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무지하면 나라 토대 무너져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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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8월 15일이 아니라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 출범이 우리 대한민국의 수립이었다는 주장은 분명한 역사왜곡입니다. 임시정부는 어디까지나 임시정부이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권능을 내외로 인정받는 정식 국가가 아닙니다. 국가가 수립된다는 건 국제적인 공인이 필요하며 국가가 국가로서의 권능을 가져야 가능합니다."
- ▲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서성진 기자
지난 여름 이종찬 광복회장이 던진 불씨로 대한민국에 '역사관 논쟁'이 들불처럼 번졌을 때 이인호(88) 서울대 명예교수(트루스코리아 상임고문)가 했던 말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당시 이 교수는 "'1919년 건국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며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 몇몇 사람의 발언으로 달라질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일'이라는 말만 꺼내도 '뉴라이트'나 '친일파'로 매도되던 상황에 이종찬 광복회장을 겨냥해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며 "출생 당시 어느 나라 호적을 받았나"고 당당히 되묻는 모습을 보면서, 일평생 '역사 바로 알리기'에 힘써 온 거장(巨匠)의 위엄과 신념, 그리고 품격이 느껴졌다.
이 교수는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 웰슬리(Wellesley)대학을 졸업하고, 1967년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 여성 최초로 박사 학위(러시아 역사학)를 받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후 국내외 대학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다, 주 핀란드 대사와 주 러시아 대사를 지내며 한국 최초의 여성 대사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특히 학계와 방송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대한민국의 왜곡된 근현대사를 바로잡는 일에 매진해 '행동하는 역사학자', '사상가형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KBS 이사장을 역임할 땐 수정주의 사관으로 가득한 '엉터리 다큐'가 KBS에서 방영된 것을 질타한 일로 좌파 학계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고려대와 서울대 등에서 역사학 교수로서 봉직할 때나, 주 러시아 대사 등 공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이 교수의 신념과 철학은 변함이 없었다.
이 교수는 그동안 논문, 신문 칼럼, 대중 강연, 인터넷 방송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오도된 사견(邪見)을 논박하고 설득·교정하는 작업을 오롯이 해 왔다.
'대한민국 건국은 혁명이었다'는 도서출판 '세이지'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미영 VON뉴스 대표 덕분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이 교수의 역사 수상록(隨想錄)이다.
이 교수가 묵혀 두거나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원고들을 우연히 본 김 대표가 이 중 몇 꼭지만이라도 서둘러 출판해야 한다며 독려하면서 주옥 같은 이 교수의 옥고(玉稿)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는 후문이다.
김 대표는 이 교수의 글 중 다음 세대가 읽고 바른 역사관을 갖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글들을 우선 골라 엮었다.
비교사적 관점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혁명'으로 조명하는 논문을 근간으로 하되, 오늘의 현실을 진단하는 에세이들을 연대별 역순으로, 이어 역사의 의미에 관한 글들을 글이 쓰인 연대순으로 수록했고, 마지막으로 건국 문제와 이승만 대통령에 관련해 최근 진행 된 VON뉴스 특별 대담을 정리해 수록했다.
당대 지성(至聖)으로 평가받는 노학자의 미공개 육필원고가 출간된다는 소식에 각계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유나이티드문화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은 혁명이었다' 출판기념회에는 △김길자 경인여대 명예총장(대한민국사랑회 회장) △조정진 스카이데일리 대표이사 △맹주성 법치와자유민주주의연대 이사장(한양대 공대 명예교수)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황교안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이사장(전 국무총리) △민경욱 전 의원(가가호호공명선거당 대표) △허병기 인하대 공대 명예교수 △권오용 변호사 등 기라성 같은 저명인사들이 총출동해 성황을 이뤘다.
벌써 몇십 년이 지나 시효가 지났을 글들을 어떻게 이제 출판하느냐는 나의 항의에, '아직도 우리나라에선 이런 글들을 읽혀야 할 필요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주변 분들의 말씀을 듣고 용기를 냈다는 이 교수.
그는 "국민 전반이 역사에 대해 무관심하고, 자기들이 몸 담고 있는 나라의 토대가 파괴되고 있음을 감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적'들과의 역사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며 "부디 이 책이 의식의 위기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을 구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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