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으로 MBC노조 설립, 한때 160명까지 성장… "보복인사로 사표 냈지만 MBC 비판 멈추지 않을 것"
  • "누구보다도 MBC를 사랑한다고 자부합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MBC를 동경해왔고, 2004년 그렇게 원하던 MBC에 입사해 15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했습니다. 전 MBC를 떠났지만 여전히 MBC가 잘됐으면 하는 바람 뿐입니다."

    지난 1일 MBC에 사직서를 낸 김세의(사진) 기자는 "MBC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욱 강하게 비판해 왔던 것"이라며 "이제 'MBC 직원'이라는 신분에서 자유로워진 만큼 MBC를 상대로 좀 더 '입바른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04년 부친(김영수 전  MBC 사장)의 뒤를 이어 MBC 기자가 된 그에게 '문화방송 MBC'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충정(忠情) 어린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다. 그야말로 MBC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기자 생활을 해오던 그가 '비판의 눈길'을 내부로 돌리게 된 건, 2012년 발생한 장기 파업 사태 때문이었다.

    "170일간 파업이 이어졌어요. 역대 최장기간 전개된 파업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천명이 넘는 직원들이 월급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한 채로 170일을 버텼습니다. 정말 엄청난 희생이 따르는 파업이었죠.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많은 직원 가운에 파업에 반대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언론노조) 소속 조합원이었던 그는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파업을 '완주'했다. 그런데 매일 같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공영방송 정상화'를 부르짖던 그의 눈에, '편가르기'와 '남 비난하기'에 골똘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파업 기간이 하루 이틀 길어지면서 '내가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지?'라는 회의가 들더라고요. 입으로는 뭔가 대단한 '정의'를 외치고 있었지만, 제 눈에는 당시 경영진이나 그들을 비판하는 선배들이나 다를 게 없어 보였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때부터 싫으면 싫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조직을 만들어보자는 꿈을 꾸게 됐어요."

    조합원 3명으로 시작…한때 160명까지 성장


    출발은 미약했다. 2013년 'MBC 복수노조 설립신고서'에 적힌 신생 조합원은 김 기자 본인을 포함해 달랑 3명이었다. 하지만 김 기자는 자신 있었다. 장기간 파업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파업에 참여했던 노조원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 기자는 '정치적 현안'이 아닌, 구성원들의 '권익'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노조원들의 이익과 복지를 극대화 하는 '노조' 본연의 정신으로만 돌아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입사한지 10년이 다 돼 가는 시점에 6~7차례 파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굳이 파업이 아니더라도 대화와 협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인데 기존 노조는 '강경 노선'만을 고집해 왔습니다. 내부적으로 불만도 있었고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셨지만, 입사와 동시에 가입된 언론노조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다고 봅니다. 그런 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었어요. 명분과 취지가 아무리 좋다하더라도 극한의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노조운동은 지양하자는 게 당시 저희가 내세웠던 모토였습니다."

    한때 160명까지 늘어났던 조합원 숫자는 최승호 사장 부임 이후 절반 가량이 빠져 나가 현재 70명 가량을 유지하고 있다. 설립 초기와 지금 수준을 비교하면 규모 면에서 20배 가까이 성장한 셈이다. 질적인 면에서도 MBC노동조합은 장기간 고정돼 있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합의안을 도출해내는 등 적지않은 성과를 거뒀다. 화면 밖에 있는 99% 구성원들의 목소리까지 대변하겠다는 김 기자의 초기 구상은 수년 만에 현실화 됐다.

    "'일방'이 아닌 구성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MBC 구성원 모두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상급 노동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게 발목을 잡았던 것 같습니다. MBC의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언론노조와 번번히 부딪혔어요. 나중엔 저를 겨냥해 뜬금없이 '인터뷰이(interviewee)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물고 늘어지더라고요."
  • 언론노조의 '정적(政敵)'으로 부상

    MBC 경력사원들에게 노조 가입을 강요하는 언론노조의 행태를 폭로하고, 언론노조가 획책하는 총파업에 시시때때로 딴지를 거는 김 기자가 '그들' 입장에선 좋게 보일리 없었다. 언론노조는 MBC 보도국 조사 결과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인터뷰이 조작 의혹'을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는가 하면, '총파업'을 코앞에 둔 지난해 9월부턴 김 기자가 자신의 지인인 윤서인 웹툰 작가를 취재 대상으로 삼았다며 보도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언론노조와 일부 미디어 비평지들은 제가 '또 리콜 신기록…하자 많은 이유는?'이라는 리포트에 윤서인씨를 등장시킨 것을 두고 '전파의 사적 농단'이라는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윤서인씨는 벤츠 리콜 차량 소유주로서 엄연한 피해자였습니다. 제가 윤씨를 인터뷰한다고 무슨 경제적 이득이 생기겠습니까? 이런 문제로 저와 윤씨를 싸잡아 비판하는 모습이 너무 한심해 보이더라고요."

