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1주년] 두 쪽으로 쪼개진 親文, 내부분열 본격화… "너희가 진짜 적폐" 갈등 고조
  • ▲ 28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에서 집회 참석자들이 과격한 내용이 적힌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28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에서 집회 참석자들이 과격한 내용이 적힌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가짜촛불 민노총이 대체 무슨 권리로 청와대로 행진을 하느나? 국정운영 잘 하고 있는 우리 이니 꽃길 걷는데 방해 말라. 민노총이 진짜 적폐다.”

    28일 오후 열린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가 두 쪽으로 쪼개졌다.

    탄핵 구호로 한 목소리를 냈던 진보 진영이 1년이 지나자 서로 엇박자를 내는 모습이다. 청와대의 정책 방향에 불만을 품은 민노총계 촛불 세력과 문재인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문팬 세력 간 갈등이 폭발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민노총이 주도하는 민중총궐기투쟁본부(투쟁본부)는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 하루 전날인 27일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를 강행했을 뿐만 아니라 적폐청산 작업에도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하며 1주년 본집회를 마무리한 뒤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문팬 세력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SNS 상에서 민노총계 촛불 세력을 맹비난하면서 “멀쩡히 나라를 잘 이끌고 있는 청와대로 행진을 하겠다는 의도가 불순하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특히 문팬 세력은 광화문에서 열리는 촛불집회 1주년 기념 행사를 보이콧하겠다고 공언했다. 나아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야당을 비판하는 집회를 따로 열겠다고 했다.

    결국 양측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는 서울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나뉘어 열리게 됐다.

    #. 광화문 광장 “사드 배치한 문재인 정부도 적폐”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퇴진행동)이 오후 6시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한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에서는 평소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무대에 오른 이종희 성주사드철회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후보시절 사드와 관련해 ‘득보다 실이 많다’고 하셨기에 큰 기대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 미사일 한방에 임시배치를 결정했다. 왜 우리는 미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나. 문재인 정부에게 따가운 회초리를 줘야 한다.”

    그러자 일부 인사는 “(문재인 정부가)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박근혜 대북정책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석기 서명운동’ 천막 앞에서 만난 한 남성은 “적폐들과 손잡은 문재인 정부에게 엄중한 경고를 해야 하는 만큼 오늘 반드시 청와대 앞으로 행진하겠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민대협) 회원들은 세종대왕 동상 옆에서 ‘촛불의 경고’라고 쓰여진 옐로카드 전단지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전단지에는 ‘지금 사드를 똑같이 추가 배치한 문재인 정부도 적폐 아닌가’라고 적혀 있었다.

     

  • ▲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가 끝난 오후 9시쯤 광화문사거리에서 집회 참석자들이 '트럼프 방한 반대' 손팻말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가 끝난 오후 9시쯤 광화문사거리에서 집회 참석자들이 '트럼프 방한 반대' 손팻말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촛불집회 1주년 기념한다더니...  

    이날 광화문 집회에선 급진진보적 발언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마이크를 잡은 조수진 민변 사무처장은 “여러분 다스는 누구의 것인가? 바로 이명박이라고 우리 모두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적폐청산을 완수하기 위해 이명박을 구속하고 처벌해야 한다”며 “이명박은 연예인과 일반인 할 것 없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일상 생활을 방해했다”고 강변했다.

    김욱동 민노총 부위원장은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한상균 위원장히 여전히 석방되지 못한 채 박근혜와 함께 감옥에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노점탄압과 여성 소수자 차별 역시 변함이 없고 여전히 남아있는 적폐들을 청산하고 사회대개혁을 위해 계속 투쟁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기업이 후원을 받고 있는 원자력엘리트들이 있기 때문에 원자력 카르텔을 끊어야 한다”며 “위험한 핵발전소를 이제는 멈춰야 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경도 연출됐다. 광화문 광장 대로변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촛불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흡연이 금지된 광장이었지만 곳곳에는 ‘담배꽁초’가 널브러져 있었다. ‘단결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촛불 세력이었지만 준법정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촛불이 라이터로 변질된 모양이었다.

    언론노조로 추정되는 이들이 내건 ‘공영방송 최악 적폐이사 선출 시민투표’ 현수막도 눈에 들어왔다. 해당 현수막에는 KBS, MBC 경영진을 쫓아내야 한다는 좌편향적 주장이 담겨 있었다.

    한쪽에선 한 아이가 이명박 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을 주먹으로 마구 때리고 있었다. 3분가량 멈추지 않았다. 부모는 잘한다며 박수를 보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시민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저러는 게 교육적으로 좋을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청와대 앞에 선 민노총계, ‘비판 세례’

    본집회가 끝나자마자 ‘투쟁본부’의 청와대 행진이 시작됐다.

    이들은 “트럼프 방한 반대 국빈방문 웬말이냐”, “비정규직문제 해결하라”, “노조 권리 인정하라”, “사드배치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삼삼오오 모여 청와대로 향했다.

