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예천 경계선에 도청 들어서는데 정작 선거구는 '따로국밥'
  • ▲ 김세환 선거구획정위 사무국장(사진 오른쪽)이 28일 오전 11시, 국회본청에 위치한 국회의장실에서 이명우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에서 선거구획정안을 전달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김세환 선거구획정위 사무국장(사진 오른쪽)이 28일 오전 11시, 국회본청에 위치한 국회의장실에서 이명우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에서 선거구획정안을 전달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마침내 선거구획정안을 의결하고 이를 국회 의안과에 전달했다. 이로써 헌법재판소의 기존 선거구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전국의 모든 국회의원 선거구가 없어지는 위헌적 상황이 59일 만에 종식될 실마리가 풀리게 됐다.

    다만 강원도는 헌정 사상 초유의 5개 시·군이 통합되는 대형 선거구가 2개나 등장했고, 경상북도는 안동시와 예천군 사이에 신도청이 들어서는 흐름과 반대로 예천이 문경·영주 선거구와 통합되게 돼 지역의 불만 여론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획정위는 28일 오전 10시 전체회의를 열고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을 내용으로 하는 획정안을 의결했다. 국회 의안과에 전달된 획정위의 획정안은 이날 저녁 10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빠르면 29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부산 지역에서는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정의화 국회의장의 지역구인 부산 중·동구가 공중 분해됐다. 중구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의 지역구인 영도구에 통합돼 중·영도구로, 동구는 유기준 전 해수부장관의 지역구인 서구에 통합돼 동·서구로 거듭나게 됐다.

    충청남도에서는 역시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지역구인 부여·청양이 사라지게 됐다. 이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대표비서실장의 지역구인 공주와 통합돼 공주·부여·청양으로 재편된다.

    전라북도는 정치권과 언론에서 예상한 대로의 선거구 개편이 이뤄졌다. 김제·완주와 고창·부안 선거구 등이 분할되면서 정읍·고창, 남원·임실·순창, 김제·부안, 완주·무주·진안·장수 등으로 개편됐다.

    기존 동부 산악권(무주·진안·장수) 3군의 인구를 모두 합친 것보다 인구가 많은 완주군이 새로이 선거구에 통합되면서 정치 지형의 대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또, 김제·부안에서는 나란히 4선에 도전하는 더민주 최규성 의원과 김춘진 의원의 공천 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라남도는 전통적인 생활권 경계에 따라 영산강을 기준으로 선거구를 나눠야 한다는 도민들의 여론이 높았으나, 결국 영산강을 가로질러 영암군이 무안·신안에 통합되게 됐다. 영암을 떼준 장흥·강진은 이웃한 고흥·보성과 통합된다.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현역 의원(황주홍·김승남) 2명의 지역구가 통합되게 돼 불만을 가지게 될 결과다.

    경상남도는 새누리당 조현룡 전 의원의 유죄 확정 판결으로 공석이 된 의령·함안·합천 선거구가 공중분해됐다. 의령군과 함안군은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의 지역구인 밀양·창녕과 통합되며 합천군은 새누리당 신성범 의원의 지역구인 산청·함양·거창에 붙게 된다.

    인구 하한선도 넘고 9대 총선 이후로 단일 선거구를 유지해왔던 의령·함안·합천 선거구가 공중분해된 것은, 오롯이 지역구 국회의원의 유죄 확정 판결에 따른 공석 사태가 가장 주요한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을 잘못 뽑으면 자신들의 의사를 대변할 선거구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중요한 교훈이자 선례를 남기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강원도와 경상북도다.

    강원도의 경우 농어촌·지방 주권지키기 의원모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던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의 지역구인 홍천·횡성이 분해된다. 횡성군은 태백·영월·평창·정선에 붙어 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으로 거듭나고, 홍천군은 철원·화천·양구·인제와 통합돼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 선거구가 된다.

    이처럼 헌정 사상 최초로 5개 시·군이 통합되는 초대형 국회의원 선거구가 등장함에 따라 과연 이것이 정상적으로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하는 환경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지나치게 지역구가 광범위해 지역구민들의 민의를 제대로 대변할 수 없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단일 선거구에 포함된 시·군의 이해 관계 자체가 제각각이라 민의의 대변 자체가 어려운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또, 선거구가 지나치게 광대해 재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고서는 선거 활동과 지역구 관리 자체가 어려워 대의대표가 되는 것 자체가 진입 장벽이 세워졌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특히 강원도에만 이러한 5개 시·군 통합 선거구가 2개 생김에 따라 강원 홀대 논란이 불붙는 등 지역 여론의 악화는 불보듯 뻔한 상황이 됐다.

    경상북도의 선거구 획정도 문제다. 지역구민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주시와 문경시·예천군이 통합돼 하나의 선거구가 됐기 때문이다.

    당초 지역 여론은 안동시와 예천군의 경계 지역에 경북의 신도청이 들어서는 것을 감안해 안동·예천을 단일 선거구로 통합하고, 문경은 생활권과 문화권이 같은 인접 상주와 통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었다. 여론조사 또한 이와 같은 결과로 나왔으며, 교통·지세 등을 감안해 중앙선관위가 당초 제시한 획정안도 이러한 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자신의 선거구가 분할되는 것을 면치 못하게 되는 새누리당의 몇몇 특정 의원들이 선거구 획정위원들을 상대로 강력하게 민원을 제기한 결과 경북의 선거구획정안이 뒤엎어지게 됐다는 말이 나온다.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영주가 문경·예천과 통합되고, 당초 분해될 예정이었던 군위·의성·청송은 상주와 합쳐져 살아남게 됐다. 이와 관련해, 안동·예천통합추진위원회 등 지역사회의 시민단체들은 선거구획정위원들을 허위사실 유포와 업무 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것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