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표 대표의 '등록금 인상안' 주장의 의미

    국민세금 내놓으라는 아우성, 교육의 질에 대한 논의는 없어

    변희재

    “국립대도 서서히 사립대 수준으로 등록금을 인상할 필요가 있다. 정부 재정이 넉넉하면 사립대 재정 지원도 늘리고 국립대 등록금이 올라가지 않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세금이 올라가지 않겠느냐”

    현 민주당 원내대표인 김진표 의원이 노무현 정권 시절 교육부총리 재임 당시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네티즌과의 대화’에서 했던 발언이다. 이랬던 김진표 의원은 지난 10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쇠고기 협상 규탄하는 촛불시위가 제2의 6월항쟁이었다면, 지금 반값등록금 촛불시위는 제3의 항쟁으로 승화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어차피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인 민주당 손학규 대표, 정동영 최고위원, 참여당 유시민 대표 등이 대북정책, 통상무역 정책 등 국가 정체성 관련 노선도 180도로 뒤집고 있는 상황에서 김 원내대표의 말바꾸기는 이슈거리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김 원내대표가 교육부총리 시절 가졌던 교육에 대한 가치관, 즉 교육의 질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황우여 대표와 학생들 간의 간담회, 사업주와 노조위원장의 임금협상 수준

    반값 등록금 논란에 불을 지른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긴급히 숙명여대에서 대학생들과 등록금 관련 토론을 벌였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생활수준 하위 50%, B학점 이상'에만 적용하는 등록금 부담 완화안을 밝혔지만, 학생들은 무조건적인 반값 등록금을 요구했다. 언론에 보도된 간담회 내용만 보면, 일국의 여당 원내대표와 대학생 대표자 간의 심도깊은 토론이 아니라, 사업주와 노조와의 임금협상과도 같았다.

    이미 여당의 대표가 ‘반값 등록금’이란 선동적 단어를 포기했다면, 등록금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논의를 해야한다. 역설적으로 대체 무슨 이유로 대학 등록금을 인하해야하느냐는 것이다.

    민주당의 김진표 대표가 오히려 등록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교육의 질이다. 이 때문에 김진표 대표는 사립대의 경우 기부금 입학제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역시 사립대의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평균적으로 사립대의 경우 연간 800만원, 국공립대의 경우 연간 500만원 대의 등록금이 턱없이 비싸다고 인식되는 원흉도 역시 교육의 질이다. 연간 800만원씩 내고 배우는 것도 없고, 또한 대학을 나왔다고 취업이 보장되지도 않으니 불만들이 누적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원리에 따라 대학에 진학하지 않거나 무료 수준에 가까운 사이버대에 진학하면 되지만, 한국의 대학에 대한 선입관 탓에 학생들은 선뜻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권 당시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경제평론가는 이러한 대학교육시장의 독점성을 지적하며 가격규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의 대안은 국공립대학을 네트워크로 묶어 무상대학으로 만든 뒤, 이에 산출되는 1인당 평균 교육비를 산출하여 사립대학의 등록금 기준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등록금 인하에만 한정한다면 매우 명쾌한 모범답안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또 다시 교육의 질이다.

    이 정도 되면 학생들의 입장이 있어야 한다. 94학번인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등록금 등 학사 행정 문제가 간간히 학생운동권 내에서 이슈가 될 때가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학생들 입장에서 어떠한 교육을 받고 싶다는 이슈가 제기된 기억이 없다. 물론 좌파 학생운동권 측에서 “돈이 되지 않더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교육”이라는 선전형 문구는 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교육인지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

    집단 이기주의 행태 보이는 학생들, 대학교육 실패 입증

    2011년 학생 대표자들 역시 임금협상 하듯 반값 등록금만 외치고 있지, 교육의 질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걸까? 현재의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이나 다들 알고 있는 답이 있다. 어차피 현재의 대학으로부터 별로 배울 것도 없으니, 대충 학점 잘 나오고, 대충 등록금 반값만 되면 만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세금으로 전체 대학생들의 등록금의 절반을 지원하자는 주장을 해도 되는 것일까? 차라리 국공립대 등록금을 올려서 교육의 질을 높이며, 국가 재정을 아끼자는 6년 전 김진표 원내대표의 주장이 더 설득력있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이는 정부와 대학의 자업자득에 가깝다. 학생 대표자들이 이익집단의 위원장들처럼, 자신들이 습득해야할 지식의 질에 대한 논의없이 무조건 국민세금 내놓으라며, 거리로 몰려나가고 있는 현실 자체가 이미 대학교육의 실패를 입증하고 있다. 대체 대학에서 어떻게 가르쳤길래 학생들이 이 모양 이 지경에 이르렀냐는 말이다. 각 대학 행정학을 전공하는 학생 중 국가 재정학을 제대로 공부한 학생도 없고, 교육학을 전공한 학생 중에서 대학교육의 방향성을 고민한 학생도 없다는 말인가.

    물론 학생들 입장에서는 “우리에겐 그런 것을 고민할 여유가 없다”고 항변할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최소한 이런 학생들의 집단 이기주의적 행태에 대해 ‘제2의 민주화 항쟁’과 같은 미사여구를 붙여주면 안 된다. 교육의 질을 위해 등록금을 올리자고 주장해온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대학 등록금 문제는 대학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가 이러한 대학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표 안준다고 협박하면 국민세금을 떼어주는 방식은 국가의 미래를 파는 일이다. 그렇게 팔려나간 미래는 지금 세금 내놓으라고 아우성치는 대학생들에겐 조만간 암울한 현재로 다가온다.

    그 점에서 대학의 인사 혹은 학생 대표자 중 누구 하나라도 “현재의 등록금을 미국의 대학과 같은 수준으로 올려서라도 제대로 교육을 해야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인물이 나서야 한다. 대학과 학생들 모두 그런 의지가 있을 때, 그때서야 정부에서 국민세금 투입을 논의해볼 수 있는 것이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뉴데일리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