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용산 지구단위계획구역 6개 분리 확정서울시 "구역별 계획·인허가 속도 높여 공급 지연 해소"정비·건설업계 "사업성 있는 구역 먼저 추진…공급 일정 관리 유리"한강대로·삼각지 등 주거정비 축은 물량 확대 가능성고금리·10·15대책 여파 속 '용산 속도전' 실현 여부는 변수
  • ▲ 용산국제업무지구 조감도 ⓒ용산구
    ▲ 용산국제업무지구 조감도 ⓒ용산구
    서울 최대 지구단위계획구역인 용산 일대가 30년 만에 6개 구역으로 재편돼 '맞춤 개발'이 이뤄진다. 지난 1995년 처음 구역이 지정된 이래 개발이 지지부진했던 용산 일대가 신도시급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그동안 사업 추진에 시간이 많이 소요됐던 정비계획 기간을 대폭 단축하기 위해 서울역·남영역·삼각지·한강로 동측·용산역·용산전자상가 등 생활권별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13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2일 '제18차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고 용산 지구단위계획구역 및 계획 결정 변경안을 수정 가결했다. 시 측은 이번 방안에 대해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정비계획을 따로 수립할 수 있게 돼 속도와 유연성 모두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도시계획·정비사업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을 두고 "오세훈 시장의 주택 공급 대책 확장을 위한 대대적인 용산 판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오 시장이 잇따라 정비사업 계획을 발표 중인 가운데 마땅한 추가 부지 확보 어려운 상황에서 용산 일부 구역의 주택지 개발 속도를 높이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 ▲ 용산 지구단위계획 및 6개 구역 위치도 ⓒ서울시
    ▲ 용산 지구단위계획 및 6개 구역 위치도 ⓒ서울시
    ◆ 대규모 재개발 한계 드러난 용산…30년 만에 6등분해 '개발 속도전'

    용산 정비가 장기간 지연된 배경에는 '초대형 단일 구역'이라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서울역부터 삼각지·용산역까지 약 300만~350만㎡가 하나의 지구단위계획으로 묶여 있어 사실상 서울에서 가장 복잡한 이해관계가 한 도면에 겹쳐진 셈이었다.

    미군기지 이전 문제, 국제업무지구 무산 이후의 후속 계획, 전자상가 쇠퇴, 한강대로 개발 구상 등 서로 성격이 다른 사업들이 얽힌 데다 정비구역·역세권·상권이 한꺼번에 담기면서 계획 변경과 이해조정이 매번 수년씩 걸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개발 규모가 크면 기반시설을 일괄 정비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만큼 이해관계 조정에는 시간이 배로 든다"며 "용산처럼 정비사업 비중이 큰 지역은 생활권 단위로 나눠 설계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경리단길 일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상권이 자리 잡아 대규모 재개발에 대한 주민·상인 반대가 꾸준히 제기돼 왔고 서울시가 이번에 용산우체국 주변 특별계획구역을 해제해 개별 필지 개발을 허용한 것도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연구위원은 "6개 생활권으로 쪼개면 민원·동의율·사업성 같은 변수가 분산돼 조정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며 "사업자도 여섯 구역 중 사업성이 높은 곳부터 선택적으로 진입할 수 있어 참여 유인이 커진다"고 평가했다.

    서울시는 서울역 일대를 국제관문에 걸맞은 업무·교통 결합지로, 남영역은 한강대로 업무축과 연계한 업무거점으로 재편한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삼각지역은 용산공원과 맞닿은 중저층 주거지로, 한강로 동측은 주거·업무·녹지가 결합된 복합 생활권으로 방향을 잡았다. 용산역 일대는 국제업무지구를 염두에 둔 핵심 성장축으로, 용산전자상가는 AI·ICT 기반 신산업 거점으로 육성하도록 특별계획구역이 크게 확대됐다.

    이 연구위원은  "용적률·층수 등 핵심 규제가 구역별로 조정 가능해지면서 수익성을 높일 여지가 생긴다"며 "다만 특정 구역만 과도하게 풀면 쏠림이 생기기 때문에 큰 편차는 두지 않겠지만 하나의 완화가 다른 구역의 완화로 이어지는 확산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역별로 중점 계획을 제시하긴 했지만 사업자에 따라 업무 중점 구역에서도 주택 공급을 희망할 수 있기 때문에 앞선 계획보다 주택 공급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 ▲ 오세훈 서울시장 ⓒ뉴데일리DB
    ▲ 오세훈 서울시장 ⓒ뉴데일리DB
    ◆ '용산 주택공급' 탄력 받나…내년 지방선거 겨냥한 오세훈의 강력한 카운터 펀치?

    관련 업계에서는 서울시가 용산 지구단위계획구역을 6개 구역으로 분리한 것은 주택 공급 속도를 앞당기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오 시장은 12일 정비·건설업계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서울의 신규 공급은 결국 재개발·재건축에서 나온다"며 개발 필요성을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오 시장이 정비사업을 통해 공급을 신속히 끌어내야 한다는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며 "이번 용산 개발계획 분할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된다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용산을 6개로 나누면 사업성이 확보된 구역부터 바로 착수할 수 있고 난도가 높은 구역은 속도를 조절하며 단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며 "전체 공급 일정을 관리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고 설명했다.

    용산 지구단위계획에서 분리된 6개 구역은 기능별 역할이 명확하다. 용산역 일대는 국제업무지구 중심 개발이 추진되고 전자상가는 AI·ICT 기반의 신산업 혁신거점으로 재편된다. 한강대로 일대는 고층 업무시설과 상징축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정비가 잡혔다.

    반면 삼각지·한강로 동측·남영역은 중저층 주거지 재정비와 생활SOC 확충이 핵심 과제다. 업계에서는 이 세 구역이 사실상 용산권역의 주거 공급 중심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무 중심지보다 주거지 정비는 비교적 속도 조절이 용이해 발표·추진 일정이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용적률과 높이 제한을 구역 단위로 조정할 수 있게 된 만큼 속도와 공급 규모 모두 이전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시는 실제로 한강대로 일대 높이 규제를 기존 100m에서 120m로 완화하고 구역별 사업계획과 지역 특성에 따라 추가 완화도 검토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부와 서울시의 부동산 기조가 어긋난 상황에서 용산 개발은 오 시장이 '공급 확대'라는 자신의 전략을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무대"라며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이를 서울시장의 성과로 내세우려는 계산이 읽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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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데일리DB
    ◆ "행정 절차는 빨라지겠지만"…용산 정비사업 성패 관건은 사업성

    다만 용산의 정비 속도가 실제 사업 착수로 곧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구역별로 토지등소유자 구성과 사업 여건이 크게 다르고 용산역·전자상가 일대는 기반시설 확충과 초기 투자비 부담, 기존 상권과의 이해관계 조율 등 난도가 높은 과제를 안고 있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구역 분할로 행정 절차는 빨라질 수 있지만 조합 설립·동의율 확보·상권 재편·원주민 재정착 문제를 감안하면 착공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의 10·15 공급대책 이후 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진 점, 장기 고금리·건설비 상승으로 사업성이 약화된 점도 용산 추진 속도를 좌우할 변수로 지목된다. 

    민간 정비사업 전반이 수익성 저하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용산은 대규모 기반시설과 복합 개발이 요구되는 만큼 자금조달 여건이 더욱 까다롭다는 지적이다. 

    한편 서울시는 내년 상반기부터 6개 구역의 세부 지구단위계획 변경안을 순차적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특별계획구역 지정·변경도 병행될 예정이어서 개발이 가시적인 그림을 갖추는 시점은 빠르면 내년 중반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