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노조, 양승동 등 이사진 '근로기준법 위반' 고소… "근로자 과반 동의 없이 취업규칙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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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동 사장 등 KBS 이사진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무리하게 '직급체계 개편'을 강행하려 한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제기됐다. 현행법상 근로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을 바꿀 경우 반드시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KBS 이사회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이경호·이하 본부노조) 동의만 거쳐 근로자의 승급·승진·임금과 관련한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했다.
- ▲ 허성권 KBS노조부위원장이 27일 오후 여의도 KBS 본관 민주광장에서 열린 'KBS노조 전국조합원 총회'에서 노조집행부 투쟁 보고를 하고 있다. ⓒ이기륭 기자
"'임금 상승' '승진 기회' 박탈당했다"
29일 KBS노동조합(위원장 정상문·이하 KBS노조)에 따르면, KBS 이사진 11명(양승동 사장 포함)은 10월 16일 열린 KBS 이사회에서 취업규칙을 바꾸는 '직급체계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KBS노조는 27일 양 사장을 포함한 이사진 11명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했다. KBS노조 측은 "본부노조는 KBS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아니"라며 "이런 이유로, 이들의 동의를 바탕으로 개편안을 의결한 KBS 이사진은 근로기준법 제94조(규칙의 작성, 변경 절차) 제1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허성권 KBS노조 부위원장은 이날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내년 1월부터 적용될 '직급체계 개편 규정'은 최상위직인 관리직급과 1직급을 폐지하고, 책임직급에만 '책임직급수당'과 '책임자성과급(부장 이상의 보직자만 해당)'을 지급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부위원장은 "이는 기존 2직급 이하 직원은 관리직급과 1직급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라며 "한 번이라도 보직을 맡았던 상위 직급자에게는 그간 받아왔던 '능력급제에 따른 지급'이 중단되는 것을 의미해 보직자든 아니든 2직급 이상에 해당하는 모든 상위 직급자의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시키는 취업규칙"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이처럼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사측은 '본부노조가 일반직 기준으로 근로자 과반수를 달성했다'고 주장하며 이들의 동의만 얻은 채 직급체계 개편안을 의결했다"고 지적했다.
'PD저널'에 따르면 임병걸 KBS 전략기획실장은 지난 8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현재 KBS에 구성원의 과반이 가입된 노동조합이 없어 현재까지 상위직급 비율을 조정하지 못했다"며 "'과반노조'의 동의 없이 상위직급 비율을 줄였다가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으로 근로기준법 위반 사업장이 된다"는 설명을 덧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임 실장은 "7월 말을 기준으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과반노조에 38명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3분기에 과반노조 달성이 예상되는 만큼 이때 합의를 통해 개선안을 추진할 방침이고, 만약 '과반노조' 성립이 늦어지거나 노조의 반대 때문에 이행되지 않으면 전체 근로자의 과반 동의를 얻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본부노조와 '짬짜미' 의혹"… "KBS, 전체 근로자 수에서 부서장 뺐다"
이와 관련, 허 부위원장은 "2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본부노조는 사측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과반노조'가 아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본부노조가 과반수 노조가 되면 직급체계 개편을 하겠다'고 방통위에 보고했던 사측이 10월부터 직급체계 개편안을 들고 나온 것은 본부노조와 '사전 교감' 내지 '짬짜미'가 끝났다는 것을 실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KBS에 따르면, 사측이 본부노조를 '과반노조'로 판단한 시점은 지난 10월께로 알려졌다. 당시 퇴직자들이 생기면서 전체 근로자가 줄어 본부노조가 '과반노조'로서의 인원을 충족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KBS는 '직급체계 개편안'에 대한 동의를 구할 'KBS 전체 근로자 수'를 산정할 때 부서장 이상의 직원을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장급 이상 보직자들을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중간관리층'으로 보고 근로자에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근로기준법에 적용되는 근로자의 수를 보수적으로 계산한 KBS가 본부노조를 '과반노조'로 인정하고, "'근로자 과반 노동조합'의 동의를 거쳐 해당 개편안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게 KBS노조 측의 항변이다.