    김 기자와 MBC노동조합을 향한 언론노조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상대 진영을 비판하는 김 기자의 목소리도 커졌다. 공영방송의 대선 보도 공정성을 강화하겠다며 발족한 'MBC대선보도감시단'이 도리어 특정 후보를 비호하고 있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동시에, 자신을 허위 사실로 음해한 전 MBC기자협회장을 형사 고소하는 등 적극적인 '맞불' 전략을 펴나갔다.

    "언론노조와 성향이 다른 MBC노동조합을 설립, 노조위원장을 3년 이상 맡아오면서 회사 내부와 기존 노조 측으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아왔는데요. 지난해 9월 또다시 총파업이 시작되면서 공세 수위가 정점을 치닫더라고요. 안팎에서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졌지만 그와 비례해 저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졌습니다."

    최승호, 보도국 80여명 물갈이‥대규모 인사 단행

    70여일간의 총파업이 끝나자, 최승호 피디가 개선장군처럼 나타났다. 5년 전 장기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총파업을 계기로 다시 돌아온 그는 언론노조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사장 자리에 올랐다. 2017년 12월 8일, 최승호 신임 사장이 부임한지 이틀째 되는 날 보도본부에 MBC 역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도 평상시처럼 외부에서 뉴스를 제작·준비하고 있었는데요. 오후 4시 반경, 회사로 돌아오는 도중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언론노조 사람들이 우르르 보도본부로 몰려와 자신들이 우리 자리에 앉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등 난리가 났다는 겁니다."

    김 기자는 "8시 뉴스를 정시에 방영하기 위해선 4시 반이면 어느 정도 제작을 다 마친 상태여야 하는데, 언론노조에서 들이닥치는 바람에 당일 방송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는 긴급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알고보니 언론노조에서 이날 뉴스데스크 큐시트를 다 짜놨더라고요. 자기들끼리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고, 누가 어느 부서에서 일할지까지 다 정해놓은 상태에서 쳐들어온 거죠. 사전에 저희들 모르게 다 각본을 짰던 겁니다."

    하루 아침에 마이크를 빼앗긴 80여명의 보도국 기자들은 모두 한직으로 쫓겨났다. 김 기자도 예외일 순 없었다. 1월달엔 아예 배현진 앵커 등과 함께 조명기구 창고로 내몰리는 신세가 됐다. 수개월간 업무배제 상태로 방치돼오던 그에게 경영진은 대기발령을 내렸다. 사실상 김 기자를 내치기 위한 공식 절차를 밟기 시작한 것.
  • "정상화위 조사실로 출근하라" 꼼수

    "4월 18일 저에게 대기발령이 떨어졌는데요. 대기 장소가 하필 정상화위원회 조사실이었습니다. 저보고 그곳으로 매일 출근하라는 발령이 난 겁니다. 제가 정상화위 조사를 거부하기 위해 조사실에 가지 않으면 그 순간 무단 결근을 하게 되는 셈이죠. 결국 사측에선 저를 무단 결근으로 해고시키기 위해 이런 꼼수를 부렸다고 생각합니다."

    김 기자는 "이후 '가족돌봄휴직'을 내는 방법으로 정상화위원회 조사실로 출근하라는 사측의 부당한 요구는 거부할 수 있었지만 그 순간부터 급여가 O원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며 "MBC 직원이라는 제약만 있을 뿐 회사원으로서의 생활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저는 마지막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미운정 고운정 들었던 MBC를 떠나려니 마음이 너무나 아팠지만 저로선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사실 MBC와 제대로 싸워보자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 측에서 저를 빨리 해고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해고 대신 저를 MBC 안에서 '고사'시키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제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아내와 가족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이미 제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제가 사표를 냈을 때에도 다들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김 기자는 "경영진의 보복성 인사 조치로 당사자는 물론,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식솔들까지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자신은)가족들의 격려와 이해로 꾸역꾸역 버텨내고 있지만, 많은 비언론노조원과 가족 분들이 일련의 인사 징계로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조기소환으로 특파원 가족 삶 파괴돼"

    "가장 큰 문제는 특파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파원은 단순히 개인이 해외에 나갔다 오는 게 아니에요. 아예 호적을 파서 수년간 외국에서 살다오는 겁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전 특파원을 국내로 불러 들이면서 아이들과 배우자들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어 놨어요."

