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600m 첩첩산중에서 생활…혹서기와 혹한기 모두 겪는 자연환경새로 지은 막사에는 2주 뒤 입소…“20년 전 군대는 이제 없답니다.”
  • 지난 26일 강원도 인제군 원통면에 있는 을지부대 3250부대를 찾았다. 20년 전에 근무했던 부대다. 3250부대 정훈과장 박성욱 대위가 마중 나왔다.

    “이거 참…. 실은 보여드릴 게 없는데 어떡하죠? 생활은 분명 바뀌었는데 막사는 90년대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대학 캠퍼스 같은 신막사, 90년대 수준의 구막사

    박 대위는 먼저 새로 지은 막사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차를 타고 용대리로 향했다. 속초까지 시원스레 새로 깐 도로는 지금이 21세기라는 걸 보여줬다. 새로 지은 막사는 얼핏 보면 대학 캠퍼스 같은 느낌이었다.

  • ▲ 10월 중 3250부대는 이 곳으로 이사를 한다. 첫 인상은 대학 캠퍼스 같았다.
    ▲ 10월 중 3250부대는 이 곳으로 이사를 한다. 첫 인상은 대학 캠퍼스 같았다.

    병사식당에도, 간부들을 위한 독신자 숙소에도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다. 창은 2중으로 만들어져 있어 혹한기나 혹서기에도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게 지었다. 병사들의 생활관도 ‘병영문화 개선’에 맞춰 8인실 또는 10인실로 만들어졌다. 체육시설이 들어갈 공간도 있었다.

    박 대위는 새로 들어갈 신막사를 보며 말했다.

    “저도 자세히는 못 봤습니다만 새로 지은 막사에 들어가면 병사들 생활이 조금은 더 편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지은 지 몇십 년 된 막사에서 병사들 생활하는 거 보면 불쌍해서 마음이 안 좋습니다.”

    간부용 독신자 숙소는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형 원룸처럼 돼 있었다. 책상과 1인용 침대, 한 쪽에는 옷장과 신발장이 놓여 있었다. 생활하기에는 그리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 ▲ 간부들을 위한 독신자 숙소. 과거 창고를 개조해 쓰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 간부들을 위한 독신자 숙소. 과거 창고를 개조해 쓰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박 대위와 함께 지금의 3250부대로 향했다. 부대로 들어서 여기저기를 돌아봤다. 20년 전의 시설들, 일명 ‘콘센트 막사’가 상당수 남아 있었다. 당시 작업했던 배수로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점이라면 곳곳에 있던 커다란 나무들을 모두 잘라내고 중대 생활관 위치를 옮긴 것, PX 위치가 달라진 점 등이었다.

    90년대 초반 5969부대에서 생활한 사람이면 기억할 ‘독수리 교육대’나 산악구보를 위해 늘 지났던 테니스장도 사라지고 없었다. 식당 앞에 있던 식기 세척장은 폐쇄된 지 오래였다.

    박 대위에게 20년 전 이 부대 내부가 어땠는지 설명해주자 빙긋 웃었다.

    “그 사이에 나무를 많이 잘라낸 건 아마 태풍 등으로 막사에 피해가 있을까봐 그랬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이 곳 자연환경이 특이하지 않습니까.”

  • ▲ 간부들을 위한 독신자 숙소. 과거 창고를 개조해 쓰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미터 단위로 눈이 쌓이는 겨울, 일교차 20℃가 넘는 여름을 이겨내야 하기에 병사는 물론 간부들도 힘든 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지휘관들도 이런 말을 합니다. ‘여기는 일 년에 한 번 와서 쉬기에는 참 좋은 곳이다. 그런데 계속 살라고 하면 안 올 거 같다’고 말이죠.”

    박 대위는 3250부대로 오기 전에는 7623부대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미시령과 알프스 스키장. 원통에서 군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알만한 지역이다.

    “제가 근무하던 곳에는 정말 눈이 미터 단위로 오더군요. 요즘에는 병사들에게 삽질은 시키지 않습니다만 눈이 오면 모두가 나와서 제설작업을 합니다. 병사들만 하는 게 아니라 간부들도 같이 나와 빗자루로 쓸고 서까래(너까래는 서까래의 평안북도 방언)로 눈을 치우느라 바빠집니다. 마음 급한 친구들은 서까래 밀고 달리다가 넘어지고 서까래 자루에 배를 찔리고 난리도 아니죠.”

    90년대 초반 폭설 때문에 차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고 하자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맞장구쳤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훈련은 이제 더 이상 없다고 말했다.

