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항소심]'삼성~에이킨검프 오간 돈=뇌물' 검찰 주장 꼬여… "MB 욕설 주장도 거짓"
  • ▲ 이학수(가운데) 전 삼성 부회장이 2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을 마친 뒤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이학수(가운데) 전 삼성 부회장이 2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을 마친 뒤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해 "삼성의 다스 미국 소송비용 지원에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또 "다스 소송비를 대납했다"는 검찰에서의 진술을 번복하는 취지의 진술도 해 재판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 전 부회장은 27일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 항소심 공판에서 '이건희 회장의 사면이나 금산분리 등을 생각하고 다스에 자금을 지원했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어떤 특정한 사안에 도움을 받고자 했다기보다는 도와주면 회사에 유익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서 지원했다"고 증언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직접뇌물(단순 수뢰죄)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직접 또는 사자(使者)나 대리인을 통해 금품을 받아야 한다. 제3자에게 금품이 지급되는 경우에는 부정한 청탁이 존재했다는 것이 입증돼야만 제3자뇌물죄가 적용된다.

    '자금 지원=뇌물' 檢 주장 꼬여

    이 전 부회장의 발언은 다스에 자금을 지원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07년 11월부터 기존에 거래하던 미국의 대형 로펌 에이킨검프(Akin Gump)와 ‘프로젝트M’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계약을 하고 매월 12만5000달러씩 자문료를 지급했다.

    검찰은 이 돈이 삼성의 자금 지원이라며 이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1심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일부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이 에이킨검프와 거래한 돈이 어떻게 이 전 대통령의 직접뇌물이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는 이 전 부회장의 이날 증언으로 인해 검찰은 에이킨검프가 이 전 대통령의 사자나 대리인임을 입증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검찰은 직접뇌물로 기소하면서도 이건희 회장의 사면이나 금산분리 등을 삼성이 요구했다며 대가성을 주장해왔다.

    美 10대 로펌=MB 심부름꾼?

    검찰이 에이킨검프가 이 전 대통령의 사자 역할을 했다는 것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날 또 다른 증인으로 출석한 김모 전 삼성전자 부사장의 증언처럼 에이킨검프는 미국의 10대 로펌에 들 정도의 대형 로펌이다. 이런 대형 로펌이 이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심부름꾼 역할을 했다는 주장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의견이다.

    검찰은 에이킨검프에 대한 조사 없이 이 전 대통령이 에이킨검프 계좌를 차명계좌처럼 사용했다는 주장을 폈으나, 이러한 사실이 알려질 경우 자칫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이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까지 있다.
  • ▲ 이명박 전 대통령.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를 의식한 듯 재판부는 변호인과 검찰의 신문이 끝난 뒤 이 전 부회장에게 에이킨검프에 지급된 자문료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질문을 이어갔다. 이 전 부회장이나 김 전 부사장 모두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이학수, '대납' 단어 안 썼다…檢에선 "대납했다" 진술

    이 전 부회장은 또 이날 증인신문에서 삼성의 자금 지원이 ‘다스 소송비 대납’이라는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당초 이 전 부회장은 에이킨검프가 다스의 미국 소송을 맡은 2009년 3월부터 삼성이 매월 다스 소송비 12만5000달러를 대납했다고 진술했다.

    이재오 전 의원이 한 방송 인터뷰에서 삼성이 에이킨검프와 프로젝트M 계약을 하고 해당 자금을 송금한 것은 2007년 11월부터라고 밝힌 후, 검찰은 시기를 2007년 11월로 앞당기고 명목도 다스 소송비가 아니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자금 지원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임직원들의 진술도 이재오 전 의원 인터뷰 후 모두 번복됐다.

    이날 이 전 부회장이 ‘다스 소송비 대납’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부회장은 또 변호인이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은 검찰 조사에서 ‘대선 과정에서 이학수 전 부회장이 먼저 이명박 대통령 후보 측에 캐시(현금)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진술했는데, 김백준의 진술이 사실이냐”고 묻자 “사실이 아니다. 김석한 당시 에이킨검프 변호사는 대통령 캠프에서 먼저 요청했다고 말했고, 캐시라는 말도 들어본 일이 없다”고 밝혔다.

    “욕설 논란, 검찰 주장...사실 아냐”

    한편 이날 공판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이 전 부회장에게 욕설을 했다는 논란이 빚어졌다. 검찰은 이 전 부회장의 증인신문 도중 이 전 대통령이 미친X이라고 욕설을 했다며 재판부에 항의했다. 검찰 측은 “증인이 이야기할 때 ‘미친X’이라고 피고인이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재판부와 방청객이 모두 들은 사람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검찰 측이 들었을 정도였다면, 검사들 외에 재판부도 들었어야 상식에 부합한다"며 "그러나 재판부는 욕설을 했다고 단정하지 않고 단순 주의 정도만 줬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과 재판부의 '물리적 거리'가 검찰보다 더 가까운 상황에서 검찰이 들었는데 재판부가 듣지 못한 게 비상식적이라는 주장이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욕설을 했다는 것은 검찰 측의 주장"이라며 "이를 그대로 받아쓴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