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변화 없다"며 울먹여… 정부의 反기업적 사고, '학벌' 지향 공교육이 본질적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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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청와대가 시민단체 대표들을 초청해서 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어느 청년단체 대표가 울먹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청년은 “정권이 바뀌었는데 청년 정책은 달라진 게 없다. 부처의 준비나 의지는 약하고 대처도 부족하다”며 내내 울먹였다고 한다. 인생에서 제일 생기 있고 자신만만할 나이에 청년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면 그랬을까 생각하니, 이 뉴스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 청년이 말하는 ‘대책’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내가 읽은 보도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하건대 아마 청년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고, 청년들을 위한 보조금 등 종래 청년 대책으로 거론되던 것들을 더 잘 챙겨달라는 말인 듯하다. 그 청년은 자신을 포함해서 자기가 대표로 되어 있는 청년 단체 회원들이 처한 일자리 절벽의 상황을 설명하다가 절망감이 눈물로 표출된 것으로 짐작된다. 한창 일할 젊은이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할 때 느끼는 좌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상태가 지속하면 그는 하나의 개인이 아니라 그냥 부유하는 대중(mass)이 된다. 

    부유하는 '대중'된 우리 청년들
    이번 사건은 바로 한국의 청년들에게 그런 조짐이 보이는 것이라 아주 심각하다. 이 청년의 예에서 보듯이 사람에게 일자리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의 큰 부분이므로, 일자리가 없는 상태가 지속하면 그는 개인으로서 스스로 의미 없는 삶으로 인식되고 단지 부유하는 무리의 한 부분처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과거 서구 사회의 예를 보면 이런 상태는 대중이 전체주의 독재자의 꼬임에 빠지는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나름대로 일자리를 갖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안보와 더불어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오늘날 청년실업의 문제를 이토록 심각하게 만든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사회 문제의 원인과 대책에서 우파와 좌파의 시각이 극명하게 갈린다. 우파적 시각으로 볼 때, 이 문제의 출발점은 1980년대 말의 소위 ‘민주화 운동’에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신생산업국이었던 한국의 나아갈 길은 분명 자유 민주주의 체제, 즉 시장의 자유가 살아 숨 쉬는 민주주의인데, 유감스럽게도 실제로 진행된 민주주의는 ‘자유’를 옥죄는 민주주의였다. 흔히 언론의 자유 등 시민적 자유도 그 출발은 재산권이므로 자유의 실질적인 근본은 소유 재산권의 존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이번 보도에 나온 각종 시민단체가 양산되어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관변 단체가 양산된 것을 포함하여, 사회적 분배의 목소리는 지속해서 커졌지만 사유재산권의 대표 주자인 대기업을 옥죄는 분위기가 지배했다. 대기업과는 반대로 중견, 중소기업에 대해서 각종 지원책이 많이 생겼지만, 그 결과로서 중소,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보다는 오히려 경쟁력을 잃고 그들을 정부 의존적 기업으로 만드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자유' 도외시한 30년 민주화의 폐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대기업 투자의 실종과 해외로의 공장 이전, 그 당연한 귀결인 국내 일자리의 감소는 지난 30년간의 ‘자유와 병행하지 않은 민주화’의 결과다. 대기업에 대한 수많은 규제와 오늘날 최저임금 정책 등 정부 주도의 인위적 가격 정책은 말로는 ‘경제 민주화’라는 용어로 ‘민주화’를 내세우지만, 내용은 ‘경제적 자유와 재산권의 억압’이다. 간단히 말해 양질의 청년 일자리는 대기업의 자유스러운 활약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질 때, 그 협력 파트너로서 중견, 중소기업도 강한 기업으로 자라나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이룰 수 있게 되며,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를 갖게 된다. 

    너무나 단순한 이치이건만, 같은 사안에 대해서 좌파의 관점은 위의 방향과 다르다. 그들은 대기업이 이익을 내면, 그 이익은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부를 창출한 것이라는 칭찬보다는 하청업체인 중소기업, 그리고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한 것으로 본다. 대기업 오너는 사실 보통 사람이 갖기 힘든 기업가적 능력을 타고나서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자임에도, 그런 긍정적인 면은 눈에 안 보이고 그들에게는 오직 ‘갑질’이라는 감성적 측면만이 크게 보인다. 

    만약 대기업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협력업체의 기술을 가로챈다는 등 시장 규칙을 어기는 위법 행위가 있다면 이는 정해진 법률의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특유의 ‘갑질’ 열풍은 좌파적인 시각으로 대기업을 부정하고, 반기업 정서를 자극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누구나 허물이 있을 텐데, 만약 특정 부류의 개인들에게만 현미경을 들이대듯이 그들의 행동을 감시한다면 이는 공정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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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향 평준화'로 귀결된 공교육... 남은 건 '학벌'뿐
    둘째로 청년 문제를 이리도 심각하게 한 데는 한국 공교육의 문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민주화 운동과 거의 유사한 시기부터 시작된 한국 공교육 정책은 방향이 잘못되었다. 교육법을 폐지하고 교육기본법을 제정한 1997년 말부터 한국 공교육은 내용상으로는 시장경제의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식의 좌파적 가치관의 주입으로 청년의 자유 시민적 독립심을 약화했고, 운영상으로는 하향 평준화로 실력 없이 학벌만 높은 청년을 양산했다. 자조, 자립하며 근검절약해서 스스로 자신의 앞날을 개척해야 한다는 근대 시민의 정신을 키우기보다는 대학만 나오면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의존형 인간이 많아진 것이다. 

