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의 배신 불구...미국을 이용한 유엔전략에 압승여류 독립운동가 임영신-모윤숙, 필사적인 외교 헌신2월의 건국 드라마...꺼져가는 대한민국 운명 살리다
  • ▲ '국군을 죽어 말한다'의 시인 모윤숙.
    ▲ '국군을 죽어 말한다'의 시인 모윤숙.
    ●2월의 건국 드라마 #2---<‘마법의 이름’ 이승만>

    미모 여류시인과 인도 외교관의 ‘달밤 데이트
    이승만, 스탈린을 격파...31대2 독립전쟁 압승

    “남산의 저 소나무들이 말라죽어도 저의 형님에 대한 신의는 변함이 없습니다.” 
    한 살 아래 김구가 이승만 박사에게 맹서한 말이다. 
    1947년 11월 유엔감시 남북한 총선 결의안이 유엔서 통과되자 이승만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며 자유민족세력의 단결을 위해 믿음직스럽지 못한 김구를 여러번 만나 결속을 다진다. 소련이 유엔결의를 거부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김구는 단언했다. “남한만이라도 선거해서 독립정부를 세워야한다. 제주도에 세우더라도 한반도 대표정부다. 누가 단독정부라 하느냐. 유엔이 인정하는 중앙정부다.”
    이듬해 1월22일 예상대로 소련이 ’북한선거‘를 거부했다. 26일 갑자기 김구가 남한단독선거를 거부한다. 철석같이 약속한지 두달도 안돼 김구가 태도를 돌변한 것이다. 행여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남산 소나무들이 벌써 말라죽은 모양이군” 허탈한 이승만은 임시정부 때부터 겪은 일인지라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유엔 한국위원단 역시 두 패로 갈린 것. 한반도전체 선거가 불가능해졌으니 철수하자는 측과, 유엔 결의이므로 선거 가능지역 남한만이라도 실시해야 한다는 측의 공방이다. 결국 위원단은 유엔본부의 결정에 따르기로 하고 위원단 의장 메논 박사(인도 대사)를 유엔에 파견하기로 한다. 즉, 대한민국의 건국은 중립국 인도 외교관 메논의 손에 쥐어진 운명이 되었다. 

    ◆여류시인 모윤숙, 메논을 달밤 드라이브 이끌어내

    메논이 유엔으로 떠나기 전날 2뤌13일 밤, 이승만은 다급하게 전화 다이얼을 돌린다.
    그때 여류시인 모윤숙(毛允淑, 1910~1990)은 창밖의 겨울 달을 바라보며 시국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엊그제도 이승만 박사는 메논을 데려오라 해서 이화장 만찬에 참석, 남한단독선거의 정당성 이야기로 열변을 토하는 것이었다. 김구의 배신, 이승만의 자신감, 유엔본부에 가는 메논이 과연 한국을 도울 수 있을 것인가. 모윤숙은 안절부절 뒤척이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아니나 다를까, 또 이승만 박사의 절박한 목소리.
    “이봐요. 윤숙이. 밤이 늦었지만 메논씨를 또 데려와 줘요. 아주 중요한 일이오.”
    “아이 박사님도...지금 몇 신데 여자가 밤중에 외국 남자한테 무슨 청을 할 수 있나요...”
    “이거 봐요.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판에 밤이고 아침이고가 어딨나. 제발 전화 좀 걸어 봐요. 이게 마지막 청이오.” 이승만은 35살아래 막내딸 같은 모윤숙에게 매달린다.

    유엔한국위원단이 묵고 있는 호텔은 바로 모윤숙의 집앞 길건너에 있었다.
    이박사의 간절한 심정은 자신의 뜻이기도 하다. 메논을 설득하고 다짐받아야 할 사람이 누가 있으랴. 무슨 핑계로 밤중에 그를 끌어낸담.....다행히도 메논은 문학과 역사를 좋아하는 박사 문화인, 첫 만남부터 타고르 시로 마음이 통하고 양국 역사와 문화 등 풍성한 화제로 한 달 넘게 지냈다. 영국식민지 인도 역시 1년전 8월15일에 독립했잖은가. 그 독립영웅 간디가 2주전에 죽었을 때는 추모식도 메논과 함께 하였고, 며칠 전엔 인도의 명물 타지마할 무덤은 달밤에 봐야 낭만을 즐길수 있다 해서 모윤숙도 우리 궁궐과 임금님 무덤들도 달밤에 보면 신비롭다고 맞장구쳤던 기억이 났다. 

