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010년, 전교조 [반국가] [친북] [반미] 노골화“6.25는 미국의 도발 때문에 일어나”북한이 부자세습? 북한을 경멸하는 적대적 언동
  • 2006년부터 2010년까지 2000년대 중후반기는 무척 시끄러웠다.


    [인간 광우병 괴담]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면서, 국민들이 집단적인 패닉 상태에 빠져든 것도 이때였다.

    노무현 정부의 뒤를 이어 새로 정권을 잡은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반을, 전국을 휩쓴 광우병 촛불집회와 함께 보내야 했다.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3배 더 높다는 괴소문은, 미국산 소고기 파동에 기름을 붓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당시 <전교조 충북지부>는 홈페이지에 이런 내용을 포함한 수업자료를 올렸다가 거센 역풍을 맞기도 했다.

  • ▲ 전교조 충북지부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선언 기자회견.ⓒ 연합뉴스
    ▲ 전교조 충북지부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선언 기자회견.ⓒ 연합뉴스



    출범 10년만인 1999년, 합법화된 전교조는 2006년경부터 뚜렷한 [친북-반미적 성향]을 드러낸다.


    이 시기 전교조의 각 지부 홈페이지에는 [반미 반전 평화], <선군정치>, <김정일>, <김정은> 등의 단어가 자주 올라왔다.

    [국가보안법 폐지][주한미군 철수] 등의 구호가 전교조 관련 사이트에서 자주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2006년 인천의 한 전교조 간부출신 교사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군자산의 약속>, <대~한민국·1>이란 자작시를 올려 큰 물의를 빚었다.

    이른바 <9월 테제>라고도 불리는 <군자산의 약속>[주체사상파(주사파)]가 더 이상 지하조직에 머물지 않고, 합법적인 정당을 만들에 제도 정치권에 진입할 것을 결의한 사건이다.

    해당 교사는 자작시 <군자산의 약속>에서 다음과 같이 변화된 세상을 염원했다.

    (중략)
    3년 안에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민족민주 정당 건설,
    10년 안에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연방통일조국 건설은

    그리하여 농민은 이 땅의 주인이 되고
    노동자는 공장의 주인이 되고
    청년 학생 우리 모두 이 세상의 주인 되는 세상은



    이 교사가 지은 또 다른 자작시 <대~한민국·1>은 듣기 민망한 비속어와 욕설, 자극적인 표현들로 가득 차 보는 이들을 경악케 했다.

    이 시에 나오는 대한민국에 대한 비난과 조롱의 표현들은 과격하다 못해 끔찍하다.

    만약 이 시가 대한민국의 현직 교사가 올린 것이라는 사실을 감춘다면,
    일본의 극우 혐한파가 지은 것으로 오해할 정도다.

    해당 교사의 마음 속에 있는 대한민국은 한마디로 [더럽게 재수 없는], [혐오스런] 존재다.

    친구 생일 잔치 가던 우리 딸 효순이, 미선이
    둘이 한꺼번에
    미국 놈 장갑차에 깔려
    두개골이 부서지고
    내장이 터져서 죽는 나라,
    대~한민국.

    (중략)
                          
    태어난 게 너무 재수 없는 나라,

    대~한민국.

    나라도 아닌 나라,
    대~한민국

    아 씨발,
    대~한민국.



    2007년에는 서울의 중학교 교사 두 명이 이적표현물을 소지 배포하다가 적발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들의 집 등지에서 압수한 <북한 30문 30답>이라는 문건은 노골적인 [친북 의식화 지침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답 형식으로 돼 있는 이 문건의 내용은 기막히다.

    북한의 대남전략전술을 빼다 박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북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옮겨놓았다.

    심지어 북한 [부자세습체제]에 대한 비판은 [적대적 언동]으로 단정짓는다.
    <선군정치>는 전쟁을 막고, 전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사회주의 정치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친미반공주의자 이승만과 친일파가 만든 부끄러운 분단국가다.
    반면
    북한은 김일성과 빨치산이 항일무장투쟁으로 건설한 자랑스런 국가다.

    이 시기는 합법화된 전교조가 강도 높은 정치투쟁에 나서면서 조직의 힘을 모은 때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전교조와 그 소속 교사들에 대한 환상은 차츰 허물어졌다.
    2010년 한 언론은 전교조 교사들로부터 배운 학생들의 증언을 공개했다.

    여기서 나온 학생들의 경험담은 [참교육의 가면을 벗은] 전교조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06년>-----------------


    #25. 전교조 간부가 부르짖은 [군자산의 약속]

    [편집자 주]

    <군자산의 약속(9월 테제)>

    80년대 학생운동권 중 주체사상파와 NL(민족해방)계열은 2001년 9월 충북 괴산군 군자산에 모여 이른바 <9월 테제(강령)>를 채택한다.

  • ▲ 2001년 9월 군자산에 모인 종북-주사파들은 이른바 '9월테제' 즉 '군자산의 약속'이란 강령을 채택했다.
    ▲ 2001년 9월 군자산에 모인 종북-주사파들은 이른바 '9월테제' 즉 '군자산의 약속'이란 강령을 채택했다.

