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로부터 '선거중립의무 위배' 인정된 盧 감쌌던 文 "제눈의 들보 못보나"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특정인에 대한 심판을 요구한 것은 선거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주장 자체는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견해이지만,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열우당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 발언으로 헌법재판소에서 공직선거법상 선거중립의무 위배 사실이 인정됐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변호했던 문재인 대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특정인에 대한 심판을 요구하고 나서는 것은 선거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며 "박 대통령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하게 구별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여당의 원내사령탑이 경제살리기에 어떤 협조를 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라며 "당선된 뒤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을 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정치권을 파국으로 이끌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사태를 언급한 참석자는 문재인 대표만은 아니었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청와대와 여당의 권력 투쟁이라는 막장 드라마는 종영하도록 하고 민생에 올인하자"고 했고, 오영식 최고위원은 "대통령의 엄포에 화들짝 놀라 원내대표 사퇴를 운운하며 끝모를 권력투쟁을 벌이는 여당의 모습에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다"고 했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1971년 10월 2일 김성곤 재정위원장·김진만 원내총무·백남억 정책위의장·길재호 사무총장 등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공화당의 '4인방'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 오치성 내무장관의 해임건의안을 가결시켰던 10·2 항명까지 거론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공박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김성곤 전 의원 등을 중앙정보부를 시켜서 콧수염을 뽑아버린 사건이 있었다"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것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은 다 주장할 수 있어도 문재인 대표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지적이다.

  • ▲ 공직선거법상 선거중립의무 위배를 이유로 탄핵 소추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 간사를 맡았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004년 4월 2일 2차 변론일 당시 헌법재판소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공직선거법상 선거중립의무 위배를 이유로 탄핵 소추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 간사를 맡았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004년 4월 2일 2차 변론일 당시 헌법재판소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문재인 대표는 지난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거중립의무 위배를 이유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자, 변호를 자처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표는 당시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고 있었는데, 현지 영자신문에서 이 사건을 접하고 변론을 위해 급거 귀국했다고도 한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공연한 선거중립의무 위배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25일 국무회의 발언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정도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2월 24일 방송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우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며 "대통령이 뭘해서 열우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3월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에게 공선법상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이튿날 "선관위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며 열우당에 대한 공개 지지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결국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7차에 걸친 변론을 진행했으며, 문재인 대표는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를 담당했다.

    헌법재판소는 5월 14일의 결정문에서 탄핵 소추를 기각하면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선법상 선거중립의무 위배 사실을 인정하고 선관위의 요청을 따르지 않은 것과 신임 투표를 제안한 것도 헌법을 준수할 의무를 위배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대통령의 탄핵은 그 중대성에 비추어 보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적극적으로 위반해야 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위는 수동적·소극적 위반에 그치고 있어 탄핵 소추를 기각한다"고 밝혔을 뿐이다.

    오호택 한경대 법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헌법재판 이야기'에서 "당시 심리·평의 과정에서는 탄핵 의견도 많았다"며 "결정이 나오기 전 총선거에서 여당(열우당)이 압승했고, 이후 헌재가 탄핵을 기각한 것은 헌법재판의 정치적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이처럼 헌법재판소로부터도 인정된 대통령의 노골적인 선거중립의무 위배를 감싸고 변호하기에 급급했던 문재인 대표가 이제 와서 대통령 발언의 선거법 위반 소지를 운운하는 것은 자기부정이자 언어도단이라는 지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 개입 발언은 총선을 불과 2개월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과는 달리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선거법 위반 그 자체였다"며 "이를 변호했던 문재인 대표가 이제 와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삼는 것은 제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