KBS노조에 따르면, KBS는 직급개편을 준비하면서 본부노조 조합원 수를 산정할 때 조합원 자격을 상실한 '유보조합원'까지 포함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원이 부장급으로 승진하면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로 간주돼 조합원 자격이 소멸되는데, 자신이 원할 경우 '유보조합원'으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유보조합원은 직급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조합원으로서 활동이나 권리 행사를 일절 할 수 없기 때문에 조합원에 포함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
허 부위원장은 "'근로자'란 조합원 자격 여부를 떠나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는 전체 근로자 집단을 의미한다"며 "더욱이 경영진이 들고 나온 '직급체계 개편안'은 '부서장 이상 직원을 포함한' 모든 일반직 직원이 적용 대상이기 때문에 부서장 이상 직원을 포함한 전체 근로자 과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 27일 오후 여의도 KBS 본관 민주광장에서 열린 'KBS노조 전국조합원 총회'에서 삭발을 하고 있는 허성권 KBS노조부위원장. ⓒ이기륭 기자
"부서장도 직급개편 대상"… "책임자 성과급제 꼼수, 2노조 출신 우대"
이어 "당장은 일부 근로자 집단만 불이익을 받는다 하더라도 나머지 다른 근로자 집단이 장차 '직급의 승급' 등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에 영향을 받게 될 소지가 있는 경우에는 전체 근로자 집단이 '동의 주체'가 된다는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7다85997, 2009두2238, 2009다49377, 2012다43522)도 있다"며 "따라서 KBS 내 모든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직급체계 개편안을 추진하면서 부서장 이상의 직원을 배제한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부연했다.
허 부위원장은 "경영진이 추진 중인 '직급체계 개편 규정'은 이러한 절차상의 문제 외에도, 개편 이후 보직자들이 손해를 볼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보완조치도 전무해 KBS노조를 비롯한 다수 근로자의 반발을 사고 있다"면서 "현 직급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해소하면서 이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개편이 이뤄진다면 누가 반대하겠느냐. 조합원들이 피해를 볼 게 뻔한 이런 개편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니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또한 허 부위원장은 "사측이 직급체계 개편을 추진하면서 부장급 이상 간부들을 대상으로 '책임자 성과급제'를 도입한 것도 비판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명목상으로는 성과가 높은 직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조직 효율성'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이나, 그 이면에는 '책임자 성과급제'라는 이름으로 보직자들을 좀 더 챙겨주겠다는 꼼수가 숨어 있다는 뜻이다.
허 부위원장은 "현재 각종 프로젝트를 이끌고 책임지는 부장·국장급 인사 대부분은 본부노조 출신"이라며 "부장은 97%, 국장은 100% 본부노조 출신으로, 입사 이래 1노조(KBS노동조합)에는 가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항상 회전문인사를 하고 자기 편을 알뜰살뜰 챙기는 그들의 특성상 그동안 해왔던 무리들이 보직을 돌려막기 할 게 뻔하다"며 "결국 이번 직급체제 개편의 숨은 의도는 근로자들에겐 장기휴가 폐지, 임금동결, 연차 촉진을 감수하라고 하면서 소수 보직간부들만 더 많은 돈을 챙겨주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비꼬았다.앞서 열린 KBS 이사회에서 KBS가 상정한 '직급체계 개편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의결에 반대했던 황우섭 KBS 이사는 "올해 10월 1일 기준으로 KBS 전체 근로자는 5349명인데, 이 중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근로자는 부장급 이상 보직자(273명)와 연봉직 1명을 제외하면 5075명"이라며 "사측의 주장대로 부장급 이상 보직자를 전체 근로자에서 제외한다 하더라도 현재 본부노조 가입자는 2452명이기 때문에 근로자 과반(2538명)에 86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황우섭 "본부노조 가입자, 과반 안 돼"… KBS "직급 개편, 근로기준법 위반 아냐"
황 이사는 "이렇듯 본부노조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자 과반노조'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해 앞선 이사회에서 '본부노조 수가 근로자 과반을 넘겼다는 입증자료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사측으로부터 납득할 만한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황 이사는 "물론 KBS 경영이 악화했고, 상대적으로 상위 직급 비율이 높다는 지적을 수차례 받아왔기 때문에 직급체계 개편의 필요성은 십분 공감한다"면서 "다만 법을 지키면서 고쳐 나가야지, 아무리 급하다고 법을 어기면서까지 개정을 서두르는 건 공영방송답지 않다"고 지적했다.한편 KBS는 '사측이 직급체계 개편을 추진하면서 부서장 이상 직원을 포함한 모든 일반직 직원 가운데 과반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며 절차상 문제를 지적한 KBS노조의 주장에 대해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적용하는 '근로자 과반'은 기존 KBS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 집단의 과반을 의미하므로(2008년 2월 29일 대법원 선고 2007다 85997판결) 부서장은 제외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부서장이 갖는 사용자적 측면은 이미 법원의 판례에서도 확인된 바 있고, 과거 2017년까지 과반노조였던 KBS노동조합도 사측과 노사합의 과정에서 이를 인정하고 일관되게 적용했던 기준이었다"며 "2015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제기했던 노사협의회의 의결(2014년 10월 17일)에 대한 무효소송(서울고등법원 2016년 7월 15일 선고 2015나2069271)에서도 법원은 부장급 직원들에게는 인사에 관한 한 전결권 외에도 노무후생, 방송의 운용과 제작 등에 관해 상당한 전결권이 부여돼 있어 사용자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