    이로부터 10년.
    이들은 합법적인 정당운동을 지향하면서, 국회입성에 성공한다.
    이정희 전 의원으로 대표되는 통합진보당의 구 당권파가 대표적 그룹이다.

    <9월 테제> 혹은 <군자산의 약속>으로 불리는 당시 결의는 [3년 내에 민족민주정당 건설], [10년 내 자주적 민주정부 및 연방통일조국 건설]을 핵심으로 한다.

    지하에 머물던 좌파운동권이 정당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치권력 장악을 위해 나선 출사표라 할 수 있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통일전선운동의 꽃은 중간층과의 사업이다.
    ▲ 변혁의 주체는 중간층을 누가 [전취]하느냐에 달려 있다.
    ▲ 반미 투쟁은 이남 민중만의 과제가 아니라 전 민족적 과제이다.
    ▲ 민주노조 운동을 반미 자주화 운동으로 발전시키자.


    2006년 인천의 한 전교조 소속 고교 교사 신모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자작시 두 편을 올렸다.

    신씨는 1989년 전교조 출범 당시 해직됐다가 1994년에 복직된 1세대 전교조 교사로,
    인천지부 부지부장 등을 지냈다.

    그가 지은 자작시는 큰 물의를 일으켰다.
    시의 내용과 표현은 충격적이었다.

                                     전교조 교사의 자작시
                                <군자산의 약속>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결성 10주년에 부쳐
    만약 우리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지나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한숨과 치욕 속에서 보내야 할지 모른다.

    만약 우리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지나온 세월보다 더 많은 세월을
    남과 북이 총칼 맞대고 서 있어야 할지 모른다.

    지나간 시절의 휘발과 이탈, 분열과 혼란을 간신히 딛고 선 전국연합 10년

    이제 우리, 민족자주의 이념이 있고
    존경과 신망의 지도가 있고
    군자산의 약속이 있는 우리가
    조국통일의 대사변기를 그냥 흘려보내고 만다면

    우리 스스로 이 어둔 세상의 대안이 되고
    민중들의 희망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역사와 민족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이다.

    6.15 공동선언을 바닥에 깐
    3년 안에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민족민주 정당 건설,
    10년 안에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연방통일조국 건설은

    그리하여 농민은 이 땅의 주인이 되고
    노동자는 공장의 주인이 되고
    청년 학생 우리 모두 이 세상의 주인 되는 세상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아 그것은 내가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버리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진실로 목숨까지 포함하여




    #26. 태어난 게 너무 재수 없는 나라, 대~한민국.

    신 교사가 올린 두 번째 시 <대~한민국·1>은 반미를 넘어,
    [대한민국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

    <대~한민국·1>


              백주 대낮에
              그냥 길을 걸어가다가
              남의 나라 장갑차에 깔려 죽는 나라,
              대~한민국.

              앞서거니 뒤서거니
              친구 생일 잔치 가던 우리 딸 효순이, 미선이
              둘이 한꺼번에
              미국 놈 장갑차에 깔려
              두개골이 부서지고
              내장이 터져서 죽는 나라,
              대~한민국.

              나, 초등학교 졸업장 밖에 없어요,
              내가 딸의 영전에 향을 피워야 합니까, 꽃을 바쳐야 합니까,
              절규하는 아버지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

              그러고도 아무 잘못 없다고,
              사고를 낸 미군은
              영내에서 정상적으로 잘 생활하고 있다고,
              방송에 나와 떠들어대도 아무렇지도 않은 나라,
              대~한민국.

              우리나라 안에서
              남의 나라 놈이
              취재 중인 우리나라 기자를
              쇠사슬로 꽁꽁 묶고
              온몸을 군화발로 짓밟아도 되는 나라,
              대~한민국.

              우리나라 안에서
              다른 나라 놈이 쏜 물대포에
              우리나라 사람이 맞아 쓰러지는 나라,
              대~한민국.

              그런데 그 놈들에게
              거꾸로 표창장을 주는 미친 나라,
              대~한민국.

              태어난 게 너무 재수 없는 나라,
              대~한민국.

              나라도 아닌 나라,
              대~한민국

              아 씨발,
              대~한민국.


  • ▲ 2008년 6월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추모식과 함께 열린 광우병국민대책위의 대규모 촛불집회.ⓒ 연합뉴스
    ▲ 2008년 6월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추모식과 함께 열린 광우병국민대책위의 대규모 촛불집회.ⓒ 연합뉴스


    #27. [빨치산 추모]와 [통일]의 상관관계

    2006년 3월 19일 <전교조 경남지부 산청지회>에서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통일을 여는 지리산 역사 기행>에서 학생 20여 명을 포함한 총 55명이,
    [빨치산 출신자인 이성근]과 함께 기행하면서 [빨치산 활동지역에서 추모의식]을 전개했다.

       - 2006년 인터넷 포털 다음 카페 <통일교사 모임>


    [편집자 주]

    [빨치산]은 [애국열사]인가?

