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공주같이 자란 게 아니라 기구하게 자랐다"

    월간조선    

    2002년 4월호 월간조선에 실린 박근혜 의원 인터뷰엔 흥미로운 정보가 많다.
    특히 인간적인 술회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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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스트 레이디를 5년 했는데 힘들지 않았습니까.
      
       『굉장히 바쁘고 벅차고,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어요.
    부족한 대로 어머니 자리 메우면서 아버지를 보필해 드렸다는 걸 보람으로 알았어요.
    많이 격려해 준 국민들에게 고맙죠.
    그때 겪었던 일들이나 생활이 정치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직이 어떤지, 정치권력이 어떤 건지 지켜봤는데,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고 싶습니까.
    부모님들이 거기서 다 돌아가시고, 惡夢 같은 경험이었을 텐데.

      
       『개인적으로 얘기한다면 그 자리는 무지하게 힘든 자리예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자유가 없죠.
    모든 것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자리죠.
    사소한 말 한 마디라도 엄청난 책임과 부담을 안고 해야 해요.
    아버지의 고독, 노심초사를 저는 눈으로 봤어요.
    개인적으로 어떠냐?
    행복한 건 아니죠.
    그렇지만 자기 혼자 편안하고 자유로운 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자기가 태어난 나라가 선진국처럼 모두가 편안하고 많은 사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거죠』
      

  •    ―그런 마음이 강렬합니까.
      
       『그럼요.
    저는 있죠.
    제가 대통령 자격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과 긍지를 갖고 더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데 뭔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거야말로 얼마나 보람 있고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런 생각을 언제부터 가졌습니까. 프랑스어를 배워서 대학교수를 하려고 할 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을 것 아닙니까.
      
       『전혀 없었죠.
    정치권에 들어오기 2~3년 전이 개인적으로는 참 행복했어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고, 마음에 부담 없이 가벼운 차림으로 유적지도 다니고 운동도 하고 그러면서 부담 없이 자유스럽게, 참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았거든요.
      
       IMF 사태가 터지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경제성장은 당연히 주어지는 과실로 생각했는데 이럴 수도 있구나, 나라경제가 망할 수도 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나라가 반석 위에 서는 데 뭔가 역할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세상을 뜰 때 대단히 저를 自責(자책)할 것 같았어요.
    정치권에 들어가 나라를 다시 반석 위에 올리는 데 힘을 보태자 생각했죠』
      
       ―IMF 맞았다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불쑥 튀어 나온 건 아니겠죠.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 그런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살지 않았다면 IMF 때 정치에 뛰어들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거예요.
    청와대 생활이라는 게 매일 나라 걱정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식탁에서 「남쪽 지방에서 가뭄이 와 땅이 갈라지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얘기하시고, 손님들이 오셔도 「우리나라가 미래에는 뭘 먹고 사나. 어떤 산업을 키워야 하나」 그런 얘기예요.
    그런 데 젖어서 살아요.
    아버지가 여름에 휴가를 가시잖아요.
    진해 저도에 가서 가뭄이 들면 매일 아침에 일어나 기도부터 했어요.
    어린 나이에 나라 일이 걱정이었어요』 
          

  •    영국(英國)의 처녀왕(王) 엘리자베스 1세를 존경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대통령은 확실한 국가관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비전,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 사심 없는 마음이 확실한 국가관 속에 포함될 거예요.
    그래야 국민이 믿을 수가 있죠』
      
       ―정치인 朴正熙에게서 배운 겁니까.
      
       『그래요.
    조국근대화를 이루고 그걸 추진하실 때 아버지도 유혹이 없지 않으셨을 거예요.
    그런 고독한 자리에서 아버지를 지탱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버지의 확고한 국가관이었어요.
    민족과 나라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셨고,
    사심이 없었고,
    그러니까 左顧右眄(좌고우면) 안 하고 그 일을 해낼 수 있었어요.
    그걸 굉장히 깊이 느끼고 있어요』
      
       ―이런 정치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온 이가 있습니까. 존경하는 정치인이랄까.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傳記(전기)를 읽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존경할 만한 지도자라고 생각했어요.
    정치를 하면서 극단으로 가지 않고 의견을 모아 중용으로 가고, 어떤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바른 것인지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마음에 와 닿더라구요』
      
       ―엘리자베스 여왕이 처녀 여왕이었죠.
    朴의원이 獨身(독신)인 게 대통령직 수행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까요, 플러스 요인이 될까요.

      
       『장점이 많이 있을 걸로 봐요.
    제 경우 챙길 가족이나 부양할 식구가 없잖아요.
    모든 걸 나라에 바칠 수 있고, 주변에 비리나 유혹이 들끓어 이상한 일이 생길 여지가 없으니까요』
      
       ―그래도 가족이 있고, 자식이 있어야 현실감각이나 균형감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제가 현실감각이 없어 보여요?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를 하고 정치개혁을 해요.
    국민의 여망과 뜻을 모아서 대변하는 건데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국민을 대변합니까』
      
       ―아시아에는 대통령이나 수상의 딸들이 자리를 이어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인도 네루 수상의 딸 인디라 간디 수상, 필리핀 마갈파갈 대통령의 딸 아로요 대통령,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의 딸 메가와티 대통령, 파키스탄 알리 부토 수상의 딸 부토 수상이 있습니다.
    미얀마의 國父(국부)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지도 거의 그런 반열에 올라 있고요.
    누구에게서 제일 친밀감을 느낍니까.

      
       『그분들의 활동을 보면서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를 하는 데 여성들이 상당히 장점이 많은 것 아니냐, 그런 면에서 주목하고 있어요.
    다 한번 만나보고 누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 말씀드릴게요』
      
      
       『공주가 아니라 기구하게 자랐어요』
      
      
       ―살아오시면서 적금 들어 본 적 있습니까.

      
       『예, 그것도 해 봤습니다』
      
       ―뭐 하시느라고 적금을 들었습니까.
      
       『아뇨, 저금을 했죠.
    적금을 든 게 아니라, 조금씩 예금을』
      
       ―장보러 다닌 적이 있습니까.
      
       『청와대 시절에는 어려웠고, 청와대 나와서는 혼자도 많이 다녔어요』
      
       ―청와대서 18년 간 살면서 사춘기를 보내고, 대학을 나와 인격이 형성됐는데, 본인이 서민들의 정서(情緖)를 잘 안다고 생각하십니까.
      
       『알려고 많이 노력하죠.
    제 지역에 가면 많이 다녀요.
    그런 데서도 많은 분을 만나고 집도 방문하고,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잘 알려고 노력하죠』
      
       ―공주같이 자란 분인데 대중적인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겠나, 의구심을 보내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공주같이 자란 것도 아닙니다』
      
       ―그 정도면 공주같이 자란 겁니다.
      
       『아니에요. 기구하게 자랐어요. 기구하게』
      
       ―왜 기구해요.
      
       『저만치 고통을 많이 겪고 산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신 비극도 비극이지만, 그후에 겪은 일도 그렇고, 사람들은 나름대로 경험이 달라요.
    소설을 쓸 정도로 어려움이 많아요』
      
       ―그걸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그만큼 제가 강하게 마음을 다졌고, 저 자신에 스스로 훈계를 많이 했고, 그걸 극복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한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좌절하기 쉽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