    김 기자는 "특파원 조기소환 문제는 저희가 소송을 걸면 최승호 사장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사측에선 과다한 경비 문제로 해외 특파원 사무소를 폐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여전히 해외 취재에 나간 기자들이 예전과 동일한 사무실을 사용하는 등 앞뒤가 안맞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특파원 조기소환' 문제 뿐 아니라 '직원 이메일 사찰' 건이나 '부당한 인사 조치'에 대해서도 MBC 경영진에 법적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며 "이미 상당 부분 소송이 시작됐고, 앞으로도 시간 외 수당 청구 등 MBC를 겨냥한 '소송전'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표를 내던지고 '자유의 몸'이 된 김 기자는 당분한 밀린 독서 등을 하며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표면적으론 휴식이지만 김 기자는 지금의 '쉼'을, 예봉을 더욱 날카롭게 깎는 연단의 시간으로 삼을 계획이다.

    "이제는 MBC라는 울타리가 없어졌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사측에 대응할 생각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집회 결사의 자유를 충분히 활용해서 말이죠. 한 발 떨어져 살펴보니 제가 속해 있던 조직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지금은 전열을 가다듬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는 상태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괜한 약자들에게 치졸한 보복 인사나 하는 그런 투쟁이 아니라, 진짜 '아름다운 투쟁'이 뭔지를 그들에게 보여줄 계획입니다."



  • 다음은 김세의 기자와의 일문일답 전문.

    - 지난번 최대현 아나운서가 해고를 당한 직후 머지않아 나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는 글을 올리셨었는데요. 먼저 사표를 던지셨습니다.

    ▲지난해 12월 7일부터 기자로서의 일을 거의 못하고 있었어요. 올해 1월 25일에는 배현진 앵커 덕분으로 유명해진 '조명기구 창고'가 제 근무지가 됐습니다. 어떤 분들은 회사에서 일을 안시키면 좋은 게 아니냐는 말들을 하시지만, 제가 이렇게 살려고 MBC에 들어온 건 아니거든요. 그 이후 대기발령을 받았고, 이대로 계속 MBC에 머물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사표를 냈습니다.

    - MBC 경영진과의 갈등을 떠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사직서를 쓰기 전까지 굉장히 고심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사실 좀 그랬습니다. 제가 무슨 사업을 준비했던 것도 아니고, 다른 회사 취직을 준비 중인 상태도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최승호 사장 체제에서는 제가 더이상 정상적인 업무는 못할 것이라고, 저도 알고 아내도 알고 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작년 말부터 해고도 안하고, 특별히 일도 안시키면서 저를 고사시키는 상황이 계속됐어요. MBC는 제가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직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나온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아내와 가족 모두가 잘 이해해줘서 결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 김 기자님이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분들이 놀라셨을 것 같은데요. 주변 반응은 어떻던가요?

    ▲예전 동료들로부터 격려 전화를 많이 받았죠. 그리고 KBS, SBS 동료 기자들도 전화를 많이 주더라고요. 사실 KBS도 MBC와 상황이 참 비슷해졌는데요. 한 KBS 기자는 "개인적으로 응원을 한다"면서 "자기네들은 저같은 투사가 없어서 안타깝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SBS는 KBS와는 달리 대항 노조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 기자는 대항할 수 있는 구심점이 없어서 힘들다는 속내를 하기도 했습니다. 부디 KBS와 SBS에도 용감한 말을 할 수 있는 기자들이 많이 나오길 희망합니다.

    - 15년간 MBC 사원으로 지내오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유의 몸이 되셨습니다. 사표를 던지신 날(8월 1일) 어떤 심정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셨을 것 같은데요.

    ▲그날 밤, 제 페이스북에 아버지 어머니의 결혼식 사진을 올렸어요. 예전 사진들을 살펴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요. 사실 저희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거든요. 아버지가 반평생을 거의 실업자로 지내셨어요. 물론 저희 아버진 참 좋으신 분인데요. 험난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곁에 계신 어머니께서도 그 짐을 고스란히 나눠 가지셨죠. 그런데 이제 그 아들이 똑같은 길을 가고 있잖아요. 아버지도 MBC에 갔다가 그렇게 되시고, 또 아들까지 MBC에 갔다가 이렇게 됐고. (울먹)

    아내에게도 정말 미안하죠. 어머니가 지셨던 평생의 짐을 제가 또 아내에게 주는 게 아닌가 하고요. (울먹)

    아무튼 그날엔 눈물이 좀 많이 났어요. 제가 회사를 나오는 문제를 놓고 그동안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아내도 그렇고 가족들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지만. 사실 얼마나 마음이 안좋았겠습니까? 저도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치 않아요.