  • ▲ 2006년 5월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러시아 소장 북한 영상기록물에 나오는 빨치산 부대원들의 서울 입성 모습.ⓒ 연합뉴스
    ▲ 2006년 5월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러시아 소장 북한 영상기록물에 나오는 빨치산 부대원들의 서울 입성 모습.ⓒ 연합뉴스


    1950년 6.25전쟁을 통해 남침을 감행한 김일성은 자신들이 점령한 각 지역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한다.

    당시 북이 조직한 <인민위원회>는 남한 내 좌익세력과 북에서 파견된 당과 군 간부들이 주도한다. 이들 중에는 전쟁 전 좌익진영에서 활동했던 [구 빨치산] 출신들도 있었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에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던 교수와 교사, 문인 등 일부 지식인층도 합류한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선을 계기로 전황이 역전되면서, 이른바 <남부군>으로 통칭되는 북한 [빨치산]의 존재가 크게 부각된다.

    이들은 북한이 국군과 유엔군에 밀리면서 역설적으로 몸집을 불린다.
    퇴로가 막힌 인민군 패잔병들과 인민위원회 주도세력, 이들에게 동조한 좌익 인사들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세(勢)가 크게 늘어난 [빨치산]은 남한 후방에서 교란작전을 벌이며 혼란을 야기한다.
    이들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전남도당 총사령부>를 만들고 각 지역별로 유격대를 조직해 활동한다.

    1951년 김일성은 흩어져 있는 남한 내 [빨치산]에 대한 체제정비에 나선다.
    우선 김일성은 <이현상>을 중심으로 <남부군 총사령부>를 신설한다.

    그러나 <이현상>을 이용해 남한 내 [빨치산]을 조종하려 한 김일성의 계획은 뜻하지 않은 장애물을 만난다.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교단에 섰던 <방준표(빨치산 전북도당위원장)>와 <빨치산 전남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던 <박영발>이 김일성의 명령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결국 [남한 내 빨치산]은 <방준표의 전북도당>, <박영발의 전남도당>, 지리산을 근거로 한 <이현상의 남부군>으로 나뉘어 남도 일대에서 토벌대와 격전을 벌인다.

    당시 [빨치산]의 영향권아래 있었던 지역은 지리산, 전남 광양의 백운산, 전남 영광의 불갑산, 전남 화순의 백아산 일대 등이다.

    이들 지역은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세상이 되는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전교조>는 통일교육과 현장체험이란 명목으로 자주 지리산을 찾는다.
    그리고 이들은 이곳에서 <이현상 유적지> 등을 둘러보며,
    함께 온 학생들과 함께 [빨치산 추모의식]을 갖곤 한다.

    전교조는 [빨치산]을 [통일열사], [애국열사]라고 치켜세운다.
    [비전향장기수]를 [통일 일꾼] 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빨치산]은 소련의 지령을 받은 김일성의 적화통일 시도에 철저히 이용당한 비극적 존재일수는 있다.

    그러나 [빨치산]을 [통일열사]나 [애국열사]로 떠받들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빨치산]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면,
    해방전후부터 6.25전쟁에 이르는 당시 한반도 상황, 국제정세,
    이들의 구성 배경과 구체적인 행적 등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런 전제 없이, 감수성이 민감한 어린 학생들에게 이들을 마치 [순교자]나 [민주화 유공자]처럼 각인시키는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28. 민주정권 수립을 위해선, 김일성 노작부터 연구하라

    자주적 민주정권 수립을 위해 김일성 노작을 연구하는 등 인민대중성을 각성시켜라.

       - 2006년 <전교조> 경기지부, 대전지부, 경남지부(게시판)


    [편집자 주]

    <김일성 노작>을 연구하는 전교조


    북한 <김일성>의 발언과 각종 문서, 지시내용 전체를 말하는 일종의 고유 명사다.

    2002년 북한의 조선중앙TV는 <김일성>이 생전에 집필한 <노작>이 1만8백여건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김일성>의 첫 번째 <노작>은 1926년 10월 발표한 <타도 제국주의 동맹>이다.

    북한은 <김일성>이 이때부터 1994년 7월 사망하기까지 한 해 평균 160여건, 2∼3일에 한 건씩 모두 1만8백여건을 집필했다고 선전한다.

    북에서 <김일성 노작>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북한 주민들의 [세뇌]를 위해 이뤄지는 <집체학습>의 주요 교육자료 역시 <김일성 노작>이다.

    <김일성 노작>은 당과 수령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절대적인 복종과 이를 통한 체제안정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콘텐츠라 할 수 있다.

    <김일성 노작>이 <주체사상>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김일성 노작>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내려오는 [3대 부자세습체제]를 정당화하고,
    절망적인 아사(餓死) 상황에 처한 북한 주민들의 반발을 약화시키는 핵심적인 수단
    이 되고 있다.

    북한이 말하는 <김일성 노작>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여기에는 각종 보고와 연설, 논문, 테제(강령), 담화, 강연, 서한, 축전, 지시, 명령, 훈령, 훈시, 성명, 포고문 등이 모두 포함된다.


