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박 경정 ‘허위문건 작성’ 사실 밝혀내..조 前비서관 혐의 입증엔 실패
  • ▲ 청와대 문건 유출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관천 경정.ⓒ 사진 연합뉴스
    ▲ 청와대 문건 유출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관천 경정.ⓒ 사진 연합뉴스

    대통령 주변인물 사이의 ‘권력암투설’까지 초래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이, 5일 검찰의 중간사수 발표를 계기로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이번 사건의 ‘주연’으로 지목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조연’인 박관천 경정의 신병처리 여부가 대조적으로 갈려, 눈길을 끌고 있다.

    검찰의 중간수사결과를 요약하자면 청와대 문건 사건은, 조 전 비서관이 박지만 EG 회장을 앞세워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을 견제하려는 의도에서, 박 경정에게 문건 작성을 지시했고, 이를 박 회장에게 전달한 독직사건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박관천 경정은 ‘십상시’ 파동을 초래한 ‘정윤회 문건’과 ‘박지만 미행설’을 기정사실화한 ‘미행보고서’를 ‘창작’했고, 청와대 문건을 무단으로 외부에 유출했다.

    특히 박관천 경정은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사실이 언론의 보도로 드러나자, 범행을 대검 수사관 등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허위 진정서를 제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결국 비선실세 국정 개입, 박 대통령 측근 및 비선그룹 간 권력암투설로 비화된 이번 사건은, 전직 검찰 간부 출신 비서관과 청와대 파견 경찰이 공모한 자작극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볼 때, 허위문건 유출을 직접 지시했거나, 문건 작성에 깊숙이 개입한 조응천 전 비서관과, 그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 박관천 경정의 신병처리가 극명하게 갈린 것은 언뜻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해 12월 19일, 박관천 경정은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구속 기소됐다. 반면 같은 달 31일 법원은 조응천 전 비서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사건의 배후이자 주모자인 조응천 전 비서관은 불구속 상태로, 조연에 불과한 박관천 경정은 구치소에 수감된 채 재판을 받아야 한다.

    상식적으로 공범보다 주모자에 대한 처벌의 수위가 더 높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 반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차이가 벌이진 이유는, 바로 ‘죄질’의 차이다. 주연인 조 전 비서관보다 조연인 박 경정의 ‘죄질’이 더 무겁고 불량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두 사람의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법관의 결정이유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서울중앙지법 김승주 영장전담판사는 검찰이 박관천 경정을 상대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승주 판사는 “소명되는 범죄 혐의가 중대하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앞서 검찰은 박관천 경정에게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공무상 기밀누설, 공용서류 은닉 및 무고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경정은 지난해 2월 파견 근무를 끝내면서 ‘청와대 문건’ 10여건을 개인 짐에 넣어 무단으로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나아가 박 경정은 문건을 빼돌린 사실을 감추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자가 청와대에 파견 나온 대검 수사관 등인 것처럼 보고하고, 이들을 처벌해 달하는 취지의 진정서를 낸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이 적용한 혐의에 대해 법원은, “범죄 혐의가 중대하다”며 죄질이 불량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나아가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혀, 박 경정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혐의입증이 충분히 이뤄졌다는 점도 인정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서 검찰은 박 경정을 지난 3일 구속기소했다.

    법원 주변에서는 박 경정의 구속에 대해, 자신의 죄를 감추고 그 죄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 위해, 허위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한 점이 구속영장 발부의 결정적 변수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박관천 경정이 시중의 풍문을 짜깁기해 ‘정윤회 문건’을 허위로 작성했고, 정윤회씨가 사람을 시켜 박지만 회장을 미행했다는 보고서 역시, 꾸며낸 이야기라는 점도, 법원이 구속을 결정한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반면 조응천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되면서 검찰이 체면을 구겼다.

    지난해 12월 31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재판부 엄상필 부장판사는 검찰이 조 전 비서관을 상대로 낸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엄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사실의 내용, 수사 진행 경과 등을 종합할 때, 구속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보통 영장발부 여부를 심리하는 판사가 말하는 ‘구속의 필요성’은 ‘해당 사건이 구속을 할 만한 사안인가?’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구속의 상당성’이란 ‘검찰의 수사가 구속요건을 충족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하게 이뤄졌는가?’를 의미한다.

    따라서 영장전담판사가 영장을 기각하면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해당 사건이 구속을 시킬만한 사건이 되는지 모르겠고, 검찰의 수사도 부족하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다. 그만큼 검찰 입장에선 곤혹스럽고 수치스런 결과다.

    조 전 비서관의 혐의 입증과 영장 발부를 자신했던 검찰은 법원의 영장기각으로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더구나 검찰은 앞서 청와대 문건을 세계일보와 한화그룹 대관업무 담당자에게 유출한 최모 경위(자살)와 한 모 경위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조 전 비서관에 대한 영장 기각 직후, 법원 주변에서는 검찰이 청와대를 너무 의식해 무리수를 둔 결과하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이 조 전 비서관에 대한 영장을 기각한 근본이유를 보면, 박관천 경정의 경우와 그 차이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검찰이 조 전 비서관에게 적용한 혐의는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누설’이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박 경정에게 ‘정윤회 문건’ 작성을 지시했고, 이를 다시 박 경정을 통해 박지만 회장에게 건네도록 했다고 밝혔다.

    즉, 조 전 비서관의 행위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물론 공무상 비밀을 누설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그러나 법원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놨다.

    무엇보다 법원은 조 전 비서관이 박지만 회장측에 문건을 건넨 행위를 공무상 비밀누설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어 법원은 조 전 비서관이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도 없다고 설명했다.

    조 전 비서관 역시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박지만 회장에게 문건을 건넨 사실에 대해 “박회장을 관리하는 자신의 업무 중 하나였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관천 경정의 경우, 검찰은 그가 정윤회 문건과 박지만 미행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했고, 문건 무단 반출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거짓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을 밝혀내면서, 구속의 필요성을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이와 반대로 조 전 비서관의 사례에서는, 주요 적용 죄목인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에 대해 재판부의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서는데 실패했다.

    ‘주범 불구속’, ‘공범 구속’이란 이례적인 결과는 검찰이 자초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수사결과는 ‘반쪽자리 수사’라는 언론의 비판으로 이어졌다.

    검찰이 한 차례 체면을 구기면서, 앞으로 있을 재판과정에서는 치열한 유무죄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검찰은 “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조 전 비서관의 혐의가 달라지는 건 아니”라며, “재판과정에서 조 전 비서관의 유죄를 충분히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