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이 맨 손으로 흙 파낸 마식령스키장, “평화의 상징 자격 있나” 논란
  • ▲ 마식령스키장 리프트를 탄 김정은. ⓒ 연합뉴스 자료사진
    ▲ 마식령스키장 리프트를 탄 김정은. ⓒ 연합뉴스 자료사진
    남북이 ‘마식령스키장 스키팀 공동훈련’에 합의하면서, 북한의 참혹한 인권상황을 외면한 상식 밖 결정이란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마식령스키장 이벤트’는 정부가 지난해부터 구상한 계획이라는 점에서, ‘올림픽이 김정은 정권 홍보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 정부는 지난해 여름부터,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겠다는 속내를 밝혀왔다. 이를 위해 정부가 가장 먼저 꺼내든 카드 중 하나가 ‘마식령스키장 이벤트’다.

    도종환 문체부장관은 지난해 6월20일, 평창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마식령스키장 활용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올림픽을 통해 북한의 마식령스키장을 ‘평화의 상징’으로 띄우겠다는 구상이나 다름이 없다는 점에서, 국내외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당시 도 장관은 북한의 주장을 인용해 “마식령스키장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하는데 장웅 북한 IOC 위원과 상의해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우리 선수 홀대 논란’을 키우고 있는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계획도 이때 이미 나왔다.

    올림픽을 이용한 마식령 이벤트 계획은 정치권에서도 화제가 됐다. 당시 여당 일부 의원은 “세계적 수준의 시설을 갖춘 마식령스키장을 참가국에 연습장으로 개방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도 “마식령스키장이 국제규격을 갖추고 있는지 등은 검토가 필요하다”면서도 “크로스컨트리나 스노보드 동의 종목은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최문순 지사는 “금강산 관광을 위해 개설한 도로와 철도가 있고 항로도 있기 때문에 교통은 별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스위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정은이 직접 자시해 만들었다는 마식령스키장은, 개장 후 극소수의 북한 부유층과 소수의 중국·러시아 관광객만 이용해 왔으나,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최근에는 사실상 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식령스키장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이곳이 ‘주민 인권탄압’의 상징과 같은 곳이란 사실이다.

    김정은이 체제 선전과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마식령스키장을 만든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스키장과 리조트 등 부대시설을 조성하는데, 북 주민이 강제 동원된 사실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마식령 속도전’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질 만큼 강제노역은 가혹하게 이뤄졌다. 북한의 주장 혹은 이에 터 잡은 우리 정부 및 여당 일부 의원의 주장처럼, 이곳 시설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해도, 북 주민의 강제노역 사실이 덮어질 수는 없다.

    지난해 1월27일(현지시간) 미국 NBC 방송은 현장 취재를 통해, 북 주민들이 제설 장비도 없이 스키장 진입로에 쌓인 눈을 맨손으로 치우는 장면을 보도했다.

    “김정은의 사람들이 유복한 동료 주민들을 위한 길을 트려고 혹한에 맨손으로 뼈 빠지게 제설작업을 한다.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에 얼굴이 빨개진 남성, 여성, 어린이들은 재킷, 스카프, 모자로 무장하고 곡괭이와 막대기로 눈을 메트로놈처럼 때려 부수고, 나무 삽으로 눈을 옆으로 밀쳐낸다.”
    “눈길에 소금을 뿌리는 트럭은 없다. 스키장에 오는 극소수 차량이 빙판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노동자들은 꽁꽁 얼어붙은 땅을 파내 흙과 돌을 던진다.
    노역에 동원된 이들 가운데는 11∼12세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들을 비롯해 10대들도 있었다.”
    - 美 NBC 방송.

    당시 상황을 보도한 취재진은 “마식령 스키장은 찢어지게 가난한 대부분 북한 주민의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라며, 북한의 인권 상황을 고발했다.

    스키장의 안전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곳에서 북한과 공동훈련을 할 우리 선수단은 스키 유망주들로 구성된다. 국제사회 제재로, 시설이 상당기간 사실상 방치됐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정부는 공동훈련을 추진하기에 앞서 스키장의 안전실태부터 따져보는 것이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