    짧아진 행군거리, 욕설 없는 신병교육…지옥 같은 야전훈련 더 이상은 없어

  • ▲ 현재 3250부대가 생활하고 있는 부대의 모습. 수십 년 전에 지은 건물에서 생활 중이다.
    ▲ 현재 3250부대가 생활하고 있는 부대의 모습. 수십 년 전에 지은 건물에서 생활 중이다.

    90년대 초반 ‘서울 불바다’ 발언과 김일성 사망 등 일련의 사건이 있을 동안 3군단 예하 부대는 언제나 훈련 중이었다. 자대 배치 직후 뛰었던 무박 2일 100km 행군을 비롯해 군단 기동훈련, 공지합동훈련, RCT, ATT 등 수많은 훈련에 환자도 많았고 장병들은 ‘녹다운’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빡센 훈련’은 사라졌다고 박 대위는 말했다.

    “이제는 몇백 킬로미터 씩 행군하는, 그런 훈련은 안 합니다. 최대 행군거리도 평균 40km 내외입니다. 요즘 병사들에게 그런 훈련을 요구했다가는 난리가 납니다. 게다가 이제는 장비도 과거와는 다르고, 최근 적의 도발도 국지도발 형식으로 많이 바뀌어서 훈련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박 대위와 함께 생활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두컴컴한 생활관에서는 조만간 실시할 훈련을 준비하는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행군도 포함된 훈련이어서인지 병사들은 열심이었다. 부대의 특성상 산악지역을 행군하는 건 변하지 않았다.

  • ▲ 3250부대 막사 내 생활관 모습. 10년 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
    ▲ 3250부대 막사 내 생활관 모습. 10년 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

    병사들은 박 대위와 인사를 하면서도 주눅 들거나 긴장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3250부대 본부에서 나와 신병교육대로 향했다. 신병교육대 정훈장교인 노윤석 중위가 마중 나왔다. 신병교육대는 20년 전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다만 훈련병들이 지내는 곳에는 거대한 신막사가 들어섰다. 예전 막사는 모두 창고로 사용하거나 다른 시설로 바뀌었다. 냄새가 진동하던 재래식 화장실은 모두 폐쇄되거나 사라졌다.

    신병교육대에 들어서자 마침 퇴소식을 앞둔 훈련병들이 열병식 연습을 하고 있었다. 신형 디지털 픽셀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훈련병들은 바짝 군기가 든 모습이었다. 박 대위, 노 중위와 함께 20년 전 PRI 훈련(사격을 위한 자세 훈련)을 하던 교장으로 향했다. 교장으로 위태롭게 이어져 있던 ‘구름다리’도 콘크리트 다리로 바뀌어 있었다.

  • ▲ 퇴소식을 준비 중인 훈련병들. 이제는 훈련병들에게도 욕설이나 구타를 하지 않는다.
    ▲ 퇴소식을 준비 중인 훈련병들. 이제는 훈련병들에게도 욕설이나 구타를 하지 않는다.

    “요즘은 훈련병 교육도 예전과 다릅니다. 교관은 물론 조교도 훈련병들에게 존댓말을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인격적인 모욕을 한다고 훈련이 더 잘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입니다. 훈련병들에게는 체력훈련과 사격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합니다.”

    사단 신병교육대에서의 교육과정은 모두 7주라고 했다. 5주 동안 기초 신병교육을 받은 뒤에 수료식을 하고 부모와 함께 외출을 나간다. 이어 2주 동안 자대적응교육을 받게 된다.

    “사격훈련도 예전과는 많이 다릅니다. 이제는 20발 사격을 해서 12발을 맞추지 못한 훈련병은 맞출 수 있을 때까지 총을 쏘게 합니다. ‘창끝 부대 전투력 강화’를 위해서입니다.”

  • ▲ 훈련병들이 생활하는 곳. 30명이 한 생활관을 사용한다. 관물대는 10년 전 것이지만 비교적 깨끗했다.
    ▲ 훈련병들이 생활하는 곳. 30명이 한 생활관을 사용한다. 관물대는 10년 전 것이지만 비교적 깨끗했다.

    PRI 교장 한 켠에서는 훈련병들이 PT체조를 하고 있었다. 체력단련 시간이라고 했다. 과거 군 생활을 할 때 ‘지옥 같은 PT체조’의 모습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체력단련이었다.

    750명 함께 생활하는, 학교 같은 신교대 막사

    마치 고등학교처럼 보이는 막사로 들어가 봤다. 1층 신병교육대 행정본부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자 30명 씩 생활하는 생활관이 있었다. 

    “자대의 8~10명 씩 생활관과는 다릅니다. 아무래도 대규모 훈련병을 재워야 하다 보니 30명 씩 생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관물대는 아직 구식입니다.”

