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패배 이후 친노(親盧)-비노(非盧) 노선 싸움 치열문재인·이해찬·김두관 등 대권주자로 대선 분위기 띄우기숙청된 비노계, 박지원-손학규 연대로 활로 모색하나?
  • 사공을 잃은 민주통합당이 요동치고 있다.

    19대 총선 패배와 한명숙 대표의 사퇴 이후 당권을 놓고 벌이는 계파간 싸움이 치열하다. 특히 5월(원내대표 경선)과 6월(임시전당대회)에서 가려질 당권 주인은 대권주자 혹은 대권주자 지명권을 손에 쥐는 것이어서 처절한 혈투가 예고되고 있다.

    현재까지 짜여진 구도는 친노(親盧) vs 비노(非盧) 세력이다.

    한명숙 대표가 이끌던 친노세력은 총선 패배 책임론의 멍에를 지고 있지만, 여전히 막강한 화력을 가지고 있다. 문재인, 이해찬 등 대권주자도 보유했고 19대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만 40여명에 이른다. 비록 낙선했지만, 당대표 권한대행으로 당의 얼굴로 나선 문성근 최고위원도 버티고 있다.

    반면 비노 세력은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된 ‘지나친 좌클릭’을 명분으로 고개를 들고 있는 중도 세력과의 연대가 예상된다. 박지원 최고위원이 이끄는 구 민주계(호남계)나 손학규 전 대표의 계열이 대표적이다.

    통합당 출범 이후 친노세력들에게 ‘숙청’됐던 이들이 대선을 앞두고 다시 뭉치는 셈이다.

  • ▲ 총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 당권을 놓고 거물급 정치인들이 힘겨루기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정동영, 박지원, 손학규, 이해찬, 문재인, 김두관 ⓒ 연합뉴스
    ▲ 총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 당권을 놓고 거물급 정치인들이 힘겨루기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정동영, 박지원, 손학규, 이해찬, 문재인, 김두관 ⓒ 연합뉴스

    ◆ 이념·노선 전쟁 불붙나?

    표면적으로는 친노와 비노 세력의 싸움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좌파냐 중도냐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열린우리당이 분열했을 당시 일었던 ‘난닝구’와 ‘빽바지’의 싸움의 재림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대선 시즌만 되면 나오는 민통당의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이기도 하다. '난닝구'는 당시 DJ계열의 실용파를 지칭하고 유시민 전 장관을 지칭하는 '빽바지'는 노무현 계열의 개혁파를 일컫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이해찬을 중심으로 개혁을 부르짖는 친노세력과 호남출신인 박지원-박주선 최고위원 그리고 중도를 표방하는 김진표 원내대표가 말하는 실용주의적 중도 정책이 맞붙고 있다.

    통합진보당과 연대를 하면서 종북(?)에 가까울 정도로 좌클릭을 한 것에 대해 국민들이 혼란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 중도 세력들의 반론이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최근 “당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중도개혁 세력까지 아우르기 위한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는지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한미 FTA에 대해 온건론적 입장을 밝혀와 당내에서 공격을 받았던 김 원내대표는 “중도층 끌어안는 데 실패했고, 왜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는지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여당 텃밭인 대구에서 낙선한 김부겸 최고위원도 “정체성을 분명히 한 채 통합진보당과 연대를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체성이 불분명하니까 국민들은 우리가 통합진보당 정책에 끌려가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전히 친노세력의 입김은 세다. 문성근 대표 권한대행은 지휘봉을 쥐는 날부터 각 언론사 노조 파업을 찾아다니며 ‘좌클릭’ 발언을 이어가고 있고 시민사회단체 출신들이나 당내 486세대를 규합하는 과정을 거치며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민통당 한 호남지역 의원은 “야권통합만이 살길이라고 외쳤지만, 결국 총선 결과가 어땠나?”라고 반문하며 “박근혜 위원장이 민생을 외친 상황에서 지나친 좌클릭은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정세균 의원 출판기념회에서 혁신과 통합의 이해찬 전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오른쪽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 연합뉴스
    ▲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정세균 의원 출판기념회에서 혁신과 통합의 이해찬 전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오른쪽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 연합뉴스

    ◆ 친노 권력 굳히기, 대권주자 속속 출마선언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친노 세력들은 분위기를 대선으로 몰아가고 있다. 문재인·이해찬·김두관 등 여론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력한 대권주자를 보유하고 있는 점을 십분 활용하겠다는 계산이다.

