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관련 다큐의 정점을 잇는
    비탈리 만스키 감독의 '태양 아래'

     
    신준식  /뉴포커스 

  • “태양아래”는 러시아 출신의 비탈리 만스키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제목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껏 나온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 중 단연 최고라고 평가하고 싶다.

     북한 전체주의를 고문, 인권유린과 같은 특수한 상황으로 문제 제기한 것이 아니라 정권에 의한 주민들의 정신적 세뇌와 통제라는 일상적 지배의 강압을 통해 여지없이 고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양아래”에서는 북한이라면 누구나 먼저 떠올리는 공개처형, 정치범수용소와 같은 자극적인 내용이나 그 언급조차 전혀 없다.

     평양시에서 살고 있는 어느 한 10대 소녀가 북한의 아동 조직인 조선소년단에 입단하는 전후 과정의 작은 이야기를 담담히 전하고 있다. 오히려 그 어린 동심까지 체제 선전의 주인공으로 활용하려는 정권 차원의 온갖 개입과 연출을 모두 용인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다른 작품보다 더 강한 메시지의 힘을 가지는 것은 바로 북한정권과의 그 “타협” 속 진실이다.

     다큐멘터리는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평양 시민들의 평범한 아침으로 시작된다. 시민들보다 먼저 출근하여 거리를 흔들어 깨우는 당 정책 선전 차량, 스피커에서 울리는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와 혁명 군가, 도심 곳곳에 높이 걸린 붉은 색깔의 당과 수령 선전 구호들, 정권 선전 기념비들과 행사장들에 동원된 군중,,,그 모든 전체주의 풍경을 뒤로 하며 카메라가 클로즈업하는 주인공은 ‘리진미’란 이름을 가진 10대 소녀이다.

    주인공의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깊은 고뇌와 번민의 배경음악이 무거우면서도 애잔하게 들린다. 마치도 전체주의 그 시스템에 갇히 어른들의 무기력한 내면을 대신하는 듯하다.

     진미의 가슴에는 “금성학원”이라는 베지가 붙어있다. “금성학원”은 북한의 일반학교들과 달리 인민학교, 고등학교 구분의 학교가 아니다. 그 전(全) 과정을 한 교내에서 다 졸업할 수 있는 특수학원이어서 북한 최고위층이나 부자들의 자녀들만 입학할 수 있는 명문학교이다. 다큐멘터리 속 진미의 아버지가 의류공장 책임기사, 어머니는 콩우유공장 노동자로 설정돼 있는 점이 의아한 이유이기도 하다.

     진미의 금성학원 배움은 학원 입구의 김일성 대형벽화 앞에 줄을 서서 허리 숙여 깊은 인사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수령의 사랑은 전혀 따뜻하지가 않다. 교실 창유리에 두텁게 붙은 얼음, 라디에이터에 붙어 서로 언 손을 녹이는 아이들, 러시아 감독의 카메라가 오지 않았다면 애당초 교실의 온기도 없었을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다.

     선생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은 분명 러시아 감독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를 때려눕혔다는 김일성의 과장된 항일 업적, 그것도 아이들의 동심에 맞춰 김일성의 어린시절을 신격화하는 내용이다. 조명등은 있지만 모두 꺼져 있는 어둡고 텅 빈 학교 복도가 교실에서 새어 나오는 여선생의 목소리를 더 공허하게 울리도록 한다.

     다큐멘터리의 초반에 보여주는 진미 집안의 풍성한 아침식사 장면은 누가 봐도 서글프기만 하다. 이미 다 식은 밥상 앞에서 촬영의 타이밍과 미리 써 준 각본의 대사를 외우는 식구들, 자연스러움을 연출하기 위해 애쓰는 기관원들의 진땀을 카메라는 여과없이 담아낸다.