    - 김 기자님께서 사표를 내신 게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오히려 MBC를 상대로 좀 더 '입바른 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동안 MBC 직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제대로 말을 못한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탄핵정국 때에도 태극기 집회에 나가고 싶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자기검열일 수 있는데, 차마 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사실 촛불집회 때 많은 언론노조 소속 기자들이 집회에 나가 목소리를 높였고, 어떤 기자들은 김장겸 사장 물러나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아무도 지적 안하더라고요.

    최승호 사장은 '공모자들'이라는 영화에서, 제가 (상암 사옥 앞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장면을 되게 비아냥 거리는 투로 내보냈더라고요. 태극기 집회에 나간 건 저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했지만, 그날 집회의 성격은 박근혜 탄핵반대 집회가 아니라, MBC 응원 집회였습니다. 당시 MBC가 유일하게 가장 공정한 보도를 했다며 많은 분들이 저희를 격려해주시기 위해 상암 사옥 앞에 모여 집회를 연 겁니다. 당시 제 발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MBC뉴스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많은 시청 부탁드린다"는 당부의 말씀만 드렸어요.

    - 재미있는 포인트네요. MBC뉴스를 응원하고 격려해주시는 분들에게 MBC 직원이 감사 인사를 표한 걸 두고, MBC 사장님(당시 뉴스타파 PD)이 조롱을 하고 질책을 했다는 얘기잖아요?

    ▲향후 초상권 침해 소송도 낼 생각을 갖고 있어요. 제 의도나 의사와 상관없이 저를 비난하기 위해 이날 집회에서 찍힌 제 사진을 쓰는 건 절대로 용납 못합니다.  

    - 지난해 말 최승호 사장 부임 직후 보도국 기자들을 대거 업무에서 배제시키는 인사 발령이 내려졌었죠. 김 기자님이 사표를 던지게 된 발단도 이 사건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지난해 12월 8일, 저희들은 말 그대로 충격적인 일을 겪었습니다. 평상시처럼 뉴스를 제작·준비하고 있었는데요. 오후 4시 반경, 갑자기 경제부장님께서 저희 부서원들에게 "나 이제 물러난다"는 말을 하신 겁니다.

    당시 외부에서 뉴스 취재·제작을 마치고 복귀 중이었던 저는 이같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오후 4시 반이 되자 언론노조 사람들이 우르르 보도본부로 몰려와 자신들이 우리 자리에 앉겠다고 큰소리를 쳤다는 겁니다.

    모 부서의 경우는 담당부장이 앉아 있는 자리로, 언론노조 소속 타 부서장이 오더니 "여기는 내가 앉을 자리인데, 앉을 자리가 없네?"라고 대놓고 면박을 준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8시 뉴스를 방영하기 위해선 최소 6시경엔 제작을 완료해야 하고, 4시 반이면 어느 정도 제작을 다 마친 상태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언론노조에서 들이닥치는 바람에 당일 방송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는 긴급 사태가 발생한 겁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언론노조에서 이날 뉴스데스크 큐시트를 다 짜놨더라고요. 자기들끼리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고, 누가 어느 부서에서 일할지까지 다 정해놓은 상태에서 쳐들어온 거죠.

    그래서 그날 뉴스데스크엔 언론노조가 자체적으로 만든 내용이 그대로 방영됐습니다.

    - 이 정도면 쿠테타 아닌가요?

    ▲소위 '점령군'들이 오후 4시 반에 우르르 들어와서는 "너희들 다 나가", 이렇게 큰 소리를 치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밖에 있었던 저희 취재기자들과 카메라 기자, 담당 AD도 놀랐지만, 내부에 있던 데스크와 부장들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 그렇게 다른 기자들이 밀고 들어왔는데, 기존 기자들은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나요?

    ▲속된 말로 MBC 경영진은 아무런 권력이 없습니다. 저는 MBC의 권력이 최승호 사장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야말로 MBC의 살아있는 권력입니다. MBC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꽉 잡고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고,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져도 제대로 반박조차 못하고 있는 겁니다. 정말 충격적인 사건인데, 지금까지 이 사실을 말한 사람도 없고 보도된 적도 없잖습니까?

    - 노조원이라고 하면 회사 경영진도 아니고 간부급 인사들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이들의 힘이 막강한 겁니까?

    ▲MBC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사가 갖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중에서도 MBC가 특히 심한데요. 국민이 주인인 신문사이다보니 더욱 정치적인 논리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권이 누구로 바뀌었느냐에 따라 경영진이 바뀌는 회사 구조이지 않습니까? 어떤 개인이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방송문화진흥회라는 여야합의체 조직에 의해서 사장이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영진이 바뀌고, 경영진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과 전혀 상관없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조직. 그게 바로 언론노조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MBC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집단은 언론노조라고 생각합니다.
  • - 지난해 12월 8일 '점령군'이 들어와 보도국을 점령했고, 그들만의 뉴스를 만들어 일방적으로 뉴스를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보도국 사람들을 다 내쫓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많은 인력은 대체 어디로 간 겁니까?

