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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4일 인기리에 종영된 ‘결혼계약’은 이서진과 유이의 안타까운 사랑을 그려내며 2016년 MBC 주말극의 성공 가도를 이어갔다. 배우 이서진은 지난 2014년 방송된 KBS2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 이후 2년여만의 복귀작임에도, 공백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완벽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기자는 최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이서진을 만나 드라마 종영소감과 함께 46세 ‘꽃중년’이 느끼는 결혼과 삶의 가치를 들어봤다.

    드라마는 꾸준히 시청률 20%를 넘기며 믿고 보는 배우 이서진의 진가를 입증했다. 그는 시작 전부터 이렇게 좋은 반응을 얻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겸손함을 표했다. 그러나 은연중에 자신감을 드러내며 작품에 대한 확신을 나타내기도 했다.
     
    “시청률이 워낙 잘 나왔고, 방송 기간 동안 주변에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배우 입장에서 그것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겠나 싶어요. 처음에 작품 들어갈 때 이 정도로 반응이 올 줄 몰랐는데, 초반 1,2회 나가고 관계자들한테 연락이 많이 와서 ‘이번에 잘 되겠구나’라는 예상을 했죠.”

    “촬영하면서도 특별히 힘든 점은 별로 없었어요. 김진민 PD가 워낙 베테랑이고, 뛰어난 연출자이기 때문에 저는 그냥 믿고 따라갔어요. 첫 회 촬영분 보고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맡은 한지훈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도도한 ‘까칠남’이다. 이서진은 그간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털털한 이미지에서 갑자기 벗어나지 않는, 실생활 밀착형 연기를 통해 한지훈과 본인의 차이를 좁혔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이서진의 본 모습을 많이 너무 보여드렸는데, 드라마에서 이렇게 새로운 인물을 연기 하는 것을 시청자들이 보면 조금 어색해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연기 자체를 일부러 비슷하게 했어요. 보는 사람들한테 최대한 편안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했죠.”

    “‘삼시세끼’나 ‘꽃보다 할배’에서 나온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한 번에 떨쳐 내려하기보다 천천히 밑그림을 그려 나간다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임했어요.”

    이서진은 자신보다 열일곱 살의 나이차가 나는 유이와의 호흡에서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그림을 완성해냈다. 어떤 상대하고 호흡을 맞추더라도 그 사람의 특징에 맞춰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데뷔 17년차의 깊은 내공이 묻어났다.

    “유이와 나이차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더 편했어요. 저와 비슷한 또래의 연기자와 함께 했다면 오히려 어색했을 것 같은데, 유이는 그보다 훨씬 어리니까, 부담 없이 연기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친구도 그만큼 저를 믿고 따라와 줬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는 문제될게 없었어요. 대신 비주얼은 조금 신경을 썼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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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끝나고 유이의 열애 기사를 봤는데‘인터뷰 할 때 내 질문은 별로 안 들어오겠구나’라고 걱정을 했어요(웃음). 저도 전혀 알지 못했지만, 누구를 만나고 있는 것 같다는 분위기는 느껴졌어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재벌남과 그에 비하면 한 없이 보잘 것 없는 ‘싱글맘’의 사랑.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곁에서 끝까지 함께 할 것을 약속하는 지고지순한 모습. ‘결혼계약’은 전형적인 통속 멜로물의 틀을 그대로 따라갔다. 그는 그럼에도 이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 작품을 맡은 작가와 PD만의 개성을 주효하게 봤다. 또한, 인터뷰 중간 중간마다 제작진에 대한 깊은 신뢰와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사실 영화 ‘러브스토리’ 이후 나온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비슷한 멜로물들은 많았죠. 하지만 ‘결혼계약’은 정유경 작가 본인이 원하는 방향을 명확히 보여줬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주효했다고 생각해요. 스토리는 비슷할지라도, 작가의 확실한 의도와 특성이 묻어났고, 그것을 연출이 잘 살려줬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봅니다.”