    **********************************************************************


    절대 복종을 명령하는 <주체사상>


    1930년대 김일성이 창시하고 김정일이 계승 발전시켰다고 주장하는 북한의 [전제주의(專制主義, autocracy)] 통치이념이다.

    조선노동당의 유일지도사상으로, 북한이 [3대 부자세습체제]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명령할 수 있는 근원이다.

    1982년 김정일이 발표했다는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에 따르면,
    <주체사상>은 크게 [철학적 원리], [사회역사원리], [지도원칙]의 세 가지 주제로 나뉜다.

    북한이 말하는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사람이 주인], [사람 중심]이라는 문구로 정의된다.

    [사회역사원리]는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이를 추진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논리다.

    이 두 가지 원리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으로,
    [자유주의 및 자본주의 체제 전복]과 [적화통일], [공산혁명]의 정당성을 역설하는데 자주 쓰인다.

    [지도원칙]은 혁명과 건설을 위한 주인으로서의 태도로 요약된다.

    <주체사상>은 이와 동시에 [혁명적 수령관]을 내세워, [수령과 인민대중]은 [주종관계]에 있다고 규정한다.

    결국 <주체사상>은 국가의 모든 권력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부자세습체제]에 있고, 이들이 곧 [법]이자 [국가]라고 가르친다.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전 근대적이고 반민주적인 전제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통치이론에 불과하다.

    물론 <주체사상>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부자세습체제>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하는 근본 이론으로도 이용된다.



    #29. 전교조는 부시를 싫어해?

    부시는 전쟁광의 우두머리..
    (중략)
    부시방한 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이 낳은 수많은 고통에 저항하는 다양한 투쟁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다.

       - 2006년 <전교조> 대전지부 통일위원회 게시판



    #30. [영원한 수령] 김일성과 <선군정치>

    <선군정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영원한 수령]인 김일성 주석이 개척하고 전진시킨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정치방식.

       - 2006년 <전교조> 경북지부 통일위원회 게시판


    [편집자 주]

    <선군정치>와 전교조의 설명

  • ▲ 2007년 5월 북한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선군혁명 선구자대회' 개막식. 당시 북한은 '선군(先軍)정치'의 성과를 자찬하며 체제 결속 의지를 다졌다.ⓒ 연합뉴스
    ▲ 2007년 5월 북한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선군혁명 선구자대회' 개막식. 당시 북한은 '선군(先軍)정치'의 성과를 자찬하며 체제 결속 의지를 다졌다.ⓒ 연합뉴스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위기에 처한다.

    국제적으로는 중국에서 일어난 <천안문 사태>와 독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 등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났다.

    특히 1991년 소련의 붕괴는 북한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급변사태였다.
    중국이 대한민국과 공식 수교관계를 맺은 것 역시 북한에겐 충격이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권력을 잡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회 경제적으로도 혼란이 일었다.

    자신들의 체제수호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절대적인 도움을 받았던 맹방들이 사라지면서, 북한의 경제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여기에 해마다 되풀이된 수해와 가뭄 등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북한 경제는 평양에서도 배급이 끊기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린다.

    굶주린 북한 주민들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중국 국경을 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선군정치>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태어났다.

    자신들의 체제를 지켜주던 안전판이 사실상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위기가 계속되면서 북한 내부의 동요를 막고,
    밖으로는 자신들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주체사상>을 넘어선 더 견고한 사상이 필요했다.

    이미 경제체계가 붕괴한 상황에서 굶어죽는게 일상화된 북한 주민들을 더 강력하게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이념이 절실했다.

    다급해진 김정일은 1995년 1월 한 인민군 초소를 시찰한 뒤 <선군정치>에 관한 최초의 팸플릿을 내놓았다.

    이후 <선군정치>는 <주체사상>을 넘어 <김정일>을 대표하는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는다.

    조선 인민군의 혁명무장역량에 의존하여 미국 등 외세의 침략과 봉쇄 음모를 분쇄하고,
    국가와 인민의 자주성을 보장하는 원칙이 있고,
    정의로운 정치, 조국과 민족과 인민을 사랑하는 숭고한 정치.


    이상은 북한이 설명하는 선군정치의 정의다.

    [정의]나 [사랑] 등의 미사여구를 빼고, <선군정치>가 추구하는 숨은 목적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군의, 군에 의한, 군을 위한 지배의 정당화]이며, 두 번째는 그 군을 통솔하는 [수령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다.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공식화시키면서 군을 앞세웠다.
    <선군정치> 등장 후 북한 체제는 분명하게 군 중심으로 바뀐다.

    ▲ [군 우선]의 지도 방식
    ▲ 군 조직과 군인들의 지위 향상
    ▲ 군사비 우선의 재정 운영 원칙 등은 <선군정치> 후 북한에서 나타난 대표적인 변화들이다.

    안팎으로부터의 위기상황에 맞선 체제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선군정치의 출현 배경을 본다면, 수령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군의 위상과 역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목을 매는 이유도 <선군정치>와 맥락이 같다.

