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사과 받아내겠다는 朴대통령 의지, '관료적 시각' 참모들이 꺾어버린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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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의 가장 큰 문제는 참모들이었다.

    남북 고위급 접촉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대표단에 두 차례나 철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접촉이 시작된 지난 22일 있었던 일이다. 우리 측은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에 대한 사과를 북한 대표단에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러나 황병서와 김양건은 한사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그러자 CCTV를 통해 협상 상황을 지켜보던 박근혜 대통령이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대화 중단하고) 철수하라고 하세요."

    여권 핵심 관계자가 전한 당시 상황에 따르면, 이번 협상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주의는 일관되게 흐르고 있었다. 

    '사과 없이는 타협도 없다'는 대명제(大命題) 하에 박 대통령은 회담 기간 내내 새벽까지 협상 내용을 챙기며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협상이 진행되던 중이던 24일에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이번 회담의 성격은 무엇보다 현 사태를 야기한 북한의 지뢰도발을 비롯한 도발행위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가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매번 반복돼온 도발과 불안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확실한 사과와 재발방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차, 3차 협상의 여지를 남기더라도 사과만큼은 분명히 받아내야 한다는 결의(決意)였다.

    하지만 참모들의 생각은 박근혜 대통령과 사뭇 다른 듯 했다.

    박 대통령의 '철수 지시'에 이병기 비서실장과 김관진 안보실장은 "북측이 아직 의지가 있는 것 같으니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며 철수를 만류하고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날인 23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측의 뻔뻔한 태도에 격한 반응을 보이며 철수를 지시했다. 그러나 이 때에도 참모들의 만류로 실제 협상팀이 판문점에서 철수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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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모들의 철수 만류는 결국 '악수(惡手)'가 됐다.

    뚜렷한 사과도 없었고, 재발방지에 대한 확약도 없었다.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는 내용이 사실상 협상의 끝이다. 결과적으로 "미진한 협상이 아니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끝까지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를, '관료적 시각'에 얽매여 있는 참모들이 꺾어버린 셈이다.

    청와대는 26일 관련 내용이 알려지자 "전혀 사실과 다른 얘기"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청와대 안팎에서는 여전히 비슷한 내용의 발언이 회자되고 있다.

    물론 큰 틀에서의 협상 결과는 성공적이다. 하지만 면면을 뜯어보면, 우리 정부가 협상 내내 북한에 끌려다닌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앞선다.

    대북(對北) 전문가인 이동복 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는 "우리가 한 이틀 정도만 더 버텼다면 우리가 원하는 내용보다 진전된 내용이 포함된 합의문을 도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참모들이 절박한 북한 대표단의 입장을 이용하지 못하고, '어설픈 배려'로 아쉬운 협상 결과만 얻었다는 얘기다.

    이동복 전 대표는 또 "재발 방지까지 북한이 약속하도록 했어야 하며 우리가 북한을 조금 빨리 놔줬다"고 아쉬워 했다.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도 "(우리 측이) 좀 더 치열하게 협상의 '갑(甲)'으로 현장을 주도했더라면, 휴전선 11곳에 펼쳐 있는 확성기 수를 50% 까지 줄여주겠다는 양적 감소 방안을 지렛대로 사용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미련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6.25 동란을 마무리 짓는 정전회담에 유엔(UN) 군 수석대표로 참석해 10개월 간 협상을 이끌었던 조이(C. Turner Joy) 제독은 당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압축해 설명했다.

    "(공산주의자는) 쟁취할 수 없는 것을 협상을 통해 얻으려 하고, 전쟁의 패배를 협상을 통해 얻으려 한다." <How Communists Negotiate, 1955>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던 김관진 안보실장이 북한의 눈치를 본 건지, 청와대에서 상황보고를 받던 이병기 비서실장이 여론의 눈치를 본 건지, 길어지는 협상 탓에 한시라도 빨리 상황을 종료하고 싶어하는 고위관료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이번 협상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꽃다운 나이에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하는 두 하사의 눈치를 봤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울러 '유감 표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근거없는 사건"이라며 25일 북한에 돌아가자마자 지뢰 도발을 재차 부인한 황병서 총정치국장이다. '부글부글' 끓는 국민들의 소리가 들린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대로 매번 반복돼온 도발과 불안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확실한 사과와 재발방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참모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단호한 신념을 가로막았다. 북한에 본때를 보여줄 기회를 걷어 차버렸다.

    심히 걱정된다. 앞으로 열릴 남북 당국회담에서 정부가 '5·24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계' 등 우리에게 득(得) 될 것 없는 북한의 요구를 '덜컥' 들어줄지 모른다는 우려가 앞선다. 청와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입에선 그저 '답답한' 한숨만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