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 질질질, 언론에는 휘청… 무슨 낯으로 부상 장병 만날까
  • 시작부터 이상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상황이 한둘이 아니었다.

    8월25일 새벽 2시, 야밤에 터진 남북 고위급 협상 결과가 알려지기까지 국민들은 몇 번이나 가슴을 졸여야 했다.

    지난 4일 파주 GP 인근 철책에서 벌어진 우리 군 하사 2명을 불구로 살게 만든 북한의 지뢰 도발.

    그 이후 우리 정부의 대북 확성기 재개, 북한의 연천 확성기 포격, 우리 군의 반격. 그리고 북한이 다시 내놓은 48시간이라는 최후통첩.

    최후통첩 시간을 불과 2시간 남겨놓은 상황에서 시작된 남북 고위급 회담. 그러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40여시간에 가깝게 지루하게 이어진 회담 과정. 여기에 회담 내내 벌어진 북한의 무력 시위.

    우리 국민들은 이번 사태를 겪으며 마음은 졸였지만, 이제는 북한의 반복된 도발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의지만은 확고했다.

    "군복 다려놨다. 불러만 주십시오"라고 외친 예비역들과 "국민 여러분의 애국심을 믿고 북한의 도발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역설했던 박근혜 대통령도 한마음이었다.


  • # 의문 1

    낮밤없는 회담 과정, 왜 그렇게 까지 해야 했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 총정치국장이 36시간동안 끌어온 협상과정은 국민들을 기대감에 들뜨게 하기 충분했다.

    지뢰 도발 이후 우리 정부가 단행한 강력한 확성기 대응은 김양건 북한 대남 비서가 유화적 제스쳐를 취하고 회담까지 먼저 제안하게 했다. 우리 측의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참여 요구를 북측이 이례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긍정적이었다.

    이례적인 '대북갑질'에 우리 국민들은 남북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고 가는 것으로 착각했다. 밤낮없는 협상 과정도, 성과를 얻지 못하면 매우 곤란해진다는 황병서를 위한 우리의 배려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회담 결과를 보면 우리가 배려한 것이 아닌 질질 끌려다닌 꼴이라 볼 수 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시간은 우리 편이었다. 굳이 밤낮없이 회담에 응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확성기를 끄는데 혈안이 된 북한을 향해 책임있는 사과와 확실한 재발방지를 요구한 뒤 북한의 답변만 받아내면 되는 테이블이었다.

    김관진 실장이 판문점 평화의집에 갇혀 있는 동안 모든 협상 과정에 대한 정보는 통제됐고, 이는 국민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기나긴 협상과 통제된 정보는 여러가지 루머를 만들어냈고, 이는 북한이 노린 화전양면술의 전략의 일환이었다.

    차라리 1차 협상에서 우리 측의 요구를 강력하게 통보한 뒤, 2차 협상은 응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협상에서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성과(사과와 재발방지)를 얻어내겠다는 우리 측의 과욕이 북한 대표단에게는 오히려 더 절박하게 비쳐졌을 공산이 크다.


    # 의문 2

    박 대통령의 대북 원칙론 고수 발언
    이후 불과 14시간만에 벌어진 미진한 협상타결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오전 10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북 협상에 대한 원칙론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매번 반복돼온 도발과 불안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시각,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는 김관진 실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사과 수위를 두고 치열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여기에 대고 '확실한 사과'와 '믿을 수 있는 재발방지 약속'을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협상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의 의지는 반영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뢰도발이란 '사건'은 지뢰폭발이란 '사고'로 둔갑해 있었다. 확실한 재발방지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란 애매모한 조건부 약속으로 변질됐다.

    유례없는 대북 협상 주도권을 쥔 테이블에서 이상하리만치 끌려다닌 늬앙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비정상적인 사태를 규정할 정확한 요건도 없는데다, 언제든지 북한이 다시 도발할 때 또다시 도발의 비정상성을 규명해야 하는 또다른 협상의 여지를 남긴 셈이다.

    특히 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천명됐음에도 4일을 끌어온 협상이 당일 밤 극적으로 매듭지어졌다는 것은 과연 대통령의 의지가 협상에 최대한 반영됐는지에 의문을 남긴다.

    박 대통령이 계속 강조한 '도발-협상-보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국민을 향한 약속은 여전히 담보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이 약속했다'는 믿기 어려운 우리만의 자위(自慰)로 전락한 것이다.