    <선군정치>는 경제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에서 얼마 남지 않은 재정과 자원을 체제 안정을 위해 쏟아 붓는 훌륭한 명분이다.

    나아가 김정일은 <선군정치>의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북한 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남한과 미국의 탓으로 돌린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남한과 미제의 압박에 있으므로, 이들을 무력으로 물리치기 위한 군사력 증강이 최우선 과제라는 식의 논리다.

    결국 <선군정치>의 실체는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들이 만들어낸 체제 수호를 위한 궤변이다.

    결코 [인민을 사랑하는 정의로운] 정치가 아니다.
    그럼에도 전교조 교사는 <선군정치>를 [전쟁을 막고 자주적 통일을 위한 통치방식]이라고 가르친다.

    김정일이 자신의 안녕을 위해 만들어 낸 궤변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31. 반전평화 투쟁의 목적은 주한미군 철수

    반미반전평화 투쟁을 지속적으로 조직전개하고 이를 주한미군 철수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 2006년 <전교조> 경남지부 통일위원회 게시판


  • ▲ 민주노총과 한국진보연대 등이 준비한 주한미군 철수 집회.ⓒ 연합뉴스
    ▲ 민주노총과 한국진보연대 등이 준비한 주한미군 철수 집회.ⓒ 연합뉴스

    #32.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남북화해의 동력?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중략)
    한반도가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로 전변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언인가.

    북이 발사한 우주발사체에 의해 단번에 상황이 역전되어 버렸다.

       - 2006년 <전교조> 전남지부 통일위원회 위원회



    #33. 한반도의 북핵 위험은 미국의 탓이다

    미국이 인위적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고 있으며, 북에 대한 고립과 압박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는 북-미 간의 문제.
    이북의 핵무기 보유 및 증산을 민족자주권 수호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 2006년 <전교조> 경북지부 통일위원회 게시판



    #34. 우리가 반전·평화를 외치는 진짜 이유는?

    반미반전 평화투쟁을 조직전개하고 이를 주한미군 철수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완전 폐지시키고, 친미수구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한 민주개혁 투쟁을 완강하게 벌여나가야 한다.

       - 2006년 <전교조> 경남지부 통일위원회 홈페이지



    #35. 전교조가 출제한 [북한 바로알기 퀴즈] 정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영화·연극·음악에 관심이 많았으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답 : ○)

       - 2006년 <전교조>가 낸 [북한 바로 알기 통일 ○×퀴즈]


    ------------------<2007년>-----------------



    #36. 전교조위원장의 외침, “그래 나는 친북좌파다!”

    친북좌파인 전교조와 민노당은 단결하라.
    친북좌파세력이 누구인가.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충심으로 애쓰는 모든 이들이 친북 세력이고,
    자본이나 부당한 권력에 짓밟힌 노동자나 민중,
    그와 함께하고 그 편을 드는 자는 모두 좌파세력이다.

    친북·좌파 세력의 조직이 전교조요, 민주노총이고,
    친북·좌파의 정치세력이 민주노동당이다.

       - 2007년 2월 5일, 이수호 전 <전교조> 위원장.
         <민노총> 홈페이지에.


  • ▲ 이수호의 종-친북성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사진 모음.
    ▲ 이수호의 종-친북성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사진 모음.



    #37. 북한은 부자세습 국가..감히 북한을 모욕해?

    서울 강동 M중학교 최모(44)교사가 자택에서 <북한 30문 30답>이라는 [친북(親北) 의식화 지침서]를 포함해 다량의 이적 표현물을 소지·반포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서울 강남의 C중학교 도덕담당 교사 김모(49)씨와 함께 구속됐다.

    최씨는 2003~2004년, 김씨는 2005~2006년 전교조 서울지부 통일위원장을 지냈다.

       - 2007년 1월, <조선일보>.

                       

    <북한 30문 30답> 주요 내용

     

    학생 예상 질문 : 북한은 왜 핵무기를 만들려고 하나요?
    교사 답변 예시 :
    미국이 핵 선제공격 협박을 하는 상황에서
    자위적인 핵 억지력을 보유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
    다. 

    학생 : 김정일은 자신을 지지하고 존경하도록 북한 주민들을 세뇌한 것 아닌가요?
    교사 :
    한국도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공산주의사회주의보다 우월하고 미국은 우월한 존재로 주한미군 주둔은 당연한 것이라고 세뇌교육 시켜왔다.
    북한의 교육체제를 한마디로 세뇌교육이라고 폄하할 수 없다.

    학생 : 북한이 남침을 하지 않을까요?
    교사 :
    북한이 남침할지도 모른다는 인식은 지난 50년 이상 세뇌교육된 것이다.
    군대는 자기민족 내부를 총질하는 집단이 아니다.
    광주항쟁 때 데모하는 국민들에게 총질하는 것이 군대이며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집단인가.