    ▲일단 12월 8일, 7년간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아왔던 배현진 앵커를 곧바로 하차시켰습니다. 시청자에게 작별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요. 그리고 다음주 월요일 최승호 사장은 대규모 인사를 냈습니다. 언론노조원들은 보도국에서 일을 하게 하고, 기존 인력과 조직은 이름조차 알기 어려운 조직으로 보내버렸습니다.

    물론 인사는 경영진의 고유 권한입니다. 더 큰 조직 개편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수용할 의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순간에 마이크를 빼앗긴 80여명의 직원 대부분은 본연의 업무와는 거리가 먼, 영상 라벨링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 라벨링이 뭔가요?

    ▲카메라 기자나 영상 취재피디들이 여름철 '더위 스케치'를 촬영해오면, '분수대 물나오는 장면', '지나가는 행인 남녀', '노인과 소년',  이런 식으로 라벨링을 분류해야 나중에 자료 그림으로 찾을수가 있습니다. 언론노조에 속하지 않은 비노조원들에게 이런 작업을 시키고 있습니다.

    - 어제까지만 해도 뉴스 리포트를 했던 취재 기자들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영상물에 라벨링을 하는 신세가 됐다는 거죠?

    ▲그전까지는 아르바이트생들이 하던 작업입니다. 이걸 취재기자들에게 시킨 겁니다.

    - 그렇다면 대체 이분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런 굴욕적인 징계를 받은 겁니까?

    ▲지금 내세운 명분은요. 이병박·박근혜 정부 때 뽑혔던 기자들은 죄다 함량미달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최승호 사장은 일전에 한 인터뷰에서 "경력기자 채용 과정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그동안 (경력기자들이)나쁜 선배들 밑에서 배웠기 때문에 좋은 선배들에게 제대로 교육 받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기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면이 있으니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기였죠. 따라서 재교육 차원에서 기자들에게 이런 영상 분류 작업을 시킨다는 게 사측이 내세운 표면적 이유였습니다.

    - 그럼 8개월째 라벨링 작업만 하고 있는 건가요?

    ▲대부분 지금도 동일한 작업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중에는 오정환 보도본부장도 있습니다.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기자 업무와는 전혀 무관한 일을 회사에서 시키고 있어요. 예를 들면 취재기자로 활동하시던 분이 평일 아침뉴스에서 작가 역할을 맡게 되는 일처럼 말이죠.

    - 이 분들의 공통점은 언론노조원이 아니라는 거죠?

    ▲무슨 기준으로 언론노조원들은 훌륭한 기자고, 언론노조가 아닌 기자들은 재교육이 필요한, 수준 이하의 기자들이라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이 취재 업무에서 배제됐을 때 그렇게 사측을 맹비난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거꾸로 누군가를 업무에서 배제시키는 걸 당연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지켜보면서 역겹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과거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었다면 최소한 이런 내로남불식의 태도는 보이지 말았어야죠. 단지 자신들과 진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자들을 재교육 대상에 포함시키고 취재 영역에서 배제시키는 모습에 정말로 치가 떨립니다.

    - 최승호 사장도 과거 회사로부터 내침을 당했기 때문에 해고자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지금은 거꾸로 그분이 가해자 입장이 됐습니다.

    ▲내로남불인가요? 말도 안되는 행동을 스스로 하고 있죠. 그런데 이런 점을 비판하는 용감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 말을 했다가는 자신도 꼼짝없이 해고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겠죠. "해고는 살인"이라고 말한 사람은 바로 최승호 사장 자신이었습니다.

    - 최승호 사장 부임 이후 80여명의 유능한 기자들이 다 일선에서 배제됐고 인사상 불이익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요. 지금까지 징계를 받으신 분들은 총 몇 분 계신가요?

    ▲최승호 사장 취임 이후 해고자가 12명에 이르고 있어요. 일단 초창기 저와 함께 노조를 시작했던 최대현 아나운서가 해고 됐고요. 같이 노조 활동을 했던 권지호 기자와, 박상후 전 시사제작국 부국장도 해고를 당했습니다. 권 기자는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해고를 당했는데요. 오히려 검찰 수사 단계에선 무혐의가 나왔습니다.