    과거 공무원 급여가 사기업의 반도 안 되던 시절, 작은 정부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민관이 머리를 맞대고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때가 있었다. 오늘날 직장의 안정성과 연금까지 고려한 공무원의 보상은 오히려 사기업체보다 나아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수십만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겠다고 고시촌을 전전하고 있다. 예전의 선배 세대처럼 공무원의 급여는 낮아도 뭔가 국가 발전을 위한 사명감으로 도전하던 공무원 일자리가 이제 오직 안정적인 철밥통 일자리를 확보하려는 다툼으로 보여 안쓰럽다. 

    공교육의 평준화 정책은 학생에게 자신의 적성이 무엇이고 어떤 직업 분야를 선택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시기를 숨기고, 최대한 결정을 늦추게 하는 문제가 있다.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졌더라면 학부모와 학생은 좀 더 조기에 자신의 적성을 찾아, 일반 대학보다는 다양한 직업 분야에 맞는 스킬을 갖추었을 것이고, 지금처럼 정치·경제적 상황이 악화했다 해도 대책 없이 대량의 대졸 실업자로 몰리는 일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힘든 건 청년들만은 아니다. 조기 퇴직을 한 수많은 중년이 급격하게 중산층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 문제의 근본 대책은 사실 자명하다. 대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시장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수많은 인위적인 규제와 보조금은 시장 기능을 숨 막히게 하며, 창업자의 후손이 무거운 상속으로 인하여 도저히 기업 경영의 대를 잊지 못하게 하는 제도는 우리 사회의 경제적 활력을 해치는 독소다. 

    흔히 대기업 오너가 아닌 아무 전문경영인을 세워도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한국에서 국민기업이니 하며 주인 없는 기업을 만들어 놓고 경쟁력 있게 경영되는 대기업이 하나라도 있는지 예를 들어 보라. 이처럼 소유권은 온갖 관료주의보다 실질적이다. 공교육 정책은 산업 현장에서와 규제와 보조금 정책과 유사하게 한국의 교육 시장에서의 자유를 철저히 배제한다.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학교의 학생 선택권이 부정되고 더 나아가 최근 사립유치원 사태에서 보듯이 사학 설립자의 재산권마저 부정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자유와 경쟁이 없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온갖 관료주의만이 자라나고 혁신은 사라지게 되어있다. 객관적인 평가가 실종된 한국의 공교육은 학생들을 열성으로 키우려는 교사의 동기도 메마르게 하고, 학업 능력이 떨어지는 대졸 청년만 대량으로 양산하는 제도가 되었다.

    청년들에 대한 보조금... 그들을 '타락'시킬뿐
    지금 청년들에게 이런 근본 원인과 문제만을 말하는 것은 기성세대로서 무척 미안하고 무책임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좀 더 단기적인 대책을 생각해보려 해도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단기 대책은 근본적이지 않고 임기응변일 뿐이다. 세금으로 계속 보조금을 주어 청년들을 타락시키는 것은 분명 대책이라 할 수 없다. 청년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정부에 기대지 말기 바란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영어 등 외국어를 연마하고 자신만의 스킬을 학습하여 해외에 일 자리가 있는지 개척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특유의 ‘사(士)’자 붙은 직업인 공무원이니 고시에 자신의 청춘을 낭비하기보다는 다소 급여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청년들이 지원해주기를 기다리는 중소, 중견기업에도 더 많이 지원해서 한국 산업에 이바지하며 동시에 자기개발을 하는 모습이 진정 자유로운 시민의 모습이다. 

    청년 대책으로서 정부가 할 일은 자명하다. 온갖 규제와 보조금을 철폐하여 기업 하는 자유를 되돌려주는 것이다. 국가라는 전체 사회를 볼 때 오직 기업만이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이며, 반대로 사회적 자원을 공무원 조직 늘리는 데 쓰는 것은 사기업 부문의 세금 부담을 가중하여 거시적으로는 기업하는 자유를 해치는 것이다. 또한 현재 청년 실업의 또 다른 원인인 대기업, 중소기업 간, 그리고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는 주로 대기업 노조의 경직성에 의한 것이므로, 정부가 진정 청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정부는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런 처방은 사실 너무나 자명한 것이어서 고도의 경제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양심과 책임감 같은 리더로서의 덕목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데도 지속해서 거꾸로 가는 정책으로 시민들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해 떠돌게 하고 무상 복지에 기대게 한다면, 그런 정부는 정의롭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