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치 반대·이란 민주화 외쳤던 망명 언론인 ‘루홀라 잠’처형…독일·프랑스 비판하자 대사 소환
  • ▲ 재판 받을 당시 루홀라 잠의 모습.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재판 받을 당시 루홀라 잠의 모습.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과 중국 독재정권의 친구 이란이 그 민낯을 드러냈다. 신정일치 독재정권을 비판한 망명 언론인을 유인·납치해 처형한 것이다. 이란은 숨진 언론인이 ‘지구상에 부패를 퍼뜨린 죄’를 지었다고 주장했다.

    이란, ‘지구상에 부패를 퍼뜨린 죄’ 지었다며 망명 언론인 처형

    “이란 국영방송 IRNA가 12일(이하 현지시간) 망명 언론인 ‘루홀라 잠(Ruhollah Zam)’의 사형집행을 보도했다”고 카타르 위성방송 <알 자지라> 방송이 전했다. 방송은 “지난 6월 이란 법원은 1심에서 잠이 ‘지구상에 부패를 퍼뜨린 죄(spreading corruption on Earth)’를 지었다며 사형 선고를 내렸고, 국경없는 기자회는 ‘불공정한 재판’이라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이란 대법원은 12월 8일 잠에게 사형을 확정했고, 나흘 만에 집행됐다고 방송은 전했다. 방송에 따르면, 이란 당국은 정부 전복 또는 간첩 혐의자에게 ‘지구상에 부패를 퍼뜨린 죄’를 적용한다. 잠에게는 가짜뉴스 유포와 반혁명, 폭동 선동 등의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에 따르면, 루홀라 잠은 이란의 개혁파 성직자 ‘모하마드 알리 잠’의 아들로 신정일치제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반발해 왔다. 그는 2015년 이란 당국의 언론 탄압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SNS ‘텔레그램’에 이란 신정일치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아마드 뉴스’ 채널을 만들어 활동했다.

    ‘아마드 뉴스’는 2017년 12월 이란 전역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의 실상을 여과 없이 전하면서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잠은 또한 시위대가 안전하게 집결할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등의 활약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아마드 뉴스’ 채널 구독자는 100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이란 정부가 이를 문제 삼자 텔레그램 측은 채널을 폐쇄했다.

    이후 망명 생활을 이어가던 잠은 지난해 10월 “중요한 제보를 할 게 있다”는 연락을 받고 이라크에 갔다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에 납치돼 테헤란으로 끌려갔다. 이란 정보기관의 공작에 당한 것이라고 프랑스 AFP통신은 설명했다.

    독일·프랑스·EU, 비난 성명…이란, 해외서 납치한 반정부 인사 2명 더 있어

    잠이 처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12일, 독일 외무부는 “망명한 언론인을 해외에서 납치해 끌고 가 처형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한다”고 이란을 맹비난했다. 프랑스 외무부 또한 “잠에 대한 처형은 이란의 언론 자유에 치명타를 가한 것”이라며 “이런 야만적인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이란을 비난했다. EU(유럽연합) 또한 이란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이란 정부는 13일 독일·프랑스 주재 대사들을 테헤란으로 소환했다. 이란 외무부는 국영방송을 통해 “EU가 2017년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를 보도하고 선동했던 잠에 대한 처벌을 비난했기 때문에 대사를 소환했다”고 밝혔다.

    통신에 따르면, 이란이 해외에서 납치해 끌고 간 반정부 인사는 잠 말고도 2명 더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반정부 단체 관계자가 올해 7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를 방문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에 납치당했다. 2018년 이란군을 공격,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게 했던 무장단체 ‘아와즈 석방 투쟁운동본부’ 관계자 또한 최근 터키에 갔다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에 납치돼 테헤란으로 끌려갔다.

    정치적 문제로 망명한 사람을 해외에서 납치해 본국으로 데려가 처벌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이란과 북한, 중국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