    학생 : 북한에 무조건 식량을 보내자는 주장은 무책임한 것 아닌가요?
    교사 :
    인도주의 정신과 민족애에 입각해서 창고에 가득한 쌀을 일부 지원하는데
    무슨 조건이 필요한가?
    냉전수구세력들은 단돈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아무 증거도 없이 군량미로 전용 운운하는 반복 선동을 일삼는데,
    그럼 군인은 사람도 아니고 굶어죽어도 좋단 말인가?"


    학생 : <선군정치>가 뭔가요?
    교사 :
    혁명적 지도자와 당이 혁명군대를 앞세워 전체 인민을 혁명화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정치방식으로 해석돼야 한다.
    북한은 <선군정치>가 전쟁을 하자는 정치가 아니라
    오히려 전쟁을 막고 전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학생 : 남북한의 역사를 비교해 주세요.
    교사 :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수립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이
    친미반공주의자 이승만과 한민당 등 친일파를 내세운 미국이다.

    북한은 김일성 등 항일 빨치산들의 항일민족해방투쟁으로 건설됐다.

    학생 : [북한은 부자세습체제]라면서요?
    교사 :

    북한을 봉건 왕조에 비유하는 것은
    북한을 경멸하고 모욕하는 적대적 언동
    이다.
    봉건왕조라면 앞도적인 외적 압력에 굴복해도 벌써 굴복했을 것이며
    망해도 벌써 망했을 것이다.
        - 2007년 1월 22일, 중학생 친북 의식화 <전교조 지침서>.



    #38.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법률은?

    반공이라는 이름 아래 민중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고 억압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

       - 2007년 7월, 경기 양평 A초등학교 6학년 담임 김모(35) 교사의 국가보안법 설명.



    ------------------<2008년>-----------------



    #39. <만경대>에서 [짧지만 많은 것]을 느낀 전교조 선생님

    <만경대>는 김일성 주석이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지낸 곳이다.
    전교조는 <만경대 혁명사적관>, <만경대 고향집> 순서로 참관을 하게 됐다.

    안내원 설명에 의하면,
    해방 후 김구 선생이 이 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주석의 조부모님은 여전히 농사를 짓고 계셨다고 한다.

    이상하게 생각한 김구 선생이 “손자가 수령인데 왜 농사를 짓고 계십니까?” 라고 묻자 “내가 계속 농사를 지어야 수령님이 조국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지 않겠소”라고 답했다고 한다.

    짧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일화인 것 같다.

       - 2008년 1월, 남북교육자 상봉행사를 다녀와서.
         <전교조> 제7회 참교육실천대회 통일교육분과자료집.


    [편집자 주]


    <만경대>와 [김일성 우상화]..
    국은 김일성이 가짜인 줄 알고 있었다!


  • ▲ 만경대 김일성 생가를 방문한 북한 학생들의 행렬.ⓒ 연합뉴스
    ▲ 만경대 김일성 생가를 방문한 북한 학생들의 행렬.ⓒ 연합뉴스


    북한 평양에서 서쪽으로 약 12km떨어진 곳에 있는 <만경대>는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필수 관광코스 중 한 곳이다.

    이곳은 북한의 [성지]이자 [김일성 우상화]의 총 본산이다.
    [영원한 수령] 김일성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생가와 그 행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는 상징성 때문에 북한은 자신들의 땅을 찾은 해외 인사라면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이곳을 참관하기를 요구한다.
    북한을 방문한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로 만경대를 찾은 경우가 매우 많다.

    보통은 북한측의 옵션 없는 일방적 일정에 따라 단체로 갔다 오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 인사는 김일성의 혁명위업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찾기도 한다.

    북한은 이곳을 1947년부터 <만경대사적지>로 성역화했다.
    북측 주장에 따르면 김일성은 1912년 4월 15일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 현재의 만경대에서 태어났다.

  • ▲ 북한에서 그린 김일성 인물화와 김정은.ⓒ 연합뉴스
    ▲ 북한에서 그린 김일성 인물화와 김정은.ⓒ 연합뉴스

    이곳에서는 안내원이 매번 같은 설명을 늘어놓는다.

    1927년 몇 살에 배를 타고 어디를 홀로 건넜고,
    이것은 직접 쓰신 물건,
    저것은 하사하신 물건,
    조국해방전쟁의 위업은 이렇고 저렇고 하는 식이다.

    물론 대부분의 이야기는 [소설]이다.

    특히 [가짜 김일성]에 대한 의혹이 구체적인 증거들과 함께 제기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북한의 [만경대 성역화]는 일종의 코미디에 가깝다.

    2009년 8월 13일 <연합뉴스>는 <미국 연방정부기록보존소(NARA)>에서 찾아낸 기록을 근거로, 미국은 [미 군정] 당시부터 김일성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군정]은 김일성의 본명이 <김성주>이며,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으로 명성을 얻은 [진짜 김일성] 행세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 2009년 8월 연합뉴스가 미 연방정부기록보존소(NARA)에서 입수한 미 군정 작성 자료. 1948년 8월 1일자로 미군이 작성한 극비자료 <북한의 한국인들> 촬영사진.ⓒ 연합뉴스
    ▲ 2009년 8월 연합뉴스가 미 연방정부기록보존소(NARA)에서 입수한 미 군정 작성 자료. 1948년 8월 1일자로 미군이 작성한 극비자료 <북한의 한국인들> 촬영사진.ⓒ 연합뉴스


    1948년 8월 1일 [미 군정]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본명이 김성주인] 김일성이 1924년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담겨 있다.

