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서 불 붙은 배신자 심판론, 흙수저 일꾼과 철새 정치인 맞대결 '이목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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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신자 심판론> 마침내 불이 붙었다.

    4.13 국회의원 총선이 9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서울 용산 지역의 민심(民心)이 크게 요동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새누리당 공천에서 배제되자마자 탈당한 뒤 초고속으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진영 후보에 대한 심판론이 거세다.

    현 정부에서 장관까지 지냈으면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을 두 번이나 배신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진영 후보. 씁쓸한 배신의 뒷맛이다.

    새누리당 황춘자 후보의 역습(逆襲)이 시작된 셈이다.

    <문화일보>는 4일 서울 용산 지역구에서 새누리당 황춘자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진영 후보를 추월한 데 이어 격차를 오차범위 이상으로 늘렸다고 보도했다. 

    문화일보가 최근 여론조사기관 포커스컴퍼니에 의뢰해 이 지역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유선 전화면접을 실시한 결과, 황춘자 후보(40.0%)는 진영 후보(30.8%)를 상대로 9.2%p 차로 앞섰다.

    황춘자 후보는 초반 열세를 뒤집고 적극적 투표층에서도 39.3%를 얻어 진영 후보(34.3%)를 앞질렀다.

    인지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던 황춘자 후보가 역전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용산이 전통적인 여당 텃밭인 데다, 급격하게 정치적 입장을 선회한 진영 후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문화일보 측은 현역인 진영 후보의 초반우세가 뒤집혀 새누리당 황춘자 후보의 '확실우세'라고 강조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1~2일 한국전화번호부의 인명편 전수(全數) DB 또는 패널에서 성·연령·지역별로 표본을 비례 할당 추출해 지역구별로 만 19세 이상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유선 전화면접 조사 방식으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두 후보가 걸어온 길이 180도 반대라는 점이다.

     

  • ▲ 현 정부에서 장관까지 지냈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두번이나 배신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진영 후보. ⓒ청와대 제공
    ▲ 현 정부에서 장관까지 지냈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두번이나 배신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진영 후보. ⓒ청와대 제공

     

    <흙수저 일꾼 대(對) 철새 정치인>

    여야의 대결을 넘어, 두 후보의 정치적 배경에 크게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진영 후보는 당선을 위해 양지(陽地)만을 좇는 철새 정치의 전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는 판사 출신으로 1997년 15대 대선 때 이회창 총재 특보로 정치에 입문했다. 진영 후보의 부인인 정미영씨는 이회창 총재의 주치의였다. 박 대통령이 첫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2004~ 2005년 비서실장을 지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냈다. 새누리당에서만 3번의 국회의원을 지냈다. 20년 가까이 새누리당의 바람막이 안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런 진영 후보가 당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이유만으로 '친북(親北) 전체주의 추종' 논란을 겪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으로 옮겨가 전략공천을 받았다. 금배지를 한 번 더 달기 위해 앞뒤를 가리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라 할 수 있다.

    진영 후보는 새누리당을 탈당하면서, 마지막까지 "국민의 편에 섰다가 쓰라린 보복을 당했다"며 내부에 총질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전북 출신인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냉큼 손을 잡았다.

     

  • ▲ 새누리당 용산구 황춘자 후보가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새마을금고에서 열린 새마을금고 이사장 취임식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 새누리당 용산구 황춘자 후보가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새마을금고에서 열린 새마을금고 이사장 취임식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반면, 황춘자 후보는 어려운 배경을 딛고 일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여성 리더로 성장한 흙수저 성공사례의 대표적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는 평범한 시골 집안의 10남매 중 6번째, 농촌에서 1953년 휴전둥이로 태어났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명문대 출신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여군에 자원입대해 군복무를 시작했다. 하사관으로 시작해 장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이후 공직자로서 40년을 살았다. 10여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서울메트로에 입사한지 25년 만에 공기업 최초 여성임원이 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경희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를 취득해 행정전문가로 거듭났다.

    황춘자 후보는 워킹맘이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매일 아침 평상시보다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는 큰 바구니에 하루 동안 아기가 쓸 기저귀, 젖병, 손수건 등 필요한 물건들을 빼곡히 챙겨 담고 같은 단지의 14층으로 향했다"고 했다.

    또 "아이를 떼놓고 그 집 문을 나서 회사로 가는 벌걸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천근만근이라는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표현이었구나 싶었다"고 회고했다. "회사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지하철이며 택시며 가장 빠르다고 생각되는 교통수단을 아무리 갈아타도 집까지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고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탓에 황춘자 후보는 여성근로자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사관리 개선에도 기여하면서 여성경제활동과 대표성 강화에도 힘써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