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더 인정받으려는 카터의 ‘공명심’이 방북 동기궁지 몰린 김정일은 카터를 선전물로 활용한미 양국의 ‘원칙 고수’ 입장에 카터-김정일, 함께 바보 돼
  • 지난 26일 2박3일 일정으로 방북한 카터 前대통령의 방북 ‘선물보따리’는 없었다. 그가 들고 온 메시지는 북한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었다.

    카터 前대통령은 방북 전인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언론의 관심을 끌려는 듯 “한국이 대북 식량 원조를 중단해 북한의 어린이와 임산부 등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북한 편을 들며 방북했던 그는 김정일은커녕 김정은도 만나지도 못하고 ‘아바타’들만 만났다. 카터 前대통령이 방북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던 중 차를 돌려 김정일의 측근으로부터 전해 받은 메시지라는 것도 ‘이명박 대통령과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기존 메시지의 반복이었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번 카터 前대통령의 ‘성과 없는 방북’은 ‘카터와 김정일이 서로의 효용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상대방의 실체를 알자 실망해 벌어진 일’로 풀이하고 있다.

    북한 생각한 카터는 '미 정부 특사', 하지만 실체는….

    우선 북한의 입장에서는 남측의 ‘무조건적인 대북지원’이 끊어지고,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가 집요하게 이뤄지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카터 前대통령을 내세워 북한에 대한 인도적 필요성을 역설하는 '선전전'을 펼쳐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을 타개해 보려는 '꼼수'를 쓴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작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예상과는 달리 한국과 미국이 모든 대화와 대북지원을 중단하고 이 두 사건에 대한 공식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등 강경한 자세를 보이자 당황했다.

    김정일은 한국 내 종북 세력들로 남북대화 여론을 고조시키려 시도했지만 이거 역시 여의치 않았다. 결국 김정일이 찾은 해결책은 자기네에게 호의적인 유력인사를 섭외해 ‘무조건적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었고, 여기에 카터 前대통령이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카터 前대통령은 재임 중 실정(失政)으로 가장 인기가 없었던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는 퇴임 후 세계 분쟁지역 돌며 ‘평화 해결사’를 자처했다. 헤비타트 운동과 같은 NGO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이 공로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카터 前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에 큰 도움이 된다’며 DJ-盧 정권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기도 했다.

    김정일 입장에서는 이런 카터 前대통령을 불러 메시지를 전달하면 한미 양국이 말을 듣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전직 美대통령이니만큼 그의 영향력이 지금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1994년 김일성과 만났던 사이니만큼 북한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카터 前대통령 입장에선 만약 자신이 북한과 한미 양국 정부 사이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지금의 ‘활동’이 더욱 힘을 얻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집권 시절 ‘안보기관’과 ‘냉전구도’에 혐오감을 보였던 그인지라, ‘냉전의 마지막 전선’인 한반도에서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이 그럴싸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계산은 틀렸다.

    김정일은 카터가 전직 대통령인 만큼 미국 정부로부터 뭔가 ‘의미 있는 메시지’ 등을 가져왔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가 말 그대로 ‘개인자격’으로 방북한 것임을 확인하자 만나주지도 않았다.

    카터 또한 김정일이 자신의 방북을 허가한 만큼 뭔가 ‘중요한 이벤트’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상투적인 제의만 굴욕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도록 하는 메신저 역할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런 둘의 착각은 중요한 변수를 계산하지 못한 탓이다. 바로 한미 양국이다.

    카터-김정일, 한미 동맹, 만만하게 봤나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미국은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의 뜻을 따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한 ‘공식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걸고 있다.

    이번 카터 前대통령의 방북 전에도 우리 정부는 그에게 ‘전제조건’과 대북정책 원칙을 설명한 바 있다. 미국 정부도 카터 前대통령의 방문 전 ‘공식 메시지는 없다’며 그가 개인 자격으로 방북한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카터 前대통령과 김정일은 이런 한미 양국의 ‘공식 발언’을 무시했던 것이다. 카터 前대통령은 이번 방북의 후폭풍도 맞게 됐다. 우선 한국 정부부터 카터 前대통령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난 28일 이명박 대통령이 지미 카터 前대통령을 만날 것인가 묻자 오히려 "꼭 만나야 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홍 수석은 "이 대통령이 카터 前대통령을 만나기를 어려울 것'이라며 카터 前대통령과의 면담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

    홍 수석은 그러면서 "카터 前대통령의 이번 방북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말들이 많은 것 같던데요"라며 카터 前대통령의 방북과 그의 언행에 대해 달갑지 않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다른 고위 당국자도 “이번 메시지는 내용도 없고 형식도 잘못됐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평가하며 “북한이 할 말이 있으면 직접 하라고 전하라”고 비판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도 지난 27일 “카터 前대통령 같은 자들 때문에 남북관계에 진전이 없다”며 “우리나라에 올 필요가 없다”고 비판했다.

    북한인권주간 행사를 위해 한국을 찾은 수전 숄티 여사 등 美인권운동가들, 탈북자들 또한 카터를 비난하고 있다.

    결국 ‘잘못된 계산’으로 시작된 카터 前대통령의 방북은 그와 김정일의 입지를 오히려 좁게 만든 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