    해고를 당한 케이스 중에 가장 황당한 사건은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을 보도한 현OO 기자가 해고됐다는 겁니다. 기자가 정치인의 논문 표절 의혹을 다룬 보도를 했다고 해서 해고 처분을 받는 건 정말 말도 안되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해고 사유는 공정성 위반이라고 하는데요. 그러면 관련 의혹이 불거져도 의혹 제기를 하지 않는 게 기자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걸까요?

    - 김 기자님의 페이스북 글을 보고, 대기발령 상태에서 100원대 급여만 받았다는 얘기가 정말 사실이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대기발령이라는 것은 상여라든지 각종 수당을 하나도 못받고 오로지 기본급만 받을 수 있도록 한 인사조치인데요. 월급에서 15만원 정도만 차감하는 감봉과 비교하면 열배는 더 센 징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MBC는 기본급이 23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로 타사와 비교해 적은 대신, 상여라든지 문화 복지기금, 기타 수당으로 혜택을 많이 주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이 기본급을 받아도 저에게 바로 오는 게 아니거든요. 각종 세금을 다 제하고 나면 제 통장에는 100만원대밖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 제가 보기엔 사측에서 가장 큰 눈엣가시인 김 기자님을 해고하려고 사유를 백방으로 찾아봤으나 그게 잘 안보이니까, 일단 근무장소를 조명창고로 돌리고, 대기발령을 내는 식으로 시간을 끌어왔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MBC와 제대로 싸워보자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 측에서 저를 빨리 해고해주기를 내심 바랬습니다. 4월 18일 저에게 대기발령이 떨어졌는데요. 대기 장소가 하필 정상화위원회 조사실이었습니다. 저보고 그곳으로 매일 출근하라는 발령이 난 겁니다. 정상화위 조사에 응하고 안하고는 순전히 개인의 자유 아닌가요? 제가 회사 방침에 따르지 않았다면 여기에 대해 제재를 내리면 되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치졸한 방법이냐면요. 제가 정상화위 조사를 거부하기 위해 조사실에 가지 않으면 그 순간 무단 결근을 하게 되는 겁니다. 결국 사측에선 저를 무단 결근으로 해고시키기 위해 이런 꼼수를 부린 겁니다.

    - 그러면 그 이후에 어떻게 대처를 하셨습니까?

    ▲아버지가 고령이시고 몸이 안좋으셔서 제가 가족돌봄휴직을 냈어요. 4월 20일 신청서를 냈는데, 실질적으로 회사가 결제해준 날짜는 5월 20일이었습니다. 아마도 MBC가 저를 어떻게 하면 더 괴롭힐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 법적으로 한 달 안에 휴직 신청을 안받아주면 국가 법에 어긋나는 일이 거든요. 그래서 법적으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가족돌봄휴직 신청으로, 정상화위원회 조사실로 출근하라는 부당한 요구는 당당히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휴직계를 냈기 때문에 6~7월 제 급여는 O원으로 전락했습니다. 4월에 대기발령을 받으면서 실급여가 100만원대로 확 줄었고 다시 제로 수준까지 떨어진 거죠.

    - 사표를 던지신 게 신념과 철학이 있고, 나름의 소신을 지키시려는 행동이었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비단 저만의 문제는 아니고요. 굉장히 많은 비언론노조원 가족들에게 MBC가 어마어마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행히도 가족들이 전적으로 저를 믿고 이해해줘서 버틸 수 있었지만, 해고를 당하거나 정직 처분을 받으신 분들은 아마 저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받고 계실 겁니다. 실제로 한 선배님은 지금 국밥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계세요.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까. 물론 국밥집에서 일하는 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멀쩡한 직장을 두고 국밥집에서 서빙을 하는 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장 큰 문제는 특파원 조기소환이라고 봅니다. 특파원은 단순히 개인이 해외에 나갔다 오는 게 아니에요. 아예 호적을 파서 수년간 외국에서 살다오는 겁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전 특파원을 국내로 불러 들이면서 아이들과 배우자들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어 놨어요.

    제일 심각한 분은 강명일 특파원입입니다. 도코 특파원으로 파견된지 불과 4개월 만에 조기소환됐어요. 투 플러스 원이기 때문에 사실상 3년을 보장 받는 게 일반적입니다. 모집할 때부터 그렇게 나와 있어요. 해당 국가에서 교육 받는 것을 전제로 자녀들이 다 전학을 했고, 집도 구했고, 모든 걸 다 결정한 상황에서 갑자기 국내로 복귀하라는 건 한 가정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겁니다.

    - 그 분은 지금 어디에서 근무하고 계시나요?

    ▲비보도부서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 그럼 현재 MBC에는 해외에 상주하고 있는 특파원이 전혀 없는 셈인가요?

