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버전, 2.0인가 1.1인가… 민병두에게 얼마나 힘 실릴 지 관심사
  • ▲ 새정치민주연합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의 민병두 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의 민병두 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누구일까.

    2·8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새정치연합 문재인 신임 당대표의 거침없는 중도·민생·경제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는 평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후에는 민병두 민주정책연구원장이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과연 민병두 원장이 문재인 대표의 손을 잡아끌고자 하는 방향의 종착역은 어디이며, 문재인 대표는 이러한 민병두 원장과 언제까지 동행하게 될까. 문재인 대표의 변화는 본질적인 버전업일까, 아니면 자그마한 패치일까.

    이런 점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민병두 원장의 취임 일성부터 되돌아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민병두 원장은 지난해 8월 12일 보임한 이튿날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새정치연합은 유권자와의 관계가 다소 멀어져 소원해져 있었다"며 "정책이 생산되면 반드시 그 목표는 유권자의 정치적 지형을 바꾸는 것으로 귀결되도록 하겠다"는 취임 일성을 내질렀다.

    정책연구소가 당을 '대안 정당' '수권 정당'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일성이었지만, 정작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새로 정책연구소를 맡게 된 원장의 관례적 발언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정책조정회의에서는 "국민을 위한 청와대가 맞느냐"(박영선 당시 원내대표) "4·16 그날, 청와대는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나"(김영록 당시 원내수석부대표) "민생 문제를 욕망의 발산으로 해결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에 경고한다"(김성주 의원) 등 강성 비난 발언이 쏟아지면서, 민병두 원장의 취임 일성은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병두 원장은 그 이후로 공개 발언은 자제하면서도 보고서를 통해 당의 근본적 체질 개선을 주문해 왔다.

    지난해 10월 26일과 11월 4일에는 각각 '박근혜 정치를 넘어서'와 '진보의 길을 다시 묻다' 제하의 보고서를 펴냈다.

    이들 보고서는 "야성 회복을 통한 강한 야당이라는 고정 관념과, 선거는 기본적으로 심판 선거이며 네거티브는 야당의 본령"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면서 "중도 싸움에서 승리하는 수권 정당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이 2·8 전당대회로 향해 가던 민감한 시기에도 보고서를 통해 당의 체질 개선을 주문하던 민병두 원장은 심지어 지난 대선 때 당의 후보였던 문재인 대표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민주정책연구원이 지난 9일 펴낸 '중원 장악 보고서'는 지난 대선의 패배 원인으로 "(문재인) 후보가 왠지 불안하고 신뢰도에 차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새정치연합 차기 대선 후보가 매우 안정되고 무한하게 신뢰성이 있다는 느낌을 얻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새정치연합이 무엇보다도 경제 분야에서 매우 유능함을 과시해야 하고, 정치·복지·문화·안보 등 제반 영역에서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표로서는 자신이 지난 대선에서 불안하고 신뢰도가 떨어졌었다는 고언을 들은 셈이지만, 최근 행보를 보면 민병두 원장이 준 '입에 쓴 약'을 들이켜고 있는 모양새다.

    '유능한 경제 정당'을 표방하면서 민생 경제 행보를 하고 있는데다, 정치적으로도 중도 방향으로 과감히 큰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당대표로 선출된 이튿날인 지난 2월 9일 국립현충원의 우남 이승만 박사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당대표로 선출된 이튿날인 지난 2월 9일 국립현충원의 우남 이승만 박사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2·8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그 이튿날, 국립현충원을 찾아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는 전통적으로 새정치연합 지도부에게는 금기시된 행보였다. 올해 신정 현충원을 찾았던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관례에 따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는 데 그쳤다.

    당시 동행한 취재진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정치적으로 반대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도 참배했다는 점을 지적하자, 문희상 위원장은 "칭찬받을 만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럴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할) 용기가 없다"며 "당직을 내려놓으면 개인적으로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취임하면서 "해당행위자는 개작두로 치겠다"고 포효했던 문희상 전 위원장의 용기로도 이승만 박사·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는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표는 이를 선출 이튿날에 해치워 버렸다. '안으로 쏘는 당대포' 정청래 최고위원의 포격이 쏟아지고, 당내 친노 강경파들의 입이 잔뜩 튀어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반면 친노 강경파들에 눌려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던 당내 온건파는 조심스레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친노 온건파의 대표 주자인 우윤근 원내대표는 최근 "문재인 대표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 전적으로 찬성했다"며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 우리는 그 공과를 인정하자는 측면에서 나도 함께 갔다"고 밝혔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과거에는 (새정치연합이) 이념 정당 이런 이야기도 듣지 않았나"라며 "유능한 경제 정당이 되겠다는 행보는 놀라운 변화이고, 전폭적으로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민주정책연구원장의 임기는 2년이다. 지난해 8월 12일에 취임한 민병두 원장은 임기를 채운다면 내년 총선까지 당의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다.

    다만 문재인 대표의 통큰 중도 행보를 조종하는 민병두 원장의 움직임에 점차 반작용의 기운이 높아져 가는 것은 예의주시할 만하다.

    지난 15일 문재인 대표 주재로 열린 당 지도부 비공개 워크숍에서도 민병두 원장은 "포용적 성장으로 선진 복지 국가를 건설하자"는 주제로 발제했다. 또, 이를 위한 방책으로 △소득주도성장론 △신산업 전략 △일자리 복지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성장'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나타내거나 "민주나 평화 이야기는 왜 하지 않느냐"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병두 원장도 "당 정책위는 발제 내용이 좀 달랐다"며 "우리 (민주정책연구원) 것만 채택이 된 것은 아니고, 19일 정책의총에서 논의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표가 과연 진정한 '문재인 2.0'으로 버전업한 것인지, 아니면 '문재인 1.1' 정도의 변화에 그친 것인지는 당을 중도·민생·경제 방향으로 체질 개선하고자 하는 민병두 원장에게 얼마만큼 확실한 힘을 실어주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