    20년 전 사용하던 나무로 만든 조그만 공간이 아닌 캐비넷식 관물대였다. 눈에 띠게 달라진 점은 ‘군대의 생명’이라는 각잡기가 없다는 것이다. 옷은 모두 옷걸이에 걸어놓고 있었다.

    “아이고, 각잡기가 사라진 게 벌써 몇 년 전인데요. ‘각’에서 군기가 나온다는 건 옛말입니다. 전투화 광내는 것도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랬다. 간부들은 물론 병사들의 전투화도 말 그대로 전투화였다. 줄 잡힌 군복도 없었다.

  • ▲ 신병교육대에 있는 세탁실. 훈련병들을 위한 대형 세탁기가 설치돼 있다.
    ▲ 신병교육대에 있는 세탁실. 훈련병들을 위한 대형 세탁기가 설치돼 있다.

    “전투화는 전투할 때 신는 신발 아닙니까. 먼지투성이인 게 당연한데 이걸 반짝반짝 광낸다고 없던 전투력이 샘솟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게 오히려 실전적이라고 봅니다.”

    생활관에는 훈련병들이 세탁한 빨래가 옷걸이에 걸려 널려 있었다. 이제는 세탁도 대형 세탁기를 돌린다고 했다. 막사 뒤편의 세탁실을 보여줬다. 과거 통합병원에서나 활용하던 대형 세탁기가 들어 있었다. 과거에 쓸데없는 데서 ‘군기’를 강조했던 ‘악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훈련병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상벌점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훈련성적이 좋으면 신병교육대에서도 가족에게 전화를 걸 수 있게 했다. 점수가 나쁘다고 해서 아예 연락을 못 하게 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지옥 같은 군대? 문제는 군을 바라보는 사회의 왜곡된 시각

    3250부대 정훈과장 박 대위, 을지부대 신병교육대 정훈장교 노 중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떠도는 ‘여전한 군 생활’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조리는 분명 있을 수 있다는 걸 이들도 인정했다. 하지만 ‘지금도 군 곳곳에 악습이 남아 있다’며 인권 운운하는 사람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다.

    과거 80년대 강제징집 당하고 ‘녹화사업부대’로 끌려가던 군대, 삼청교육대를 운영하던 군대, 다친 장병에게 ‘빨간 약’만 발라주던, 그런 군대는 이미 사라졌다. 이렇게 바뀐 것이 사실 오래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 ▲ 3250부대 안에서 바라본 간부들의 관사. 20년 전에 비해서는 '약간' 좋아졌지만 여전히 열악하다.
    ▲ 3250부대 안에서 바라본 간부들의 관사. 20년 전에 비해서는 '약간' 좋아졌지만 여전히 열악하다.

    오히려 간부들이 병사들을 더 생각하는 모습을 찾아보는 게 어렵지 않아 졌다. 박 대위나 노 중위는 사회 여론에 밀려 온갖 ‘캠페인’을 벌이면서 일선 부대에서 각종 행사나 구호를 외치면서 병사들이 쉴 틈이 줄어드는 걸 걱정했다.

    “실전적인 전투력을 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은 훈련할 때는 피땀 흘릴 만큼 열심히, 쉴 때는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간부들은 물론 병사들 또한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아시겠지만 이 지역은 자연환경이 후방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이 지역의 특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각종 행사나 캠페인을 벌이면 간부는 물론 병사들도 쉴 틈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런 점이 좀 아쉽죠.”

    이들이 지적하는 건 기자가 군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90년대 초반 대학 재학생들이 대거 입대하면서 병사들끼리 서로 구타와 욕설, 불필요하게 지적하는 일을 줄이려 서로 노력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끊임없는 훈련으로 모두가 지쳐있는데 내무반에서까지 서로 힘들게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언론에서는 병사가 다치거나 자살하면 난리가 납니다. 그 병사의 사례를 끄집어 내 마치 지금도 80년대 군대인 양 보도합니다. 그러면 해당 병사가 있던 대대에서는 난리가 나죠. 그 병사와는 알지도 못하던 다른 중대원들은 대체 무슨 죄랍니까.”

    맞는 말이었다. 군에서는 사고가 나면 지휘관과 간부들이 줄줄이 문책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군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는 기자가 자신이 군 생활하던 기억을 내세워 지금의 군 생활로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그 사이에도 군대는 계속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다’던 강원도 원통 지역. 이제는 고속화도로가 생기면서 승용차로 서울에서 원통까지 불과 2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됐다. 시설은 물론 문화도 완전히 달라졌다. 21세기 군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20년 전의 군대와 똑같다고 생각하는 언론의 편견은 이 지역 장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었다. 지금 20대들의 정서 또한 언론이 이해를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후방과는 전혀 다른 자연환경, 강한 전투력이 자랑이라는 21세기 군인들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정책과 지원, 언론보도가 필요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