     

  • ▲ 우리 측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북측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남북고위급접촉을 시작하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통일부 사진공동취재단
    ▲ 우리 측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북측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남북고위급접촉을 시작하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통일부 사진공동취재단

     

    # 의문 3

    새벽 2시 급작스러운 회담 결과 발표, 대체 김관진은 왜?

    북한이 던진 48시간이라는 최후통첩 시간이 임박한 22일 오후 3시.
    북한이 예고한 '오후 5시'를 불과 2시간 앞둔 시각.

    청와대는 북한이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제안했고 회담이 성사됐다고 긴급 발표했다.

    국민의 불안감이 극에 달한 하루였지만, 청와대는 전날 받은 북한의 회담 요청 이후 일정을 조정하고 공식 발표를 하는데까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엄중한 남북 안보 문제와 외교 일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위다.

    하지만 청와대에 따르면 25일 0시55분에 종료된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 이후 결과가 김관진 브리핑으로 이어진 시각은 불과 회담 종료 한시간 뒤인 새벽 2시였다.

    22일 느긋했던 남북 회담 성사 브리핑에 비해 알맹이 없는 회담 결과 브리핑이 그토록 급박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찍힌다.

    야당 고위 관계자는 "언론 등 각종 매체에서 회담 결과에 대한 분석.비판 등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절묘한 전략이 아닌가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25일 조간 매체들은 그야말로 전쟁을 치렀다. 일반적으로 조간 신문들은 자정쯤에는 신문을 인쇄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기사 작성이나 보도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없다.

    때문에 대부분 조간 신문들은 새벽 2시 발표된 김관진 실장의 발표를 싣기 위해 부리나케 인쇄소를 달려가 헤드라인 기사를 바꾸는 해프닝을 겪었다. 시간이 부족한 언론사들이 김관진 실장이 불러주는대로 앵무새처럼 활자를 박아넣을 겨를도 없었다는 얘기다.

    청와대를 담당하는 국내 유력 언론 A기자는 "이번 회담 결과 브리핑에서 비판적인 요소를 감지 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비판 기사는 충분한 근거과 논리를 마련하기 위한 취재와 시간이 필요하다"며 "어제 그 상황에서는 도저히 그럴 여력이 없었다"고 했다.

    실제 이날 대부분의 조간은 남북 협상결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그쳤지만, 석간 신문들은 비판적 부분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언론의 비판적 기사를 피하기 위해 비판 요소가 있는 '인사'나 '정책' 발표를 금요일에 발표하는 것은 홍보의 한 전략으로 활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집중 취재가 어렵고, 국민의 관심도가 떨어지는 토요일 기사로 보도되게 유도해 비판을 피하겠다는 '꼼수'인데,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이를 새벽 2시에 발표하는 '한발 더 나간 꼼수'를 쓴 셈이다.


    # 의문 4

    청와대의 계속된 여론 눈치보기, 진짜 눈치봐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청와대는 남북 협상 발표에 따른 여론의 움직임에 극도로 신경쓰는 눈치다.

    청와대가 이날 오전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전달된 박 대통령의 메시지에 '북한이 지뢰 도발 행위에 유감을 표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것'을 담아내는데 총력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국민들이 보기에도 지뢰도발을 지뢰폭발로 규정한 점이나, 믿을 수 있는 재발방지를 약속받지 못했다는 비판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북 전문가인 이동복 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는 '조갑제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한 이틀 정도만 더 버텼다면 우리가 원하는 내용보다 진전된 내용이 포함된 합의문을 도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절박한 북한 대표단의 입장을 이용하지 못하고 어설픈 '배려'로 아쉬운 협상 결과를 얻었다는 얘기다.

    이동복 전 대표는 "재발 방지까지 북한이 약속하도록 했어야 한다"며 "우리가 북한을 조금 빨리 놔줬다"고 아쉬워 했다.

    결국 김관진 실장과 박근혜 정부가 유리한 입장에서도 조급한 협상 마인드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궁금해진다.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북한과의 협상이 쉽지 않았음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국가간의 '외교'에서 '유감'이란 표현이 곧 사과라는 포괄적 해석도 응당 공감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 정부가 스스로 자평할 부분은 아니다.

    김관진 실장이 북한 김정은의 눈치를 본건지, 전승절 참석을 앞둔 박 대통령이 중국의 눈치를 본건지, 그것도 아니면 길어지는 협상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굳건한 의지가 꺽일까 두려워 했는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최소한 박 대통령과 김관진 실장은 이번 협상에서 꽃다운 나이에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하는 두 하사의 눈치를 봤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