    당시 극비로 분류됐던 이 자료는 [김성주가 김일성으로 둔갑한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진짜 김일성의 조카였던 김성주가 작은아버지의 이름을 빌려 항일독립투사로 행세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자료는 <김성주>가 차분한 성격에 명석하고, 일을 할 때는 바로 핵심을 잡아 업무를 장악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기술했다.

    [미 군정] 자료는 <김성주>가 소련으로 넘어간 한국인들 중 한 사람이란 또 다른 [가짜 김일성설]도 소개하고 있다.

    김일성이 [가짜]라는 기록은 이밖에도 더 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보다 약 1년 앞선 1947년 9월 1일, [미 군정]이 작성한 [유력 한국정치 지도자 약력]에도 <김일성>은 본명이 <김성주>로 나와 있다.

    좌파 역사학자인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도 그의 저서 <대한민국史>에서 다음과 같은 기술을 하고 있다.

    2001년 10월 24일 <한겨레21> 381호
    [‘김일성 가짜설’ 누가 퍼뜨렸나] 중 일부

    서대숙은,
    (중략)
    해방 당시의 김일성은 “전설적 영웅의 이름을 자기 것으로 도용한 사실”이 있는 “33살의 무명청년”이었다고 주장했다.

    서대숙에 따르면 김일성은 “중국공산주의자의 일인으로서 중국인으로부터 교육과 훈련을 받고 만주에서 중국공산주의자들의 지도체계 속에서 승진하였던 이방인”이었다.

    스칼라피노와 이정식도 “김일성의 권력장악과정에서 소련의 지원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며 “김일성은 이 무렵의 다른 어떤 정치지도자들보다도 외세에 밀착”되어 있는 소련의 ‘괴뢰’일 뿐이었다.
    (중략)
    다음 기회에 따로이 설명하겠지만 항일영웅으로서의 김일성의 명성은 식민지 조선의 특수상황 속에서 다분히 과장된 측면이 있다.


    2001년 8월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 대축전에 참가했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만경대 김일성 생가를 방문해 [만경대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글을 남겨 [종북]논란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40. 중고생들이 [급식노조 파업]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비정규직 법안의 쟁점을 알아보고 학생 스스로 사회문제에 비판적 의식을 갖도록 계기수업을 실시한다.

    일부 사립학교는 30% 이상이 기간제교사인 곳도 있어 2년마다 다 쫓겨나 다른 학교를 기웃거릴 염려가 있다.

    학생들과 가장 친근한 수위, 영양사, 사무보조원 등 학교종사자 10만여 명이 비정규직이라는 현실도 학생들에게 알릴 것.

       - 2008년 4월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계기교육 방침을 밝히며.
          <전교조>가 만든 중 3 및 고교생을 위한 수업안 중 일부.


  • ▲ 2008년 6월 전국을 뒤흔든 광우병 촛불집회 자료사진. 집회 참가자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08년 6월 전국을 뒤흔든 광우병 촛불집회 자료사진. 집회 참가자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자 주]


    전교조가 [급식노조] 파업을 지지한 이유?


  • ▲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정부청사 후문 앞에서 열린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회원들의 집회. 사진 오른쪽은 파업으로 급식이 중단된 전북 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하는 모습.ⓒ 연합뉴스
    ▲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정부청사 후문 앞에서 열린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회원들의 집회. 사진 오른쪽은 파업으로 급식이 중단된 전북 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말 전국적으로 벌어진<학교 비정규직 노조(이하 급식노조)>의 파업을 앞두고 <전교조>는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공공연히 밝혔다.

    [급식노조]의 파업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규정짓고, 학생들에게 [참 뜻]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전교조>가 이처럼 [급식노조]의 출현과 그들의 파업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전교조>가 조직의 세(勢) 확대를 위한 핵심전략으로,
    [무상급식]과 [급식노조]의 출범을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다는 분석이 전현직 교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전교조>는 조직의 외연 확대 및 정치력 강화를 위한 핵심전략으로 [무상급식]과 [급식노조]를 채택, 2000년대 중반부터 치밀하게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학교급식을 위탁에서 직영으로 바꿔 학교 영양사와 조리사, 급식보조원 등을 조직원으로 규합한다면,
    전국적으로 약 10만명 이상이 참여한 거대 노조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증언에 따르면 <전교조>의 이같은 전략은 단계적으로 세분화돼 있다.

    [위탁급식을 직영급식으로 전환]→[영양사-조리종사원 등 급식노조 결성]→[민노총-구(舊) 민노당 가입] 등의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따르는 [비례대표 의원]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전교조>는 급식노조를 활용한 정치자금 확충 방안까지 수립했다고 한다.

