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포럼 /2030 발언대 제50호]
    시민의식의 함양, 창조국가가 되기 위한 발판

    김상훈 /선진화홍보대사 11기 (경희대학교 회계세무학과)

     
  •   ‘한국 학생들은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 학생과 비교해보면 그다지 똑똑한 것 같진 않다.’

      한국인은 공부 잘하는 민족이다. 한국 학생들이 국제 올림피아드 대회만 나가면 온갖 상을 휩쓸기 일쑤고 3년마다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업성취도를 순위로 매기는 국제 학력평가(PISA : 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도 2006년 과학부문을 제외하고는 12년 연속 상위권을 기록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학생의 학업 성취도와 높은 교육열을 직접 거론할 정도로 부러움을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인이 똑똑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바로 대답하기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물론 한국인이 바보다, 이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를 G20의 반열에 올린 놀라운 기적만 봐도 한국인이 우수하면 우수했지 결코 바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높은 교육열, 우수한 학업 성취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노벨상을 단 한번도 받지 못했으며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타기업 베끼기에 급급해 카피캣(copycat : 소비자 선호가 높은 제품을 그대로 모방해 만든 제품을 비하하는 용어)이라는 악명을 얻을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역설을 타파하기 위해 ‘창의력과 창조성’을 지원하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했지만 집에 책장을 놓는다고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듯이 부처를 하나 더 만든다고 사회에 창의력과 창조성이 함양되는 건 아니다. 도대체 공부 잘하는 한국인이 똑똑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그 이유는 의외의 곳에 있다. 바로 ‘시민의식의 결여’이다. 더 나아가 문화의 부족, 교양의 결핍이다. 최근 사회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바로 자기계발서의 부상과 흉악한 범죄의 증가인데 이 둘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보다는 남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처세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대학 간판과 학벌이 ‘신분 상승의 정도(定道)’이고 돈과 지위가 ‘자존의 척도’라는, 사회에 만연한 이런 기형적인 인식은 세상을 약육강식으로 만들었고 오직 남보다 위에 올라서기 위한 게 하나의 인생 목표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인문서를 읽기보다는 남들이 자신의 본모습을 알지 못하도록 가면으로 가리기 위한 처세술을 배운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1점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얻을까,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더 많이 차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시장의 자유, 교육의 자유만 강조하고 이에 따르는 책임은 도외시하니 자신의 지위와 부를 발판 삼아 성상납과 뇌물을 거침없이 받고, 이러니 덕수궁 앞에서 자신을 사회적 약자로 포장하며 불법 시위를 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러니 창조에 투입되어야 할 열정이 고삐 풀린 망아지인 양 흉악한 범죄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진리’가 상정된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법이 권위를 가질 수 있고 창조성이 함양될 수 있단 말인가. 남의 것을 베끼는 게 얼마나 우스웠으면 인류의 지식에 한층 더 기여해야 할 논문이 ‘창조적 짜집기’가 되버렸단 말인가. 창조 한국이 되기 위해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닌 시장 선도자(First Mover)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책상 앞에서 하는 ‘주입식 진리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루기 쉬운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 프로이센에서 시작된 이런 획일화된 교육은 학생들에게 기형적인 시민의식만을 계속 심어줄 뿐이다.

      나는 선진의식을 제고하고 창조성을 함양하기 위한 방안으로 두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첫번째는 도서관의 확충 및 독서 프로그램 확대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존 스튜어트 밀, 아이슈타인, 에디슨은 물론 미켈란젤로, 고흐, 로댕, 피카소, 베토벤, 바흐 같은 예술가와 음악가, 더 나아가 워렌 버핏, 손정의,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현대의 경영자에 이르기까지, 소위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독서광이었다. 그것도 각자의 분야에 쏠리는 편식 독서가 아닌, 인문 고전에 기초한 건강한 독서였다.

      창조성은 경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사상과 생각이 서로 융합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다양한 사상과 생각을 가장 적은 비용으로 접할 수 있는 게 바로 책이다. 따라서 책을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많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각 지역에 위치해 있는 도서관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며 설상가상으로 한국인의 독서량은 계속 감소하는 추세인데다가 위에서도 거론했듯이 대부분 분야가 자기계발서에 쏠려있다.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오히려 복지보다는 도서관과 독서 프로그램 확대가 더 시급하다. 도서관과 독서 프로그램에서 얻는 혜택은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도서관과 독서 프로그램은 평생 내내,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다. 개인에게 풍부한 교양과 건전한 시민의식을 심어주고 더 나아가 창조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수다.

      두번째는 사회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교육이다. 이러한 모델로 경희대학교의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꼽고 싶다. 경희대는 2011년부터 ‘문명을 성찰하는 교양인’ 양성을 목표로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출범시켰다. 경희대 학생들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커리큘럼에 따라 35~56학점에 달하는 교양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데 그 중 ‘시민교육’이라는 수업에서는 시민으로서의 의식과 자세를 배우고 그 과제로 학생들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에 참여한다. 그 결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시되어 있던 ‘사랑’의 사전적 정의가 성적 소수자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시중에서 파는 생맥주 양을 속일 수 없도록 서울시가 직접 행정지도를 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대학생의 조그마한 참여가 사회를 변화시킨 것이다.

      경희대학교의 후마니타스 칼리지, 특히 시민교육을 초중고로 확대해야 한다. 시민으로서의 의식, 시민으로서의 태도, 시민으로서의 행동을 배우고 시민으로서 사회에 참여하여 직접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여기서 ‘어떻게 하면 사회를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고민은 벤처 창업자와 일맥상통한다. 시민교육이 결국엔 창조 교육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취업이 힘든 이유를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열악한 환경을 꼽았고 이러한 열악함을 대기업의 탐욕과 악행 탓으로만 돌렸다. 잠시 대기업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나 자신,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자. 그저 부와 지위를 ‘소중히’하는 마음에 중소기업과 창업을 기피하고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정공법에만 집중하지는 않았는지. 인간으로서의 인간, 사회에서의 민주시민이 되려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남을 짓밟고 그 위에 올라서려고 한 건 아닌지.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려는 적극성이 곧 개인의 경쟁력이고 시민으로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곧 개인의 창조성이다. 그저 책상 앞에 앉아 공허한 진리만을 달달 외우기보다는 진정한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시민의식 함양이 곧 창업국가가 되기 위한 발판이라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