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시설 개선->임대료 상승 악순환중곡제일시장 상인들 “돈모아 건물 매입”조합원에게 싸게 임대⋯ ‘조합형 모델’추진
  • 치솟는 임대료를 해결하기 위해 전통시장 상인들이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조합을 결성해 직접 건물을 매입한 후 조합원 상인들에게 싸게 임대하는 방식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건물주는 연 최대 9%까지 임대료를 올릴 수 있다. 5년이면 최대 45%까지 오를 수 있는 셈이다. 정부에서는 상인들의 고충을 덜고자 임대료의 상한선을 뒀지만 건물은 사유재산이라 한계가 있다.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전통시장 현대화 지원사업은 낙후된 환경을 개선해 시장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건물 임대료의 상승이라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대부분의 상인들이 점포를 임대해 사용하는 형편이라 재개발을 하면 쫓겨나고 시설 현대화로 시장 환경이 좋아지면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곤 한다.

    건물주만 배불리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서울 광진구 중곡제일골목시장 상인들은 조합을 만들어 건물을 하나씩 사들인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시장 상인들이 스스로 출자금을 모아 건물 매입에 나선 것은 전국적으로 첫 사례다. 각각의 개별 점포로 나뉘었던 시장을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면서 ‘조합형 시장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 ▲ 중곡제일골목시장 박태신 상인회장ⓒ양호상 기자
    ▲ 중곡제일골목시장 박태신 상인회장ⓒ양호상 기자

    박태신 중곡제일시장 상인회장은 “현대화 사업이 진행되면 일부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더 올린다. 같은 크기의 점포라도 70만원을 내는 곳이 있는가하면 150만원의 임대료를 내는 곳도 있다”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건물 매입을 결정하게 됐다”고 추진배경을 설명했다.

    중곡제일골목시장은 지난해 4월부터 새마을금고를 통해 출자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총 140여개 점포 중 참여 점포수는 약 70곳. 이들 상인들은 매달 형편에 따라 적게는 3만원부터 수십만원까지 형편에 따라 유동적으로 출자금을 넣는다. 오는 7월이면 7,000만원정도 모일 것으로 본다.

    박 회장은 “지난해 12월 출자금에서 발생한 금리 배당금 4.7%를 상인들에게 나눠줬더니 신뢰가 쌓여 출자금을 늘리거나 신규로 넣는 상인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상인들의 참여율은 높아졌지만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많다. 매입해야 할 건물의 수는 총 60채. 건물 한 채에 2~3개의 점포가 입점해 있다. 건물 가격이 한 채 당 평균 10억원이니 60채를 사려면 약 600억원이 필요하다.

    박 회장은 “우선 3년 안에 건물 2채를 매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건물을 한꺼번에 구입하기에는 자금 조달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한 채씩 소유를 늘려가겠다는 얘기다.

    조합은 건물 매입 후 성과가 좋으면 정부지원을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박 회장은 “어느 시장을 가봐도 임대료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에서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시설과 경영 현대화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조합형 시장모델이야 말로 시장 스스로 경영 현대화를 이룰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의 지원 방안으로 “상인들이 단기간에 돈을 마련하기 어려우니 국책은행과 계약을 맺어 건물을 담보로 20~30년 장기 저리를 해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 건물 매입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회장은 “임대료가 내려가면 더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 최근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의무휴업 등으로 골목상권을 살려주는 조치를 취했지만 그런다고 손님들이 저절로 시장으로 오지는 않는다. 시장 스스로가 경쟁력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대화 사업을 하면 임대료가 오르고, 재개발에 들어가면 상인들이 밀려나는 문제가 생긴다. 상인들이 지분을 갖고 있어야 자생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이 기존의 번영회나 상인회가 아닌 협동조합이나 주식회사 형태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시장의 소유구조와 조직이 통일되어야 한다. 대형마트가 단일화된 주체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시장도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뭉쳐야만 대기업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