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좌파 뿌리 위정척사(衛正斥邪)·수구파, 한국우파 뿌리는 개화파
  • ▲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 뉴데일리DB
    ▲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 뉴데일리DB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언어 또는 용어(用語)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바른 말과 용어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용어가 왜곡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부러 오용되는 경우도 꽤 있다.

    이런 ‘용어 혼란 전술’은 선동·선전에 잘 사용됐던 수법이다. 일례로 러시아 공산당 내에 레닌이 주도하는 볼셰비키(다수파)와 마르토프가 주도하는 멘셰비키(소수파)가 존재했는데, 볼셰비키는 결코 다수파가 아니었다.

    레닌이 당내에서 자파가 일시적인 다수를 점하게 되자 사용한 용어에 불과한데 이것이 굳어지면서 졸지에 그들은 다수파로 둔갑했고, 선전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 역사에서도 그들의 명칭은 볼셰비키로 고정됐다.

    한국사회에서도 너무나 많은 용어들이 잘못 사용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폄훼하는데 악용된 경우도 많다. ‘민족공조’, ‘우리민족끼리’ 등 북한의 통일전선 용어도 그대로 우리 사회에 수용돼 사용된다.

    그 중 가장 심각한 경우는 아마도 ‘진보-보수’라는 프레임일 것이다. 이것은 이미 너무 고착됐고 언론매체와 정치계, 심지어는 학계에서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좌파는 ‘진보’라는 용어가 진취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대중들에게 호감을 갖는 용어임을 간파하고 의도적으로 자신을 ‘진보세력’으로 지칭해왔고, 바라던 대로 이 구분법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런 긍정적 어감에 현혹돼 소위 ‘진보진영’에 가담하면 뭔가 생각이 있어 보인다는 착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불행히도 우리사회는 이런 허구적 프레임에 갇혀 빠져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좌파(좌익)와 우파(우익)라는 더 적합한 표현이 대신 사용돼야할 일이다. 좌파라는 것은 결코 나쁜 뜻이 아니며, 수준 높은 좌파사상과 체제는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좌파는 가장 퇴행적인 집단이 된지 오래다. 어떻게 이석기 부류 같은 이들을 진보적이라 지칭할 수 있나? 1980년대 좌파 이론투쟁에서 민족해방파(NL), 그것도 가장 저급한 주사파가 승리한 것은 한국사회의 비극이었다.

    한국에서 좌우 세력의 성격은 세계적인 우파-좌파 구도와 전혀 다른 측면이 있다. 한국좌파의 뿌리는 위정척사(衛正斥邪)-수구파였고, 반대로 한국우파의 뿌리는 개화파였다.

    서구 우파의 사상인 보수주의는 과거의 가치를 지키면서 사회의 유기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고귀한 요소가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선 보수주의가 착근하기 힘들다. 인류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의 변화와 발전적 사회변동을 경험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이끈 것은 우파였기에 오히려 우파가 진보성을 띈 경우가 많았다.

    반면 한국좌파는 보편적 좌파의 아젠다인 국제주의와 개방성, 그리고 인권을 깡그리 무시한다. 그들은 대단히 폐쇄적인 집단으로 전락했고, 민족지상주의라는 구식 이념에 빠져 북한인권같은 의제는 오히려 격하게 거부한다.

    한번 잘못 사용된 용어는 다시 고치기가 매우 힘들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한동안 6.25전쟁은 외국에서나 쓰는 용어인 “한국전쟁”으로 통용됐지만, 이제는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다시 6,25전쟁으로 지칭된다.

    바른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 생기는 혼란은 심각한 사회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공자는 일찍이 정명(正名)을 강조하며, “반드시 이름을 바로 해야 한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언어가 순리로 통하지 않고, 언어가 순리대로 통하지 못하면, 그 어떤 일도 성사되지 않는다”고 말씀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경제원이 2013년부터 우리사회의 각 분야에서 사용되는 잘못된 용어를 바로잡자는 ‘정명(正名)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의미가 깊다. 차제에 ‘정명 소사전(小辭典)’같은 책자가 나오길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6월15일자 칼럼 전재.

    강규형(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