    “의장님, 달빛이 참 좋은데요...제가 좋아하는 금곡릉 드라이브 어떠신가요?”
    반갑지만 때 아닌 제의에 메논은 몇 번 거절하다가 애원하는 간청에 못 이겨 승용차를 모윤숙의 집 앞에 대고 말았다. 미안하다는 인사로 승차한 모윤숙은 차가 동대문 근방에 이르렀을 때 말을 꺼낸다.
    “날씨도 차가운데 어디 가서 한국의 건강식 인삼차 좀 드시고 가시지요”
    염치 불구하고 차를 이화장으로 이끌어 문 앞에 세우게 하였을 때 메논이 소리쳤다.
    “노티 걸(Naughty girl)”
    그때 기다리던 이승만이 바지 저고리로 달려나와 메논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목적지가 여기 아닌데요” 메논은 겸연쩍게 웃으며 끌려들어가 또 이승만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이날 밤 이승만의 메논 설득은 결정적인 역사를 만들어낸다. (모윤숙 지음 [회상의 창가에서] 1980)
  • ▲ 유엔 한국위원단 의장 메논.인도 대사인 그는 유엔에서 남한단독선거안을 관철시킨다.
    ▲ 유엔 한국위원단 의장 메논.인도 대사인 그는 유엔에서 남한단독선거안을 관철시킨다.
    ◆유엔에 임영신, 서울에 모윤숙---이승만, 필사적인 외교전

    유엔 본부엔 이승만이 지난해 파견한 독립운동가 임영신(任永信, 1899~1977)이 임병직(林炳稷, 1893~1976)과 맹활약을 펴고 있었다. 엘리너 루즈벨트 대통령 부인, 노벨상 수상작가 펄벅을 비롯, 유엔사무총장, 필리핀 로물로 등 주요 우방들의 외교관들과 광범한 로비를 펼쳐 본결의안 통과에 공을 세운 교육자 임영신, 이제 또 다시 새로운 장애물을 만나 촛불처럼 흔들리는 ‘대한민국 건국’의 마지막 장벽을 뚫기 위해 낮과 밤을 잊었다고 자서전에 기록해 놓았다.

    메논이 유엔으로 떠난 후 이승만은 전보를 10통도 더 보냈다. 타이프를 치고나서 ‘매리언 모(Marion Moh)’로 모윤숙의 세례명을 찍고 모윤숙에게 사인하라 말했다. 
    “매리언 이름이 아니면 읽어보겠소? 이건 그대가 보내는 한민족의 SOS인줄 아오”

    당시 뉴욕 맨해튼 아닌 롱아일랜드 레이크석세스에 위치한 유엔본부에서 메논은 꼬박꼬박 답장을 보냈다. 그는 이미 한국독립을 성공시키자고 결심한 터이다. 
    2월 19일 유엔에서 메논은 남북한의 현황을 길게 보고하면서 이렇게 강조한다.
    “이승만이란 이름은 한국에서 마술 같은 위력을 가졌다. 그는 조국통일 신념이 확고하고 뛰어난 애국자로서 오래전부터 한민족 전체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되어있다. 인도의 간디와  네루처럼.”
    2월26일 유엔은 마침내 ‘한반도 대표지역 남한 선거 결의안’을 통과시킨다. 찬성31. 반대2.기권11. 이승만은 또 한번 스탈린과의 싸움에서 일방적인 판정승을 얻어내고야 말았다.

    ★이승만의 독립운동은 스탈린과의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임시정부 수립직후 레닌의 공산화공작 및 스탈린 집권시 공산세력에 탄핵받은 지 29년만에, 그리고 해방후 귀국하여 ‘반공 선언’후 3년 만에 길고 긴 자유독립투쟁의 최후승리!! 1919년 국제연맹시절부터 미국의 힘을 이용한 글로벌 파워 활용전략, 즉 이승만의 ‘용미(用美)’ 외교독립운동이 마침내  대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이승만 1인 투쟁이 대한민국 건국의 길을 활짝 열었다. 건국후 6.25는 이승만과 스탈린의 마지막 결전이다.

    뒷날 메논은 회고록에 썼다. “이것은 나의 임무 수행중에 머리보다 가슴을 우선시킨 유일한 예외이다. 이승만과 매리언의 초인적 애국심에 누구라도 감복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유엔서 돌아온 메논은 3월 인도의 외무장관으로 발령 나서 귀국하였고, 몇 년후 모윤숙을 인도로 초청하여 메논부부가 극진히 대접하기도 하였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의 시인 모윤숙이 일제때부터 쓴 '렌의 애가'는 70년대까지 53판을 기록하며 90년대에도 속간되는 장기 베스트설러였다. 모윤숙은 1960년부터 국제펜(PEN)클럽 한국회장을 지냈다.
  • ▲ 유엔 한국위원단 의장 메논.인도 대사인 그는 유엔에서 남한단독선거안을 관철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