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되게, 담담하게 결백 주장, 무죄 추정 증거" 주장… 법조계 "금시초문" 황당 반응
  • ▲ 2017년 8월 23일 새벽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교도소 정문 앞에서 출소한 한명숙(사진) 전 국무총리. ⓒ정상윤 기자
    ▲ 2017년 8월 23일 새벽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교도소 정문 앞에서 출소한 한명숙(사진) 전 국무총리. ⓒ정상윤 기자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11주기 추도식에서 '결백'을 주장한 가운데, 여권에서 무죄의 증거로 '태도 증거'라는 생소한 개념을 들고 나왔다. 이 말은 판사 출신인 3선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서 주장했다. 

    상대인 조해진 미래통합당 의원이 "대법원에서 이미 유죄판결이 나온 것"이라고 지적하자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한 전 총리가 일관되게, 담담하게 결백을 주장한 것이 무죄를 추정할 수 있는 '태도 증거'라는 것이다. 

    박 의원은 "소위 법관을 한 사람은 다 안다"는 식의 논리를 폈다. 그러나 국어사전은 물론, 법률용어사전에서도 '태도 증거'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전·현직 판사와 변호사 등 법조계에 따르면,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정황증거'와 달리 '태도 증거'라는 개념은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무(無) 개념'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권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한 전 총리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궤변'에 가까운 억지 주장을 편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야 박범계·조해진, 방송 출연해 '한명숙 설전'

    박 의원과 조 의원은 25일 오전 여·야 대표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함께 출연해 한 전 총리 재조사 필요 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박 의원은 이른바 '한만호 비망록'을 근거로 한 전 총리의 무죄를 주장했다. 박 의원은 "당시 비망록이 재판 자료로 쓰여지기는 했으나 국민적 관심사가 돼서 갑론을박의 공론의 장에서 얘기가 되지 않았다"며 "국민의 감시 속에, 국민의 관찰 속에 재판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조 의원은 "대법원 판결까지 났는데 정치적으로 몰아서 다시 뒤집으려는 시도"라며 "이거는 사법체계를 흔들 뿐만 아니라 또 법적 정의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시도"라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당시 비망록의 일부만 공개됐다 하더라도) 기본 취지는 변화가 없다. 대법원에서도 소수의견이 다섯 분이 계셨는데, 이 소수 의견도 3억원을 받은 부분은 다 인정했다"며 "전체가 다 인정했고 나머지 6억원 부분에 대해 소수의견은 반대의견을 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상윤 기자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상윤 기자
    "일관되게 결백 주장" "침 안 튀기고"…이게 태도 증거?

    그러자 박 의원은 '태도 증거'라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박 의원은 "한명숙 전 총리님은 재판 때부터 일관되게 결백을 말씀하신다"며 "그러나 그것이 막 침을 튀어가면서 (말하는 게) 아니라 담담하게, 언제나 담담하게, 그래서 소위 법관을 한 사람들은 일종의 '태도 증거' 이렇게 본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어 '태도 증거'라는 말을 한 번 더 언급한 뒤 "재판을 받을 당시나 들어가실 때도 저는 그분이 무고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며 "이 사건을 전면적으로 다시 재조사해서 한명숙 전 총리가 진짜 억울한지 아닌지를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 전 총리 사건)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 더 나아가서 그 재판의 가운데는 딱 양승태 대법원장으로 대표되는 소위 사법농단이라는 것이 있었다"며 "적어도 검찰개혁이라는 측면, 사법개혁이라는 측면에서 이 과정은 한번 엄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법조계 "태도 증거, 금시초문… 재판에서 안 쓰여"

    법조계에서는 한 전 총리 무죄의 근거로 박 의원이 주장한 '태도 증거'라는 개념에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실제 재판에서 그런 용어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인 조현욱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은 25일 본지와 통화에서 "'태도 증거'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며 "실제 재판에서도 '태도 증거'라는 말이 쓰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조 위원은 인천지법 부장판사 등을 지낸 뒤 현재 더조은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2018년부터 지난 1월까지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을 지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현직 판사 역시 "그런 용어는 저도 못 들어 봤다. 민사에서 변론 전체의 취지라는 용어는 있다. 그런데 그건 당사자의 태도를 전체적으로 본다는 말"이라며 "형사재판을 해본 개인 소견으로는 '태도 증거'라는 용어가 생소하다고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권오현 법무법인 해송 변호사도 "'태도 증거'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답변했다. 

    "판결 문제 있으면 재심 신청하면 될 일"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현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은 "보통 판사들이 재판에서 '진술이 일관되고' 이런 표현을 쓰긴 하는데 '태도 증거' 같은 용어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특히 박 의원이 한 전 총리 사건을 검찰·사법개혁과 연관지은 것과 관련 "그게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했다. 

    권 변호사도 이와 관련 "그것과 사법개혁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한 전 총리 사건 판결이 문제가 있다면 재심을 신청해 무죄를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