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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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 대배우 로버트 드 니로보다 얼굴에 점이 하나 더 있다는 특징이 있다. 내년이면 50세인 그에게 일컬어지는 수식은 ‘요정’이라는 왠지 상응하지 못할 단어다. 하지만 여기에 ‘천만’이 붙으니 더 없이 절묘한 별명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배우 오달수의 얘기다. ‘천만배우’인 그가 이번에는 ‘대배우’로 도약하려 한다. 영화 ‘대배우’(감독 석민우)에서 오달수는 대배우를 꿈꾸는 20년차 무명 연극배우 장성필로 분했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는 점에서 일단 주목할 만한 ‘대배우’는 무려 오달수의 첫 주연작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 눈여겨 볼만하다. 뉴데일리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대배우를 꿈꿨던 오달수의 숨겨진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대배우’가 제 이야기와 50프로 이상은 닮은 것 같아요. 과거 생각도 나고. 언론시사회 때 처음으로 영화를 봤는데, 그 전까지는 ‘나도 마음에 안 들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머리가 아프고 걱정도 많이 됐어요. 처음 시나리오의 느낌보다는 결과물로 접해보니 터치가 가볍더라고요. 영화보고 다음날 머리가 맑아지고 부담감도 훨씬 줄었어요.”

    지금껏 유쾌한 조연으로 극의 감초 역할만을 해오다 ‘대배우’를 통해 처음 주연을 맡았다는 점이 오달수에게는 꽤 큰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 사실이다. “주연을 해보니 작품 전체를 보게 되더라고요. 감독이 총괄하지만, 확실히 주연으로서 책임감이 생겼어요. 영화를 촬영하다 황정민을 한 번 만났을 때, 첫 마디로 ‘주인공하기 힘들지?’라던데 죽겠더라고요. ‘정민아 주연이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니?’라고 물으니 ‘해봐 그냥’하더라고요.(웃음)”라며 주연으로서의 부담감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오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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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박쥐’를 촬영할 때 석민우 감독이 현장에서 스윽 지나가며 ‘형님, 제가 시나리오 들고 찾아가면 입봉 때 출연해 주시는 거예요?’라더라고요. 잠깐 한 약속이지만 기억에 남았죠. 나중에 감독이 시나리오를 들고 왔고, 저는 설명만 듣고 다 읽어보지도 않고 ‘같이 갑시다’ 했어요. 세월이 두터운 약속이 되어 깨지지 않는 약속이 된 거죠. 시나리오 선택 기준은 간단합니다. 내용을 보고 내가 하고 싶은가 하고 싶지 않은가, 내 마음을 격하게 흔드는가가 중요하죠. 해당 작품에 대한 감독의 철학과 생각도 봐요. 나를 견인해 줄 동료배우들이 누군지도 중요하고요.”

    ‘대배우’와의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석민우 감독이 당시 조감독으로 몸 담았던 바라 영화의 모티브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대배우’는 장성필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박찬욱 감독에 대한 찬사가 담겨있기도 하다. 영화 속 세계적인 감독 깐느박(이경영 분)의 등장과 그의 작품 ‘악마의 피’가 다뤄진다는 점이 바로 그것. 또 하나의 흥미로운 부분은 극중 국민배우 설강식(윤제문 분)의 등장이다. 왠지 낯설지 않은 이 이름은 배우 설경구과 송강호, 최민식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따 온 인물이다. 오마주 영화의 재미요소를 내포하면서도 영화는 묵직한 메시지를 잃지 않는다.

    “삶이라는 게 복잡다단한 것 같지만 아주 단순하거든요. ‘대배우’의 메시지는 결국 단순해요. ‘내가 외로울 때 남는 건 가족이다’라는 거죠. 제 주위에 가족이 없다면 일 할 때 힘도 나지 않을 거고 재미도 느끼지 못할 거예요. 또 추억이라는 게, 좋은 일들은 어제 일처럼 금방 잊혀 지기도 하는데, 괴로웠던 일들은 잘 안 잊혀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행복한 기억만이 추억이 아닌 것 같아요. 영화를 촬영하며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던 시절이 생각났어요. 토큰 들고 걸어갔다가 첫 차 타고 돌아오고. 고생했던 일들이 생각났죠. 너무나도 절실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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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살 때 연기를 시작했어요. 처음 부산 극단에서 활동을 하다 ‘남자충동’이란 작품을 했는데 히트했죠. 그리곤 29살 때쯤인 97년에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 대학로에서 생활했어요. 처음 무대를 서고선 다짐 했죠. ‘다시는 연극을 안 한다’고. 사실 연극을 전공하지 않아서 무대에 서 있는 게 만만한 건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힘들고 죽는 줄 알았어요. 한 달 동안 공연하고서 ‘다시 이걸 하면 내가 개다 개’라고까지 생각했다니깐요. 하지만 ‘오구’라는 작품이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이 된 후 독일, 일본, 러시아에서까지 공연을 해보고서는 보람을 느꼈죠.”

    능청연기의 달인 오달수에게도 혹독한 신인 시절이 있었다. 누구나 도전은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버티기 힘든 연극판. 적응하기 벅찬 상황임에도 그는 ‘대배우’ 장성필과 같이 ‘꿈’과 ‘희망’, 그리고 ‘희열’로 긴 세월을 버텨 지금의 ‘국민배우’까지 이르렀다. “내 마음을 관객들이 알아줄 때 가장 희열을 느껴요. ‘이럴 때 웃어주세요’ ‘이럴 때 울어주세요’를 알아줄 때. 아주 적극적으로 설득해야하는 거죠. 남을 설득하기란 어렵거든요.”라고 그만이 펼칠 수 있는 힘있는 연기력의 원천을 밝힌다.

    “조연과 주연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죠. 조연은 임팩트 있게 치고 빠지는 매력이 있었는데, 주연을 해보니 극을 이끌어 가야되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커지더라고요. 대신 연기 호흡을 길게 이어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한 영화에서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아주 디테일하게 계산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어떤 신에서는 조연을 위해 빠져주는 계산을 하기도 하는데 재미가 쏠쏠하더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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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 경력 28년만에 주연자리를 꿰찬 오달수는 이제야 꿈을 이룬 듯 하지만 애칭까지 부여받으며 ‘대중의 인정’을 받은 순간, 이미 소기의 꿈은 이뤄진 것인지도 모른다. ‘대배우’에 임하기 전, 이미 대배우를 달성한 오달수는 마지막으로 자신처럼 치열한 꿈을 꾸는 모든 이들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보이지 않는 앞을 향해 달린다는 게 참 우울하죠. 하지만 힘든 건 나중에 분명 웃으면서 이야기할 때가 오거든요. 지금 힘들다고 그걸 깨버리면 백기를 드는 거죠.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을 누리길 바랍니다. 빚을 내서라도 뒷일 걱정 안하고 여행을 갈 줄 아는 배짱도 가지고. 한 가지 목표를 정했으면 그 곳을 향해 아주 성실하고 끈질기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인정받게 돼있으니 웅크러들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미친놈처럼 웃고 즐겁게 살 필요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