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원·권리당원 1:1 표 비율, 80% 이상 찬성투표율은 16.81%에 그쳐 … "鄭 비토 정서 추정"李 대통령도 명목상 대의원제는 유지했는데鄭 무리수에 "호남 바탕으로 연임 노림수 의심"
  •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이종현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이종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대의원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방향의 '당원 1인 1표제'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당 안팎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권리당원의 권한 강화로 '당원 주권 시대'를 열겠다는 것은 정청래 대표의 공약이지만, 자칫 호남 지역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져 민주당이 '호남당'에 갇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21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의 당내 민주주의가 당원의 손으로 완성되는 순간과 그 과정을 우리는 보고 있다"며 "90%에 가까운 당원의 뜻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밝혔다.

    정 대표는 "당원들 뜻이 우리 당규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당무위, 중앙위 절차를 밟아 나가겠다"며 "대의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던 과거 의사 결정 구조를 벗어나 당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이 당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음을 몸소 느낄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지난 19~20일 이틀에 걸쳐 권리당원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한 당헌·당규 개정 방향에 대해 전 당원 의견을 수렴하는 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80% 이상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견 수렴 조사는 대의원·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기존 20 대 1 이하에서 1 대 1로 변경하는 안건, 내년 지방선거 광역·기초의원 비례대표 후보자 선출 방식을 기존 각급 상무위원회 투표에서 권리당원 100% 투표로 변경하는 안건, 내년 지방선거에서 후보자가 4인 이상일 경우 예비경선 실시 및 권리당원 투표 100% 방식 등 세 가지 안건을 두고 실시됐다.

    이중 가장 핵심은 대의원·권리당원의 표 행사 비율을 1 대 1로 등가시키는 개정안이었는데, 86.81%(24만116명)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 참여자 대다수가 대의원 가중치를 없애는 당헌·당규 개정 방향에 지지를 보낸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빠르면 이달 안에 내년 지방선거 공천안 등을 확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러한 '정청래 룰'이 불러올 파장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권리당원 100%가 이대로 실현되면 권리당원 인구가 많은 호남 지역의 영향력이 지금보다도 비대해져 당이 다시 '호남당' 이미지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8·2 전당대회 때를 기준으로 해도 호남 당원은 당시 민주당 권리당원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할 만큼 당세가 집중돼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를 지냈을 때도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비중을 20 대 1 미만으로 낮추는 '당원 주권' 기조는 계속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이 당시 대표가 '대의원제'를 유지한 것은 민주당이 '전국정당'으로 남아야 한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됐다.

    민주당의 한 친명(친이재명)계 의원은 통화에서 "이 대통령도 당원 주권 강화를 표방했지만 민주당의 전국정당화를 위해 대의원제라는 순기능을 남겨두는 방식을 택했다"며 "대의원의 권한을 사라지게 하면 결국 당의 방향이 당원이 많은 호남 중심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정당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공략이 필요한 영남과 TK(대구·경북) 지역 조직은 당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구조가 굳혀져서 사실상 괴사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 사이에선 정 대표가 당권 연임 등을 위한 사전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차기 당권, 나아가 대권까지 노리고 대의원제를 무리하게 무력화하는 것은 '호남 대표성'이 커질수록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셈법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번 투표 참여율을 두고도 뒷말이 많다. '10월 당비를 납부한 당원' 164만5061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투표의 참여율은 16.81%(27만6598명)에 그쳤다. 당 일각에서는 정 대표에 대한 비토 정서가 저조한 투표율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여론조사 성격이지만 1인 1표는 당원들이 좋아할 만한데도 투표율이 매우 저조했다"며 "안건 자체에 반대하거나 정 대표를 비토해서 차라리 보이콧을 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예상보다 많은 권리당원이 함께했다"고 평가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당 지도부는 이번 의견 수렴 결과를 가장 무겁게 받들겠다"며 "최고위원회와 당무위원회, 중앙위원회의 의결 과정에서 당원 여러분의 뜻을 온전히 반영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