    ‘정치 데뷔’를 암시한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연대론과 빠듯한 일정을 무기로 비 친노세력이 힘을 모을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전략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리틀 노무현’이란 별명의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먼저 판을 깔았다.

    김 지사는 창원(5월26일), 광주(6월2일), 서울(6월15일)을 도는 릴레이 출판기념회를 개최할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대선 출정식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일정이다.

    민주통합당 차기 당대표를 뽑는 6·9일 전당대회 전후로 잡은 일정도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김 지사 측은 대전에 있던 자치분권연구소를 지난 2월말 여의도로 이전하는 등 사실상의 대선 캠프를 차렸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이해찬 상임고문도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당 대표 후보군에도 이름이 올랐지만, 오히려 대선 주자로 나서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충청 맹주 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를 세종시에서 꺾은 것이 기폭제가 됐다. 대선 캐스팅보트인 충청권 민심 이반을 위해서는 이 상임고문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타공인 대권주자 0순위였던 문재인 상임고문이 낙동강벨트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것도 이 상임고문의 등장을 부추겼다는 해석도 있다.

    이 상임고문 측은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권도전설에 대해 일축했지만, “이 전 총리의 관심은 야권 대선주자를 위한 판을 잘 만들어서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라며 대권 구도에 어떠한 역할을 할 의도는 감추지 않았다.

    이미 대권 도전 욕심을 감추지 않았던 문 상임고문은 18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대선출마와 관련해 “정권교체를 위해 제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할 지 결정해야 할 때가 됐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시작했다.

    “무겁게 신중하게, 너무 늦지 않게 결정하려고 한다”고 말한 문 상임고문은 앞서 지난 5일에도 “국회의원 한 번 하려고 정치를 한 게 아니다”고 말해 대선출마 의지를 내비친 적이 있다.

  • ▲ 박지원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가운데)이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민주통합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보좌관과 귓속말하고 있다.ⓒ연합뉴스
    ▲ 박지원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가운데)이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민주통합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보좌관과 귓속말하고 있다.ⓒ연합뉴스

    ◆ 비 친노계 손학규-박지원 연대 여부가 핵심

    민통당 내 친노 세력과는 달리 중도 성향의 비노계는 이렇다 할 대권주자가 없는게 약점이다. 지난 대선 주자였던 정동영 상임고문은 강남 을에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한미 FTA를 두고 맞붙은 선거에서 패배해 당내 입지가 급격히 줄어든 상태다.

    최근 감지되는 분위기는 전통의 호남 기반을 가진 박지원 최고위원과 대권주자로 꼽히는 손학규 전 대표의 연대다.

    지난해 12월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 한국노총의 야권통합 과정에서 결별한 두 사람이 뭉칠 경우 총선 패배 책임론에 휩싸인 친노세력과의 힘겨루기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민통당 고위 당직자는 “총선 패배 이후 ‘박지원식 리더십이 있었다면 절대 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박 최고위원이 당대표를 맡고 손 전 대표가 대권주자로 나서는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을 그림은 아니다”고 했다.

    박 최고위원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총선 패배 이후 박 최고위원은 손 전 대표에게 화해의 뜻을 몇 차례 전한 것으로 알려졌고 17일에는 두 사람이 직접 만나 악수를 나눴다.

    양 측은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다르다. 두 사람은 총선 이후 가장 강도 높게 한명숙 전 대표 사퇴를 촉구했고 대책으로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는 등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뉴데일리> 분석 결과 현재 127명의 민주통합당 당선자 중 친노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39명. 여기에 486 일부 당선자들과 시민사회단체 출신 인사들을 합치면 대략 60명 가까이로 추산된다.

    반면 호남계나 손학규계는 합쳐도 25명 가량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통의 호남표와 김진표 원내대표 등 중도성향의 당선자까지 합치면 ‘해볼 만한 게임’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