여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 역사와 실존인물을 소재로 뮤지컬을 만든다는 것이 굉장히 궁금했다. 그동안 '지킬앤하이드', '드라큘라' 등 해외 인물을 많이 연기했다. 뮤지컬에서 세종이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며 창작 초연이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고 참여한 건 아니다. 연습하는 과정에서 의기투합해 함께 만들어나가자 하나의 마음으로 임했다"고 밝혔다.

    박은태는 "정화대장이 장영실을 남겨두고 떠나는 장면이 있다. 영실은 남아서 '그리웁다'를 부르는데,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배우 입장에 당시 장영실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엄마·아빠랑 헤어지는, 군대 가기 전날의 느낌이랄까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감정일 것 같다"며 "거창하게 장영실의 생애나 다빈치와의 만남도 재미 요소지만, 인간적인 감정에 큰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장면이 많다. 남녀노소 누구나 봐도 거부감 없이 공감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2일 개막한 '한복 입은 남자'는 2026년 3월 8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초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