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해야 할때 거침없이 말한다“노(no)”라 할 때 거침없이 “노(no)”라 말한다정치적 타산-중도확장? 신경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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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전선(戰線)
대한민국 정체성을 수호하려는 세력과
그것을 타파하려는 세력의 싸움이 마지막 결판으로 가고 있다.
자유 진영 입장에서,
이 싸움은 두 개의 전선에서 전개되고 있다.
첫째 전선은
“대한민국이냐 반(反)대한민국이냐?”의 본 게임이다.
둘째 전선은
“어떻게 하는 게 잘 싸우는 것이냐?”의 방법론이다.
첫째 전선은 자명한 사항이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둘째 전선이다.
어떻게 싸우는 게, 정말로 잘 싸우는 것인가?
이론적 설명은 머리만 복잡하게 만든다.
사례를 들어 바라보는 게 훨씬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 박민식·원희룡·한동훈, 잘 싸우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
박민식·원희룡·한동훈(가나다순) 장관들처럼 싸우는 게,
잘 싸우는 것이라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다른 의견도 충분히 존중한다.
그들이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처럼 정직하고 용감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게,
필요하고도 중요하다고 볼 뿐이다.
그들처럼 싸워서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결과’는 하늘의 뜻에 맡긴다.
승리한 김유신 장군이나,
패배한 계백 장군이나,
결과를 미리 보고 싸운 게 아니지 않은가?
지순(至純)한 마음으로 목숨을 걸었다뿐이다.
필자는 바로 그 대목에 주목하고 싶다.
오늘의 반(反)대한민국 세력에 대한 투쟁에서도,
자유 전사(戰士)라면 마땅히 얄팍한 정치적 타산을 하기보다는,
지순한 마음으로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라 본다.
국민의힘 직업정치인들과 기회주의자들은 이와 달리,
극좌 세상의 눈치나 살피며
카멜레온적 처신으로 요리조리 영합하려 한다.
하지만 잔머리 굴려 봤자다.
‘밤새 생각한 꾀가 죽을 꾀’일 수 있다.
■ '민국'이냐 '인민공화국'이냐
이에 비하면 박민식·원희룡·한동훈 장관은,
말해야 할 때 거침없이 말하고,
“노(no)”라 해야 할 때 거침없이 “노(no)”라 말한다.
이건 쉬운 게 아니다.
박민식 장관은,
정율성 공원에 관한 좌파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면서,
하늘이 두 쪽닌대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결기를 보였다.
대한민국이 대한인민공화국으로 바뀌지 않은 한,
어떻게 공산당원을 기리자고 하느냔 것이다.
원희룡 장관은,
양평고속도로에 관한 좌파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참 검투사(劒鬪士)의 모습을 유감 없이 보였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되든 칼을 뽑아야 할 땐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동훈 장관은,
좌파 야당 의원들에 대한 ‘무례’를 사과하라는 안민석의 요구에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그의 탁월한 논리와 반박이,
좌파 야당 의원들 눈엔 아마 ‘무례’로 비쳤던 모양이다.
그런 게 ‘무례’라면,
그것을 더, 더, 더 치열하게 하라고 갈채하고 싶다.
■ 기회주의 언론의 중도확장론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가?
대한민국이냐 반(反)대한민국이냐의 싸움에서 대한민국이 이기려면,
국민의 힘을
박민식·원희룡·한동훈 같은 자질(資質)로 시급히 재창출했으면 하는 절실한 소망에서다.
일부 언론들은 ‘중도확장’이란 필요에서
윤석열 대통령·박민식·원희룡·한동훈 장관처럼 각을 세워 싸우지 말라고 한다.
“중도를 끌어오자”란 당위 자체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자유 진영이 본연의 정체성을 버리고
알쏭달쏭한 그 무엇인가로 좌(左)클릭해야 한다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먼저 자유의 이념이 서고,
그 다음에 실용의 정책이 뒤따라야만 체계(體系)적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박민식·원희룡·한동훈 장관에게 거듭 강조한다.
‘명확하고 확실한 진술’을 왜 자유 진영은 해선 안 되나?
자유의 이념야말로 그런 것이고 그래야만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