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 인생 스토리 담은 ‘전시회’ 열어 이해⋅소통의 계기⋯시장도 인생도 활기
  • ▲ 정원철 교수 ⓒ 정상윤 기자
    ▲ 정원철 교수 ⓒ 정상윤 기자

    예술가들의 손이 시장을 바꾸고 있다. 물건을 사고팔던 장소에서 미술이 살아 숨 쉬는 전시장으로 변모하는 시장이 늘어나고 있다.

    시장 한가운데서 작품 전시회가 열리는가 하면 점포들의 얼굴이 현대적이며 아기자기하게 바뀌고 있다. 작가들이 전통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덕분이다.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 정원철 교수도 지난해 시장에 뛰어들었다. 문화부에서 주관하는 문전성시 컨설턴트 3기 멤버로 컨설팅과 기획을 의뢰받은 게 계기가 됐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작품 활동을 하던 그가 시장을 예술의 무대로 본 것은 ‘커뮤니티 아트(community art⋅공공예술)’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티켓을 구입해 전시회를 구경하는 보편적인 방식보다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자유롭고 열린 미술을 추구합니다.”

    “작가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커뮤니티 아트 입니다. 관객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전시회는 폐쇄적이지만 시장에서 하는 전시회는 상인, 손님 등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죠.”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시장 상인들과 상담을 하는 게 그의 첫 프로그램이었다. 상담을 토대로 개개인의 삶을 전시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술대학 교수가 하는 상담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그는 교수나 작가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서야 비로소 상인들과 인생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처음 상인들에게 어떤 인생을 살아왔냐고 물으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라고 답하 더라구요. 인간적인 대화를 하다 보니 그제야 마음을 열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얘기해주셨죠. 모든 사람들은 다 저마다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갖고 있거든요.”

    정 교수는 시장 안에 빈 점포를 활용해 전시장인 ‘꿈해소’(꿈보다 해몽 공작소)를 만들었다. 여기서는 7명 상인들의 각기 다른 인생이 작품으로 표현됐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해서 12월까지 2주 단위로 릴레이 기획전이 열렸다.

    “가장 먼저 열린 우리농산물유통 서정숙 사장의 꿈해소는 불교대학에 입학한 서 씨의 인생을 표현했어요. ‘생각의 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하얀 커튼 안에 불교음악을 틀어놓아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연출했습니다.”

    붓글씨를 즐겨하는 옥인정육점 김형옥 사장은 서예 전시회를, 노래를 즐겨하는 광주상회 최경섭 사장 꿈해소는 직접 제작한 뮤직비디오로 공간을 채웠다.

    정 교수는 전시회 이후로 시장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상인들끼리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게 됐으며, 외부에서도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정 교수의 수업을 받은 추계예대 학생 20여명도 ‘시장 조각 설치 대회’에 참여했다. 학생들이 각 점포를 맡아 간판이나 매장 안을 디자인한 것이다. 미술 전공자들이 활동하면서 실제 시장을 바꿔놓은 사례라고 정 교수는 소개했다. 

    “한 학생이 김밥집 아주머니 얼굴을 캐리커처로 그려 간판에 걸어놨어요. 손님들이 관심을 보이자 주인 아주머니가 이걸 가게 로고로 만들어 사용했죠. 원래 김밥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주었는데 이때부터 캐리커처 로고를 넣은 하얀 봉지를 제작해 사용했습니다.”

    그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 시장을 바꿔놓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술가들은 시장의 외형뿐만 아니라 상인들 개개인의 삶을 변화시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