    “처음에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캐스팅이 확정 되기 전에 대본 수정이 가능한지 작가님한테 요청을 했는데 3일 만에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고쳐주시는 거에요. 원래 지훈의 캐릭터는 너무 착한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조금 재미가 없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성격에서 점점 변화하는 과정을 그려내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런 점을 말씀 드렸는데, 흔쾌히 의견을 수용해주셨고, 거기에 감동을 받아 출연을 결심했죠.”

    드라마 속 한지훈은 대부분의 장면에서 진지하고 어딘가 슬픔에 차 있는 듯한 모습을 드러냈지만, 친구 박호준과 함께 있을 때만큼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밝고 환한 분위기를 표출했다. 그가 실제로는 자신보다 형인 김광규와 친구 사이를 연기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절친한 두 사람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호준은 극 중 제가 유일하게 마음 속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서, 감독님한테 실제로 저와 친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원래는 광규 형을 저보다 동생으로 설정하려고 했는데,그렇게 하면 제가 너무 나이가 들어 보일 것 같아서 친구로 하자고 했죠.(웃음)”

    “서로 워낙 잘 알고 친하니까 연기를 하면서도 이게 연기인지, 실생활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아름답고 영원한 사랑.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 본연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남자의 심경을 그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는 질문이 들어간 순간 로맨틱하고 애절한 한지훈이 아닌, 이서진의 유쾌한 면모를 나타내며 드라마와 현실의 적절한 차이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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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지훈의 마음이 그닥 공감은 안 되죠, 그게 될 수가 있겠어요.(웃음) 보통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만큼 이라면 시한부라는 설정은 더 애절해 보이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무언가를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고,그런 상황들이 계속 생기다 보니까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고 봐요.”

    “시한부를 소재로 한 멜로물은 처음 출연했는데, 일반적인 사랑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표현하는 방식들이 많이 달라지는 것은 사실이에요. 마냥 행복할 수 없고, 결국에는 끝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 그만큼 헌신이 많이 필요한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 제 인생에서 그런 일을 겪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웃음) 드라마에서라도 충분히 경험해보고 싶어요.”

    “지훈을 연기하면서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사랑을 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던 작품이었죠. 감독님이 저한테 요구하는 것도 많았고, 초반부터 워낙 슬픈 감정을 요하는 장면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그런 점을 신경 쓰는 게 힘들었어요.”

    이서진은 그동안 많은 멜로연기를 해오며 여심을 사로잡는 대한민국 대표 ‘로맨틱남’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본인이 느끼고 있는 좋은 연기의 조건과 표현 방식을 확고하게 답했다.

    “연기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게 제일 좋죠. 그런데 그 동안 맡았던 역할들을 보면 항상 제 성격과 반대되는 인물을 연기했어요. 물론 제 안에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워낙 진지한 것을 싫어하고 부담스러워 해서 연기로 하는 게 더 좋아요. 평소에는 해볼 수 없는 것들을 하니까…. 그런 장점이 있죠.”

    “예전에는 상대를 생각하기보다는 제 감정에만 충실한 1차원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을 했다면 지금은 상당히 복합적으로 이런 사랑도 해보고, 저런 사랑도 해보면서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 것 같아요, 또 나이가 들면 들수록 표현은 더 줄어들거든요. 평소 상상해왔던 것들을 드라마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게 배우라는 직업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결혼계약’은 멜로드라마의 특성에 맞게 수많은 명장면과 대사로 안방극장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는 본인이 생각하는 몇 가지 의미 있는 장면을 언급하며 작품이 남긴 여운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14회에서 지훈이 혜수(유이 분)에게 꽃다발을 주는 장면을 본 시청자 의견 중에 제가 드라마에서 그렇게 환하게 웃는걸 처음 봤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웃음)”

