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상적 사태' 포함은 큰 성과

    '善한 평화'가 아닌 '强한 평화'가 궁극엔 국가와 개인의 명운도 지켜준다는 진리 확인.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 북한 전 통전부 간부
 
이번 공동보도문을 통해 남한이 획득한 영구적인 가치가 있다.  
북한의 '유감'보다 '비정상적 사태'란 문구이다.
이는 군사도발은 물론 북한의 모든 비정상적 행위를 대북방송으로 제압하거나 길들일 수 있는합법적 근거를 공개 문서화한 셈이다. 

즉 과거 박왕자씨 피살사건이나 개성공단 폐쇄협박처럼
우리 민간인을 향한 비정상적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대북방송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분명한 지지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북한의 이념통치는 크게 수령 신격화와 남한에 대한 주적교양으로 구성돼 있다. 만약 수령께 충성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배신의 원수로 처단하겠다고 그어놓은 북한 내부의 분단 휴전선인 것이다. 그 체제연명을 위해 북한은 기어이 다시 도발할 수밖에 없는 고약한 체질이다. 

그래서 '비정상적 사태'란 문구에 라선형으로 집약시킨 이번 대북방송의 잠정 중단 모양은 언제든 즉시 거세게 다시 튕겨 일어날 수 있는 용수철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 우리 정부가 지금부터 차곡차곡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전연지역 대북심리전방송이 단순히 군 심리전 개념이 아닌 총체적인 분단 관리 개념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새 용어부터 미리 생각해 둬야 한다. '통일방송' 내지 '평화의 방송'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합의된 공동보도문이어서 북한이 약속을 뒤집으면
그 책임을 추궁하는 압박의 의미로 탄생시키면 충분히 영구고착될 것같다.

다음은 단계화 전략이다. 그 첫 걸음은 이번 공동보도문 1항의 실행 주도권이다. 빠른 시일 내에 서울이나 평양에서 당국회담을 개최하여 여러 분야에 걸쳐 대화와 협상을 진행하자고 한 것만큼 그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가 원하던 것들을 과감히 제안해야 한다. 

북한이 수용하면 좋은 일이요, 거부해도 상관없다. 남한 주도의 평화 피로감이 쌓일수록 북한 권력층은 체제불안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그걸 만회하기 위해 지금껏 내부결속 충전용으로 온갖 도발을 반복해 왔는데 이제는 비굴한 정치꾼들이 항상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던 한심한 한국이 아니다. 이번 고위급회담을 통해 온 국민, 아니 전세계가 직접 눈으로 본 대북심리전 핵폭탄을 대한민국이 보유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듯 평화의 단계를 과감한 제안과 실행 압박으로 계속 격상시키면 가진 것이란 선군정치밖에 없는 북한은 또다시 물리적 억제력을 운운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우리는 고작 전원 스위치 하나로 평화의 더 큰 양보를 또다시 추가로 얻어낼 수 있다.  

이번 남북고위급회담 공동보도문에서 크게 아쉬웠던 점은 우리 정부가 북한의 '사죄'대신 '유감'이란 표현을 허용한 점이다. 처음부터 김정은 최고사령관, 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호 명의로 된 구체적 명시의 ‘최고사죄’로 압박하여 북측 명시의 ‘일반사죄’로 양보해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전쟁하겠다면서도 전쟁에 반드시 있어야 될 군 최고 대표자인 황병서를 남한에 보낼 만큼 다급했던 북한이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중국의 야심찬 전승 열병식을 앞두고 잘못 선택한 북한의 전쟁선포 시간이 남한에는 분초마다 정치외교의 귀한 이익이었는데도 말이다. 

어차피 저들이 뱉어놓은 48시간에 쫓기던 북한인데 한숨 자고 내일 만나자고 해도 될 남한의 여유를 나흘간의 마라톤회담으로 북한에 조금씩 빼앗긴 결과가 아닌가 싶다. 

또한 개인적으로 불필요했다고 느껴졌던 조항은 제4항이다.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해제하기로 했다는 내용인데 그 4항이 공동보도문 전체의 전제로 역이용될 가능성이 있어서이다. 

북한이 유감표명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치 준전시 상태 해제 조건으로 대북심리전 방송이 굴복해서 숨 멎은 것처럼 북한내부 선전용의 근거가 될 소지가 크다. 2항에서 북한이 고개를 숙였는데 굳이 준전시 상태 해제를 문서화할 필요까지 있었나 싶다. 

5항인 이산자가족 상봉준비를 위한 실무접촉이나 6항인 민간교류 활성화는 여러 측면에서 생산성이 있다고 본다. 북한의 '유감'을 넘어 평화의 양보까지 덤으로 받아냈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차후 '비정상적 사태'를 추궁하고 대응할 수 있는 우리 주도의 넓은 영역을 그려놓았다고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번 남북고위급회담 공동보도문의 최고성과는 우리 국민에게 보여준 평화의 자신심이라고 본다. 선한 평화가 아니라 강한 평화가 궁극엔 국가와 개인의 명운도 지켜준다는 너무도 당연한 그 진리의 과시였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