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 전문가, 성형외과 교수..“살해의도 있다고 봐야” 증언
  • ▲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 당시 김기종의 모습. ⓒ 연합뉴스 사진
    ▲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 당시 김기종의 모습. ⓒ 연합뉴스 사진


    "김(기종)씨가 리퍼트 대사의 목을 찔렀는데 경동맥과 1~2cm 정도로 사망할 수 있는 부위에 칼이 간 것이다. 리퍼트 대사가 막으려고 했는데도 (김기종이) 6차례나 찔렀다."

    지난 17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311호(형사25부) 법정.

    마크 리퍼트(42) 주한 미국 대사 테러범 김기종(55·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이날, 마크스를 쓴 김기종이 교도관과 함께 법정으로 들어섰다.

    재판장인 김동아 부장판사는 피고인에게 "메르스 때문에 마스크를 썼느냐"고 물었고, 김기종은 "그렇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첫 공판의 주요 쟁점은, 김기종이 테러 당시 리퍼트 대사에 대한 '살해의도'를 가지고 있었느냐에 모아졌다.

    이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황상현 변호사)은, 각각 '자상(刺傷)'과 '열상(裂傷)'을 주장하면서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칼로 '찔렀다'면 살인의 고의가 인정되고, '그었다'면 우발적 범행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상은 칼 따위의 날카로운 것에 찔린 상처를, 열상은 피부가 찢어져서 생긴 상처를 말한다.

    증인으로 출석한 이정빈(59) 법의학자문위원회 위원장(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은, "김씨가 '사망할 수 있는 부위'를 노리고 상대에게 칼을 찔렀다"며 살해 의사가 있었음을 강조했다.

    국내 최고의 법의학 전문가 중 한 사람인 이정빈 교수의 증언은, 피고인 측의 지금까지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재판부가 이 교수의 증언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판결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김기종과 변호인은 일관되게 살해 의도를 부인했으며, "상징적으로 흉기를 긋는 시늉을 한 일종의 '퍼포먼스'"라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이정빈 교수는 피고인 측 주장을 일축했다. 특히, 이정빈 교수는 "김씨는 리퍼트 대사의 목을 찔렀는데 경동맥과 1~2cm 정도로 가까웠다. 사망할 수 있는 부위에 칼이 갔다"면서, "리퍼트 대사가 막으려고 했는데도 (김기종이) 6차례나 찔렀다"고 답변했다.

    상처의 발생 부위와 형태, 범행 당시 상황 등을 볼 때, 리퍼트 대사에 대한 살해 의도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정빈 교수의 설명이다.

    이정빈 교수는 이어 "피고인이 범행 실패에 대비해 커터칼을 소지했고, 그의 손에 난 상처를 봤을 때, 제지를 당하는 순간에도 (리퍼트 대사를) 찌르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공격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빈 교수의 증언에 황상현 변호사는, "리퍼트 대사의 얼굴 상처 길이가 12~13cm"라면서, 목을 찌를 의도가 있었다면 상처의 시작점이 목쪽에 더  가까워야 한다"고 반박했다. 황 변호사는 "통상적으로 피해자로부터 피가 튈 경우 가해자는 흥분상태에 빠진다. 김씨도 마찬가지로 흥분상태에서 우발적으로 행동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기종도 우발적 충동에 따른 범행이라며 살해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나도 아침식사하고 강연하면 질문하려고 했는데, 리퍼트 대사가 아무 경호원이 없이 혼자 여유만만하게 앉아 있었던 것이 (범행을) 우발적으로 저지른 충동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 ▲ 김기종이 리퍼트 대사를 테러할 때 사용한 범행 도구. ⓒ 사진 연합뉴스
    ▲ 김기종이 리퍼트 대사를 테러할 때 사용한 범행 도구. ⓒ 사진 연합뉴스

    이날 공판의 두 번째 쟁점은, 김기종의 손가락 장애 상태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변호인은 김기종이 과거 화상을 입어 오른손가락 일부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주장하면서, 흉기를 휘둘러 타인을 살해할만한 육체적 능력이 없다고 항변했다. 반면 증인으로 나선 현직 성형외과 전문의는 피고인 측 주장을 부인했다.

    검찰 측 증인인 유대현(53)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김씨의 '손가락 장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유 교수는 "김씨가 손을 다쳐 일부 장애가 있을 수도 있지만 칼을 쥐는 데는 문제가 없다",면서, 피고인의 손가락 부상과 이 사건 혐의 입증은 관계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보통 손 기능의 70%는 엄지하고 검지 두 손가락이 담당한다. 김씨는 오른손 엄지가 다소 불편하지만, 물건을 쥐는 데 문제가 없다.

    장애 정도가 심한 세끼손가락도 손을 쓰는 데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나아가 유대현 교수는 2006년 일어난 박근혜 대통령 커터칼 피습사건과 이번 사건을 비교하면서, 피해자인 박 대통령과 리퍼트 대사의 얼굴에 생긴 상처의 형태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상처는 열상이고 리퍼트 대사의 상처는 자상.“

    증인의 증언이 자신에게 불리해지자, 김기종은 “거짓말하고 있다”고 소치치면서 소란을 피웠다. 법정은, 김기종이 리퍼트 대사 테러 당시 사용한 것과 같은, 24㎝ 길이의 모형 칼을 들고 범행을 재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다시 한 번 술렁였다.

    이날 공판에서는 마스크를 쓴 김기종의 모습도 화제가 됐다.

    헌정 사상 유래가 없는 주한 미국 대사 테러를 감행한 그가, 메르스 감염을 우려해 마스크를 썼다는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자기 목숨은 소중한가 보다”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부 누리꾼은 “마스크를 씌운 사람이 누구냐? 국고 낭비하지 말라”는 댓글을 올리기도 했다.

    김기종은 지난 3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주한 미국대사 강연 행사에 참석해, 리퍼트 대사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이날 범행으로 리퍼트 대사는 얼굴과 몸, 손목과 팔 등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긴급 수술을 받았다.

    검찰은 김기종에게 살인미수와 외교사절폭행, 업무방해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김기종에 대한 2회 공판은 다음 달 1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