    하지만 8시 40분쯤부터 이탈 행렬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같은 촛불 세력 내부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광화문 사거리 인근 보도에서는 젊은 남녀 5명이 ‘청와대 행진 안하는 사람들’이라는 깃발을 들고 청와대 행진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퇴진행동에서 1년 동안 자원봉사를 했다는 한 남성은 “지금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할 게 아니라 힘을 실어줘야 할 때인데 갈 거면 청와대가 아닌 국회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행진 참여자들과 동선이 겹치는 바람에 투쟁본부 측으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했다.

    청와대 앞에 도달한 투쟁본부는 “우리가 청와대로 온 것은 적폐청산이 제대로 안됐고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를 청산하기는커녕 늘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를 추진했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트럼프를 초청했다”고 비난했다.

    투쟁본부 측은 11월 4일과 7일에도 청와대 앞에서 같은 구호를 외치겠다고 다짐했다. ‘문재인 지지 촛불’과 ‘문재인 적폐 촛불’이 서로 뒤엉킨 분위기였다.

     

  • ▲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가 끝난 오후 9시쯤 광화문사거리에서 집회 참석자들이 '촛불은 계속 된다'라고 적힌 포스터를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가 끝난 오후 9시쯤 광화문사거리에서 집회 참석자들이 '촛불은 계속 된다'라고 적힌 포스터를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또 다른 촛불... 문재인 대통령 ‘찬양 일색’

    같은 시각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 모인 문팬 세력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여의도 촛불집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 지지자가 민노총계 세력의 청와대 행진을 반대하면서 공론화해 성사됐다. 당초 50명으로 계획됐으나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규모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 참가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청산을 잘하고 있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무대 연사로 나선 최초 집회신고자 ‘그만 떠들자’(32·익명)는 무대에 올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는 나와는 방향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조촐하게 모여 촛불집회를 기념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많은 분이 모여주셨다”고 뿌듯해 했다.  

    자유발언에 나선 한 10대 청소년은 “엄마 아빠 몰래 와서 가면을 썼지만 뻔뻔한 적폐들도 얼굴을 들고 다니는데 그냥 가면을 벗겠다”고 말했다.

    무대에 오른 한 시민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걸맞게 행동하면 이 나라는 결코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100년, 200년, 5000년은 갈 수 있다”면서 “순수하게 특정 세력에 얽매이지 않고 1주년 기념하기 위해 모여주신 분들께 마음 속으로 큰절을 드린다”고 했다.

    문팬 세력은 촛불 파도타기로 자축한 뒤 오후 8시 30분이 되자 자유한국당 당사 앞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자유한국당은 끝났다’는 의미의 침묵 행진이었다.

    문팬 세력은 이어 자유한국당사 앞에 조문용 테이블을 놓고 보수진영을 비난했다. 경찰은 여의도 인근에도 경력 6개 중대(약 480명)를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 “귀족노조 주제에... 우리 이니 꽃길 걷는데 방해 말라”

    민노총이 주도하는 투쟁본부가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문팬 세력은 SNS 상에서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민노총계 촛불 세력이 아무 잘못 없는 문재인 대통령을 괴롭힌다는 뉘앙스의 주장들이 주된 내용이었다.

    “무능력한 운동권, 수구좌파, 정의당, 통진당, 민노총, 참여연대... 니들끼리 이석기 사면 외치며 청와대 행진하다가 욕 먹으세요.” - 네이버 아이디 hlee****

    “적폐청산 하려면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 행진을 해야지. 청와대가 동네북이냐? 얼어죽을 행진은... 양심 좀 있어라.” - 네이버 아이디 pari****

    “가짜촛불 구좌파에게 속지 맙시다... 청와대 행진, 니들이 뭔데?” - 트위터 아이디 sungho****

    “대통령 잘하고 있구만. 무슨 행진이냐. 청와대 가지마라. 진보귀족놈들아.” - 네이버 아이디 calm**** 

    “진짜 촛불 1주년을 더티하게 만드네. 청와대 행진 취소했다고 하더니 산하단체 명의로 집회신고를 해? 정말 막장꼼수! 그렇게까지 해서 당신들 원하는 게 얻어질 것 같니? 촛불국민 우습게 보지 마라. 우리는 당신들 같은 꼼수 안부리고 문 대통령 지킨다.” - 트위터 아이디 violet****

    “(민노총이) 감히 청와대로 행진하려 들다니... 문 대통령님은 촛불시위대를 적폐로 규정해 없애야 한다.” - 네이버 아이디 rend****

    “결국 민노총이 청와대 행진을 진행했다. 참으로 유감스럽다.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의 목줄을 잡고 떼쓰고 흔들어 11% 현실 참여정당을 이뤘던 때를 기억하고 저러나 보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정신차려라.” 트위터 아이디 WH*****

    문팬 세력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도 “전문 시위꾼들이 청와대를 넘보느냐”, “우리 이니 꽃길 걷는데 방해 말고 찌그러져라”, “적폐는 가짜촛불 민노총이다” 등 광화문 촛불 세력을 거세게 비난하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