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불출석 핵심증인 신문기일 재지정"… 檢 "구속기간 내 심리 마무리" 입장 갈려
  •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에서 검찰과 재판부가 또 다시 엇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구속만기일인 4월 8일 이전까지 재판을 마무리하자는 입장인 반면, 재판부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제대로 심리를 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심리를 맡은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지난달 27일 열린 항소심 3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이달 증인신문이 예정된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주성 전 국정원 기조실장 이외에 남아있는 출석 증인에 대한 신문기일을 다음 공판일인 오는 6일에 다시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항소심 공판에서 증인으로 신청한 인물은 총 15명이다. 권영미 전 홍은프레닝 대표와 강경호 전 다스 사장, 조영주 전 다스 경리직원 등 3명을 제외한 증인은 모두 소환장이 송달되지 않아 출석하지 않았거나 출석을 거부해 증인신문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 측은 핵심증인이면서 출석을 거부하고 있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 김성우 전 다스 사장, 권승호 전 다스 전무에 대한 증인신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병모 청계재단 국장과 김광호 삼성 직원의 증인신문도 남아있는 상태다.

    검찰 “구속기간 내 심리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 

    이 같은 상황에서 증인신문기일을 다시 잡겠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발언은 이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과 상관없이 재판 심리를 제대로 보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의 구속만기일은 4월 8일로 다음 공판일 기준으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의 재판은 항소심 재판부가 지난 2월 법원 정기인사로 바뀐 데다 검찰이 제출한 사건기록도 10만페이지가 넘는 상황이다. 새롭게 구성된 재판부가 구속만기일까지 항소심 선고를 내리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이런 상황에 증인신문기일까지 재지정하게 되면 항소심 재판에는 더욱 시간이 소요되게 된다.

    재판부의 입장과 달리 검찰은 “서둘러야 한다”며 재판부를 재촉하고 있다. 주 3~4회 공판이라도 열어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것이 검찰 측의 주장이다. 이미 1심과 지난 공판에서 양측의 쟁점이 충분히 정리돼 있기 때문에 재판을 지연시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공판준비기일에서 “1심 이후 항소심 12회 공판 통해 양측의 의견과 쟁점이 명확히 정리돼 있는 상태이며 실질적으로 재판부 법적 판단만이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또 “재판부가 예정된 기일만으로 충분한 심리 어렵다고 하면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오전과 오후에 공판기일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부족하다면 특별기일 지정해 주3회 내지 4회 공판 횟수를 통해 심리 진행해주실 것 희망한다”고도 했다.

    항소심 재판 내내 '무리수'… 엇나가는 검찰

    검찰이 항소심 재판에서 재판부와 엇나가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법원 인사 이전에도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 부실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검찰의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 원칙 위배에 따른 파기환성 가능성을 시사한 것과 삼성 뇌물수수 건과 관련해 검찰 측에 수뢰의 주체가 누구인지 밝히라고 요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재판부는 지난 1월 11일 1심에서 공소기각된 이 전 대통령의 혐의(대통령기록물법 위반)에 대해 검찰 측에 “절차를 다시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이 전 대통령의 혐의를 분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해당 혐의만 따로 항소심에서 유무죄를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검찰에 “사건 전체를 환송해야 하는 등 재판이 이상해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같은달 23일 열린 공판에서도 재판부는 “삼성에서 돈이 들어간 곳은 이 전 대통령의 계좌가 아니라 에이킨검프 계좌”라며 “검찰이 주장하는 대로 김모(에이킨검프 변호사)씨가 이 전 대통령의 사자 혹은 대리인이라면 이 같은(대리인이라는) 사실관계를 밝혀내주길 바란다”고 언급하며 검찰의 공소장에 문제를 제기했다.

    “전직 대통령 풀어주기 싫을 것”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조바심을 내고 있는 이유에 대해 검찰의 자존심 문제가 걸려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통령이 풀려날 경우 검찰이 재판 전략을 잘못 수립했다거나 재판부를 설득하지 못했다는 비난 여론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직 대통령인만큼 한번 구속상태에서 풀려날 경우 다시 구속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찰이 항소심 재판을 서두르는 이유는 4월 8일 구속만기일 전에 유죄판결을 내서 이 전 대통령을 풀어주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이는 피고인이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한번 나오면 다시 구속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재판부는 판결문을 쓸 때 상급심에서 뒤집힐 수 없도록 절차와 논리를 충실히 하려고 애를 쓴다”며 “재판부가 변호인단이 제시한 증인신문 등 형사소송법에 적시된 절차를 들어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