    <전교조> 등이 예상하는 급식비는 총 5조원.

    <전교조>는 이 가운데 인건비 1조5,000억원에서 파생하는 조합비와 정치후원금 등을 정치자금화 할 수 있고,
    나머지 3조5천억원 규모의 [식자재 구입권]을 통해 친 <전교조-민노총 연합>을 후원하는 기업을 육성한다는 셈법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전교조>는 세(勢) 확대는 몰론 막대한 규모의 정치자금까지 확보하는 이중, 삼중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의혹에 대해 이계성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공동대표는 실제 자신이 전교조의 계획안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2006년경 친분이 있는 <전교조> 소속 교사를 통해 이런 내용을 담은 계획안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이 대표는 계획서를 보여 준 <전교조> 교사의 말을 반신반의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학교급식 운영실태가 계획안대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전교조> 교사의 말을 믿게 됐다고 설명했다.



    #41. 한국 사람이 [인간광우병]에 더 잘 걸린데..

    미국과의 소고기 협상이 타결돼 시장을 전면개방하면서 4년여 동안 수입이 금지됐던 LA갈비는 물론 사골, 우족, 내장까지 들여오기로 합의했다.

    광우병은 미국이 소를 사육하면서 빨리 키우기 위해 식물성 사료가 아닌 동물성 사료를 먹여서 생긴 병이다.

    한국인이 서양인에 비해 3배 정도 [인간광우병]에 잘 걸리는 유전자를 갖고 있어 지금 온 나라가 걱정에 싸여 있다.

       - 2008년 5월 <전교조> 충북지부.
          홈페이지에 올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자료.


    계기수업을 권장했다는 것은 과장된 것.
    계기수업을 위한 자료가 아니라 교사들이 조회나 종례 시간 등에 광우병과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지원한 것일 뿐.

       - 같은 시기, <전교조> 충북지부.
         광우병 계기교육에 대한 비난여론에.



    ------------------<2009년>-----------------


    #42. <전교조>가 만든 통일교재..
           내용은 북한 <현대조선력사>


    <전교조> 부산지부 소속 한모(46)씨 등 교사 4명과 시민단체 간부 윤모(45)시 등은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와 이적표현물 제작·소지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각각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2005년 10월 18일부터 11월 1일까지 매주 화요일 <전교조> 부산지부 강당에서 30여 명을 대상으로 통일학교를 운영했다.

    북한 역사 책 <현대조선력사> 내용을 인용한 교재를 제작해 김일성 중심의 항일투쟁사와 북한의 실상 등을 교육한 혐의로 기소된 것.

       - 2009년 2월 14일, <조선일보>.



    #43. 식민지 시대 한 새끼는 왜놈 쪽발이 앞잡이였고..

    식민지 시대 한 새끼(박정희)는 왜놈 쪽발이의 앞잡이였고,
    한 사람(장준하)은 독립운동 했던 사람이야.

    한 사람은 힘으로 나라를 잡았고, 한 사람은 펜으로 국민의 마음을 잡았던 사람이야.

       - 2009년 경남 김해의 한 고등학교 역사 담당 교사 허모씨의 발언.


    ------------------<2010년>-----------------


    #44. 빨치산, 그 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빨치산을 없애고 제거해야 할 암세포가 아니라 올바로 이해하고 포옹하고 감싸야 한다.
    죽음으로 살았던 빨치산 그 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북한에서는 빨치산 이현상을 영웅으로 칭송한다.

       - 2010년 6월 25일, <전교조> 전북지부 통일위가 만든 <지리산 역사 기행 안내지>.


  • ▲ 2004년 4월 북한 평양에서 열린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 할머니의 추도 모임.ⓒ 연합뉴스
    ▲ 2004년 4월 북한 평양에서 열린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 할머니의 추도 모임.ⓒ 연합뉴스
     
  • ▲ 2004년 4월 경기도 파주 보광사 인근에서 열린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 할머니 묘비 제막식. 비전향장기수인 임방규(73.왼쪽.통일광장 대표)씨가 고인의 명목을 기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04년 4월 경기도 파주 보광사 인근에서 열린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 할머니 묘비 제막식. 비전향장기수인 임방규(73.왼쪽.통일광장 대표)씨가 고인의 명목을 기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45. “6.25는 미국의 도발 때문에 일어났어요”


    6·25는 미국의 도발 때문에 북한이 어쩔 수 없이 침입한 것입니다.

    나는 시위할 때 [김일성 좋아], [김일성 좋아]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거 부르면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가지요.
    비전향 장기수 분들은 대단하신 분들이에요…(말하는 도중 목이 메고 눈이 빨개짐).

       - 2010년 12월 6일 <조선일보> 보도.
         <서울자유교원조합>이 출간한 <전교조에게 빼앗긴 학창시절> 중 일부.
         학생들이 [전교조 교사가 수업 시간에 했던 말]이라고 증언한 내용.


    - [사례를 통해 본 [전교조 25년 종북史] 총 정리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