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대사 "본국에 보고하겠다" 굳은 얼굴로 자리 떠… 외교부 "초치는 아니다"
  • ▲ 지난 28일 외교부에 불려갔다 나오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28일 외교부에 불려갔다 나오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외교부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사실상 초치해 “지소미아 종료에 실망했다는 발언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 장관과 차관보, 국무부는 외교부의 요청 이후에도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에 실망했으며, 협정 연장을 바란다”는 취지의 견해를 내놓았다.

    ‘미국대사 초치’ 논란과 관련, 외교부는 “해리스 대사를 ‘초치’한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지소미아와 관련해  ‘항의’한 게 아니라 ‘설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외교가와 언론은 ‘사실상 초치’로 해석했다.

    외교부, 28일 해리스 불러 지소미아 관련 견해 ‘설명’

    외교부는 지난 28일 해리스 대사를 불러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종료에 관한 견해를 설명한 뒤, 이를 언론에 알렸다. 이날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은 해리스 대사에게 “(지소미아 종료는) 한미관계나 한미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한일관계 맥락에서 이뤄진 결정”이라며 “한미동맹을 차원 높게 강화하고 스스로 강력한 국방역량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차원에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해리스 대사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알겠다”며 “본국에 관련 사항을 보고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를 떠나는 해리스 대사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해리스 대사는 29일 예정됐던 공식 일정들을 취소했다. 이날 오전 9시30분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DMZ 평화 국제포럼’과 오전 11시 재향군인회 주관으로 전쟁기념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강연회 참석을 모두 취소했다. 포럼 주최 측인 대외경제연구원(KIEP)과 강연회 주최자인 재향군인회는“미국대사관에서 일정 취소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애스퍼 美 국방 첫 기자회견서 “한국 지소미아 종료, 실망”

    하지만 미국 정부는 지소미아 관련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28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나는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발표 당시 실망했고, 그 실망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나는 한일 양국에 ‘북한과 중국이라는 공동의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해야 더 강해지고 대응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 ▲ 지난 28일 미국 국방부에서 열린 기자회견. 마크 에스퍼 장관의 첫 공식 기자회견이었다. 오른쪽은 미국 합참의장인 조셉 던포드 해병대장.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28일 미국 국방부에서 열린 기자회견. 마크 에스퍼 장관의 첫 공식 기자회견이었다. 오른쪽은 미국 합참의장인 조셉 던포드 해병대장.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에스퍼 장관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조지프 던포드 미국 합참의장도 “(지소미아 종료가) 당장 군사적 측면에서 손해는 없지만, 나도 이번 결정에 실망했다”면서 “동아시아 지역 내 집단안보 측면에서 한일관계는 매우 중요하다”고 거들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에스퍼 장관의 발언은 한·미·일 세 나라가 이해와 가치를 공유하며, 이를 토대로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려면 한일 갈등이 빨리 해결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슈라이버 차관보 “韓, 지소미아 종료 알려주지 않았다”

    랜달 슈라이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담당 안보차관보도 지소미아 종료를 언급했다. 슈라이버 차관보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2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개최한 ‘한·미·일 삼각 국방협력의 중요성’ 세미나에 참석해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 협정을 연장해야 한다”면서 “한국과 일본이 서로 입장을 논의하는 의미 있는 대화, 즉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고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슈라이버 차관보는 또 “한국 정부는 미국에게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면서 “최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한국에 갔을 때 문재인 정부에 (지소미아 종료가) 일본과 관계뿐만 아니라 미국의 안보이익과 동맹국들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거듭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불화하면 승자는 중국과 러시아가 될 것”이라며, 지난 7월23일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 및 러시아·중국 군용기의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은 현재의 (한일 갈등) 관계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도전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보호하기 위한 약속을 했다”며 “이제는 두 나라가 행동을 취할 차례”라고 덧붙였다.

    美국무부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결정에 우려와 실망”

    미국 국무부도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발언했다. 외교부가 해리스 대사를 사실상 초치한 뒤인 28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미국은 문재인 정부가 (일본과의)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우려와 실망(strong concern and disappointment)을 표명한다”고 다시 밝혔다.
  • ▲ 모건 오태이거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의 트위터.
    ▲ 모건 오태이거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의 트위터.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실망했다"는 내용의 글을 공유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해리스 대사와 한국 외교부차관 사이의 사적인 외교 대화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미국은 한일 간에 다른 분야에서 마찰이 있다고 해도 상호 방위와 안보관계는 온전한 상태로 지속돼야 한다고 강력히 믿으며, 가능한 한 일본·한국과 양자 및 3자 간 안보협력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한미 간 긴밀한 소통… 지소미아 무관”

    이처럼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에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고할 것을 촉구함에도 정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일 지소미아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국방부는 “지소미아 종료와 한미 연합방위태세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미국 측의 우려와 관련해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는 지소미아 종료와는 무관하게 한미 간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안정적이고 완벽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 대변인은 “지소미아 종료와 관련해서는 정경두 장관이 에스퍼 장관과 직접 통화했고, 그때 충분히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저희는 한미 간에 긴밀한 공조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기 때문에 한미 양국 입장에 큰 차이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