    “지훈의 성격이 워낙 어둡고 마음이 닫혀 있다 보니,연기를 하면서 웃을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연출 자체가 굉장히 훌륭했던 장면이에요. 밝으면서도 슬퍼 보일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나타내고 싶었죠, 저는 그런 게 더 좋아요. 표면적으로 펑펑 운다고 해서 다 슬픈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웃음 속에 숨겨진 슬픔의 이면과 역으로 느껴지는 감정들이 잘 묻어났던 인상 깊은 그림이었죠, 아직은 드라마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여운이 오래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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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 확실히 이서진은 다작을 하는 배우는 아니다. 이번 드라마에서도 2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쳐 출연을 결정했던 그에게서는 한 가지 작품을 하더라도 무언가를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뚜렷한 가치관과 목표 의식을 드러냈다.

    “2001년에 ‘그 여자의 집’을 촬영하고 나서 ‘다모’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동안 혼란기가 왔어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굉장히 불안했죠. ‘다모’를 할 때는 눈뜨고 나면 제 기사가 쏟아져 나오다가, 영화 촬영 때문에 잠깐 공백기를 가졌을 때 기사가 하나도 나오지 않으니까 이러다 잊혀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별의별 생각을 다했어요.”

    “어렵게 다모에 출연 결정을 하고 나서는 망설임 없이 연기자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 이후부터는 몇 개의 드라마와 영화를 찍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위해 완전히 준비를 마친 후 저의 진실된 모습을 쏟아 냈을 때 훨씬 좋은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2003년에는 ‘다모’, 2013년에는 ‘꽃보다 할배’가 잘되니까…. 가만 보면 10년마다 어떤 터닝 포인트가 있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럼 2023년에 그런 것이 또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그때까지 어떻게든 잘 버텨봐야죠.(웃음)”

    수려한 외모와 젠틀한 매너. 배우로서의 이서진은 늘 완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대중들은 만인의 오빠도 좋지만, 언젠가는 한 여자의 남편이 된 그의 모습도 상당히 궁금해 할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여전히 일에 열중하는 배우로서의 이서진을 보는데 만족해야할 것 같다.

    “집에 혼자 있고 일을 하다 보면 피곤해서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데, 쉴 때는 가끔 옆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은 들어요. 근데 또 누구를 만날 기회가 점점 줄어드니까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게 있어요.”

    “30대에는 그래도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또 40대가 되고 나니까 인생의 그림이 새롭게 그려지더라고요. 지금은 결혼이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아요.”

    “이상형은 무조건 밝은 사람이에요, 진지한 것을 워낙 싫어하니까…. 나이는 꼭 어리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에요. 나이가 많으면 친구처럼 지낼 수 있고, 어리면 나름대로의 귀여운 매력이 있을 것 같아요.”

    차가운 ‘뉴요커’ 데뷔 초반부터 그를 감싸고 있는 이미지는 어딘가 모르게 말을 붙이기가 어려울 것 같고,다소 시니컬한 모습으로 대표되는 면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보니, 그는 누구보다 편하고 유쾌한 면모가 돋보였던 인간 이서진 자체였다. 앞으로 드라마와 예능에서 활발한 활약을 펼칠 그의 다음 행보에 벌써부터 기대가 모아진다.

    “저는 제가 왜 차가운 이미지로 비춰지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렇게 보시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남자들은 친한 사람한테는 더 표현을 안하고 말도 장난스럽게 하는 편이고 그렇지 않나요?”

    “저는 정말 솔직하고 가식적인 것을 못 보는 성격이에요. 사랑을 할 때도 무슨 말을 하기보다는 그냥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팬들에게도 어떤 이미지로 비춰져야 한다는 그런 강박관념 같은 건 없어요. 배우는 더 평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어떤 역할이든 어울릴 수 있다고 봐요. 그렇게 친근한 면이 배우로서 오래갈 수 있는 비결인 것 같아요. 소박하고 소탈한 배우로 남고 싶어요."

    "아직 다음 작품을 구체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지만, 전문직 종사자나, 양면성이 있는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해요. 그때까지는 또 지금 출연하고 있는 예능프로그램만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