     거리의 정치행사장들에 동원된 평양시민들과 진미 집에서 벌어지는 꾸며진 사생활의 비교 장면은 안팎이 따로 없는 주민들의 조작되고 강요된 삶의 고발 같다. 다큐멘터리는 진미의 “최고 소원”인 조선소년단입단식 장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혁명의 대를 잇는 의미로 혁명원로들과 고령의 간부들이 아이들에게 노동당 깃발의 한끝이라는 붉은 소년단 넥타이를 매어준다. 그 장면에서 넥타이보다 더 섬뜩한 것은 아이들의 꿈을 “효자동”으로 왜곡하는 커다란 깃발 안의 문구이다.

     부모가 아니라 수령과 당에 먼저 효도를 해야 한다는 뜻에서 모든 북한 아이들에게 “효자동”이란 하나의 이름을 강요하고 있는 북한 정권이다. 아이들은 효도하고 어른들은 충성하는 수령 중심의 대가족 선전이 북한 노동당 선전부의 핵심정책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촬영에 동원된 기관원들은 진미의 소년단입단 소식이 부모 공장 노동자들에게까지 전해지는 경사가 되도록 축하쇼를 연출하기도 한다.  

    북한은 사회주의 동구권과 어떻게 다른가? 3대 세습 강권의 비결과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 질문에 이 다큐멘터리는 북한의 물리적 독재보다 감성독재를 통해 대답하고 있다.

     전체주의 복종을 위해 북한이 정권 차원에서 어떤 시스템을 만들고, 또 그 안에서 주민들에게 어떤 방식의 세뇌정치와 강요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 그 출발점인 10세 소녀 진미의 설정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에서 첫 화면의 진미는 10세 소녀의 해맑고 순진한 미소로 등장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선 자기도 이유를 좀처럼 알 수 없는 애타는 울음의 주인공으로 끝난다. 그 눈물은 자기 나이를 못살게 만드는 나쁜 어른들에 대한 무언의 항변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군대식으로 줄을 맞춰 행진해야만 하는 학교 운동장, 놀이터가 아닌 김씨 일가 선전의 무용과 노래 연습실에서 살아야만 하는 고단한 훈련, 김일성 생일날에 주는 탕과류 한 봉지를 받기 위해 뙤약볕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인내, 계속 감기는 두 눈꺼풀을 힘겹게 쳐들고 들어야만 하는 노병 할아버지의 미국놈 이기는 전쟁 이야기,,, 그 긴 과정을 거쳐 마침내 절정에 이르는 다큐멘터리의 결말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개인의 일상적 기대를 묻는 사소한 질문에도 전체주의 세뇌로 대답할 수밖에 없는 진미의 훈련된 말들이 역으로 북한 정권의 강요정치를 고발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감독과 북한의 10대 소녀가 나눈 대화, 그 마지막 장면을 글로 옮겨 본다.

     러시아 감독의 질문 "진미, 너 소년단원에 입단했는데 이제 자기 일상에 대해 무엇을 기대해요?"

     한동안의 침묵 끝에 힘겹게 입을 여는 진미 "소년단원이 되면 조직생활을 하게 됩니다. 조직생활을 하게 되면 잘못도 느껴지게 되고, 경애하는 원수님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느끼게 됩니다.”

     이 때부터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 진미를 위로하며 다시 질문하는 러시아 감독,

     "대신 좋은 것에 대해 생각해봐요”

     “네?”

     “좋은 것”

     “잘 모릅니다.”

     “전에 있었던 좋거나 기쁜 일 생각해봐요. 아니면 어떤 시를 생각해봐요,"

     10세 소녀에게 좋거나 기쁜 일이 과연 무엇일까? 그 대답은 뜻밖에도 조선소년단 입단선서이다. 아니 어쩌면 그 기억밖에 더 좋은 일이 없는 동심을 잃은 진미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위대한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세워주시고 위대한 김정일대원수님께서 빛내어주시었으며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영광스러운 조선소년단에 입단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대원수님들의 유훈과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가르치심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내어 나가는 사회주의조국의 믿음직한 후비대로 억세게 자라날 것을 소년단조직 앞에서 굳게 맹세합니다.”  
    [뉴포커스=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