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만원과 70만원의 차이: 僞善(위선)과 獻身(헌신)

    자신을 위해 부족했던 박원순씨의 250만원과 남들을 위해 풍족했던 김우수씨의 70만원에는 이렇게 위선과 헌신의 차이가 있다.

    장진성 

    나는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게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자신들도 박원순씨의 대답이 무척 궁금하다는 댓글들이 줄짓는 한편 일부 네티즌들은 대답을 위한 공개질의가 아니라 시비를 위한 질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래도 박원순씨가 대한민국 유일의 희망제작소 제작자였고, 그 믿음으로 간절히 희망했던 질의서여서 나는 매일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까지도 박원순 후보 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북한인권을 갈망하는 나의 희망은 무시한 채, 그는 자신의 서울시장 희망만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하긴 낡은 구두와 250만원 월세라는 그의 이중성을 뉴스를 통해 접했을 때 나는 이미 그에 대한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었었다. 250만원이 문제라기보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박원순과 실제 박원순의 격차가 너무 커서이다.

    어제 “철가방 기부천사” 김우수씨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의 월급은 박원순씨의 월세보다도 세배이상 작은 70만원이다. 그가 살았던 집이란 성인 한명 누울 공간이었다. 재산이라면 책상 위에 평소 그 분이 후원하셨던 아이들 사진뿐이었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고아원에 버려졌던 인생이었지만 그는 외롭지 않았다. 자신이 들어놓은 종신보험을 기부단체가 받도록 해두었고, 장기기증까지 약속할 만큼 죽어서도 돌 볼 이들이 많았다. 그렇게 그는 나눔을 배달했고, 희망을 배달했던 말없는 실천주의자였다.

    자신을 위해 부족했던 박원순씨의 250만원과 남들을 위해 풍족했던 김우수씨의 70만원에는 이렇게 위선과 헌신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박원순씨의 희망에는 광고가 필요했지만 김우수씨의 희망은 고작 오토바이 배달로도 충분했다. 더구나 소문의 기부가 아니라 그가 죽어서야 알 수 있었던 기부여서 우리에게 주는 감동이 더 컸다.

    나는 박원순씨에게 보냈던 공개질의서를 스스로 취소한다. 또 이로서 공개질의서에 대답할 권리는 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