    특파원 조기소환 문제는 민사상으로 소송을 걸면 최승호 사장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사측에서 꼼수를 부린 게, 과다한 경비 문제로 해외 특파원 사무소를 폐쇄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지금도 주요 대도시에는 저희 기자들이 나가 있습니다. 사실상 편법으로 특파원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롱텀은 아닙니다. 3~4개월 정도 나갔다가 들어오는 방식으로 알고 있는데요. 화면을 보면 예전과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경비가 많이 든다면서 특파원들을 죄다 소환했는데 앞뒤가 안맞는 거죠. 
  • - 화제를 바꿔보겠습니다. 2004년 MBC 입사 이래 줄곧 평범한 기자로 활동해오다 2013년에 갑자기 노동조합을 결성하셨잖아요? 이렇듯 언론노조와 색깔을 달리하는 노조 결성을 추진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연수원에서 진행하는 신입사원 교육 코스 중에는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와서 교육을 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시간이 꼭 있습니다. 언론노조에 가입하라는 얘기죠. 언론사는 특히 상명하복식 조직문화가 강한 편입니다. 신입 사원 입장에선 선배의 말 한 마디가 그만큼 중요하고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2013년 저희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언론노조 가입률은 99.9% 정도 됐을 겁니다. MBC의 권력이 언론노조에서 나온다는 얘기가 괜한 말이 아닙니다.

    2012년 170일간 파업이 이어졌습니다. 역대 최장기간 파업이 전개됐습니다. 저를 포함해 천명이 넘는 직원들이 월급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한 채로 170일을 버텼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희생이 따르는 파업이었습니다. 그런데요, 그 가운데 파업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을까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정말 없었을까요? 저는 이런 점을 점검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언론노조를 탈퇴하는 것이었지만 언론노조가 힘이 제일 센 조직에서 누가 감히 탈퇴를 하겠습니까? 저는 총파업 때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완주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도 편가르기와 남 비난하기가 판을 쳤습니다. 제가 '올출석'을 해도 어차피 제 (정치적)성향 때문에 따돌림 당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저는 언론노조과 결을 달리하는 노조를 만들게 됐습니다. 처음엔 파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기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 사실 MBC노동조합을 두고 '어용노조'라고 비난하는 분들도 계신데요. 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희를 '어용노조'라고 말하는 분이 계시다면, 저희가 안광한·김장겸 사장 때 무슨 혜택을 받았다는 건지 한 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김장겸 전 사장이 저를 앵커감으로 생각했다는 얘기도 있었잖아요? 저를 아는 분들은 그 기사를 보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말도 안됩니다. 단언컨대 김장겸 사장은 저를 그렇게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겁니다. 배현진 앵커도 김종국 사장 때 MBC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서 하차했습니다.

    이전 경영진에게 저희 노조를 어떻게 바라봤었는지 한 번 물어보시죠. 저희가 가진 권한은 그저 언론노조를 따라가는 수준밖에는 되질 못했습니다. 심지어 김종국 사장 때에는 경영진이 언론노조에게 대표교섭권을 주는 바람에 저희는 2년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저희 노조원들 중 영상·취재 피디님들이 정말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는데요. 평상시 월급이 100~200만원 수준입니다. 영상 편집이나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하시는 분들도 정규직이지만 비일반직으로 분류돼 처우가 상당히 안좋은 편입니다. 저희가 이분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시켜달라고 그렇게 요구를 했건만 단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습니다. 경영진은요. 언론노조원인데 경영진에게 아첨을 잘하는 사람이나, 언론노조를 탈퇴하고 우리 노조에는 가입하지 않은 이른바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항상 더 챙기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사람들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임명된 MBC 사장들을 언론노조와 열심히 싸운 사람들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MBC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입니다. MBC 경영진 중에 장기적인 계획과 비전을 갖고 MBC를 위해 몸바쳐 일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마도 손에 꼽을 정도일 겁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방문진이 바뀌고, MBC 경영진도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바뀌는 게 바로 MBC입니다. 따라서 정치권 눈치를 안보고 MBC를 위해 일하는 임원진을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가장 한심한 것은 언론노조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는 점입니다. 

    과거 모 사장은 저희 노조가 '극우 돌아이 집단'이라며 대면조차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희는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쓸모없는' 노조였습니다.

    - MBC 경영진이 장기적인 플랜을 짜지 않고, 단기적으로 언론노조의 입맛에 맞는 근시안적인 목소리만 내고 있는 데 대해 개인적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앞으로 최승호 사장 체제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일편향적인 현 문재인 정권처럼 MBC도 자기들만의 주장을 계속 펼칠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상태가 쭉 유지되겠죠. 최승호 사장은 MBC의 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SBS는 논란이 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를 폐지한다고 하잖아요? MBC가 제대로 된 회사라면 '주진우의 스트레이트' 같은 프로그램은 당장 폐지해야죠. 하지만 그런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최승호 사장은 본인 세일즈에는 굉장히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얼마 전엔 뉴스데스크와 뉴스타파가 공동으로 리포트를 내보낸 적도 있고, 최승호 사장이 출연한 영화 '버닝'을 홍보하는 뉴스가 몇차례 전파를 타기도 했습니다. 비언론노조원들은 미워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아주 끔찍히 아끼는 것 같더라고요. 이런 상황에 제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 현재 MBC와 소송 중이거나 법적 소송을 강구 중인 사안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일단 직원 이메일 사찰 건이 근자에 MBC가 저지른 가장 큰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박영춘 감사가 방문진 회의에서 직원 30~40명의 이메일을 들여다봤다고 실토한 바 있습니다. 사건을 접수한 서울서부지검 관계자 여러분께서는 조속히 해당 사건을 수사해주시길 바랍니다. 고소장을 낸 지가 꽤 지났는 데에도 여전히 실질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 해고 징계를 받으신 분들은 모두 MBC를 상대로 무효소송을 제기하신 상황입니다. 

    이밖에 시간 외 수당을 청구하는 소송도 진행 중인데요. 오래 전에 언론노조가 국가에서 정한 기준보다도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사측과 합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부터 MBC 직원들은 마치 관행처럼 굉장히 낮은 수준으로 시간 외 수당을 받고 있는데요. 저는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할 때 시간 외 수당을 인상하기 위해 노사합의안까지 도출한 적이 있습니다. 가만보니 단순히 인상의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법적 소송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이 부분은 저희가 반드시 승리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인'이 됐기 때문에 MBC가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보도를 할 경우엔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대응할 생각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집회 결사의 자유를 충분히 활용해서 말이죠. 

    - 그밖에 구체화된 거취나 활동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일단 거창한 계획보다는 당분간 쉬면서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15년간 기자생활을 하면서 사회 전반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았지만, 깊이가 없는, 얕은 공부만 했던 것 같아요. 업무에서 배제된 이후부터 책을 많이 읽고 있는데요. 요즘엔 우파 진영 분들이 쓰신 책보다 오히려 좌파 진영에서 나온 책들을 많이 읽고 있어요. 특히 NL과 PD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같은 주제를 놓고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책을 펴냈으면 합니다. 

    - 끝으로 사표를 쓰게 된 원인 제공을 한 가장 핵심적인 분이자, 현 시점에서 김 기자님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현직 MBC 사장님께 하고픈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1988년도에 아버지께서 MBC 사장 자리에 오르셨는데요. 그때 처음으로 언론노조가 결성돼 파업을 벌이고 사측과 세게 붙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당시 저희 아버지께선 언론노조 때문에 출근조차 하지 못하셨습니다. 국민학생이었던 제 눈에도 그게 참 이상해 보였어요. 어린 심정에 아버지께 이렇게 말했죠. "아버지, 경찰이라도 불러서 출근하세요. 왜 이렇게 가만히 계세요?" 그러자 아버지께선 "다들 내 후배들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면서 전혀 화를 안내시는 거예요. 결국 아버지께선 출근도 못하시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  나셨습니다.

    얼마 전에도 회사 선배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전에는 아무리 서로 욕하고 싸워도 '선후배'라는 정은 있었는데, 요새는 그런 게 아예 없어진 것 같다고요. 지금은 최소한 지켜야 할 선마저 무너져버렸다는 느낌입니다. 하다못해 2012년 이후에 입사한 기자들에 대해서는 사측이 과거 경력 조회까지 해가면서 입사 취소를 고려 중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6년 넘게 MBC라는 울타리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인데 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보복을 합니까? 이들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언론노조를 탄압한 집단이었습니까? 싸울려면 당시 경영진이었던 안광한, 김장겸 전 사장과 싸워야죠. 이게 무슨 아름다운 투쟁입니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폐다" "부역자다" "청산대상이다"라고 매도하는 건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합니다. 언론노조는 무조건 정의고, 그밖의 사람들은 모두 악마인가요? 저희는 똑같이 MBC를 사랑하고 열심히 일한 당신들의 동료입니다.

    그들(언론노조)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MBC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전 이제 MBC를 떠났지만 진심으로 MBC가 잘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MBC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더욱 강하게 비판할 겁니다. MBC가 이렇게 망하고 사라지는 걸 절대로 원치 않습니다. 
  • 취재 = 조광형 기자
    사진·영상 = 이기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