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북한 대학생 기자단 2박3일 소통캠프남한 대학생들 음모론 벗어나 현실에 다가가다
  • “KAL 비행기 폭파했다는 김현희 사건도 아직 남한에서는 미제라면서요? 저는 남한 동무들이 천안함 사건을 누가 벌였는지를 가지고 싸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2002년 남한에 정착했다는 새터민(탈북자) 최명희(가명·여)씨의 이 말에 남한 대학생들 사이에는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솔직히 저희 친구들 중에도 천안함은 자작극이라고 믿는 친구도 많았고, 저도 솔직히 아리송했다”고 앞서 말했던 남한 대학생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마이크를 잡은 이 새터민이 목소리에 더욱 힘을 줬다. “저도 누구의 말이 맞고 신빙성이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우리 백성들이 죽은 일 아닙니까? 갑론을박이라구요? 분단의 냉엄한 현실입니다.”

     

  • ▲ 경기도 기자단으로 뭉친 남한 대학생과 탈북한 새터민들이 캠프를 열었다. 이번 캠프에 참가한 한 남한 여대생이 파주 임진각에서 망원경으로 북녘을 바라보고 있다. ⓒ 뉴데일리
    ▲ 경기도 기자단으로 뭉친 남한 대학생과 탈북한 새터민들이 캠프를 열었다. 이번 캠프에 참가한 한 남한 여대생이 파주 임진각에서 망원경으로 북녘을 바라보고 있다. ⓒ 뉴데일리

    남북한 대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 기자단 제3기’에 지원한 70명의 남한 대학생들과 함께 참여한 13명 새터민 대학생들이 2박3일 일정으로 ‘1+1 소통캠프’를 열었다.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평범한 20대 남한 대학생과 탈북한 새터민 대학생들이다. 평생 살면서 안보라는 단어에 관심이 없었던 20대 초반의 청년들과 ‘아비규환’이라고 스스로 얘기하는 북한에 얼마 전까지 살던 사람들과의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조합이다.

    북한 빨갱이 머리에는 뿔이 달렸다고 배웠다는 어른들을 이야기를 속으로 비웃으며 인터넷을 장악한 음모론이 오히려 더 익숙한 남한 대학생들이 1일부터 3일까지 한평생을 북한에서 살았던 이들과 함께 평택에서 DMZ까지 100㎞가 넘는 경기도 남북을 종단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안보와 통일의 중요성을 몸소 체득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첫날과 마지막날의 눈빛을 사뭇 달랐다. 설령 아직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깨닫지 못해도 괜찮다. 앞으로 경기도 기자단으로 생활할 1년 동안 그간 자신들이 알고 지냈던 테두리를 벗어나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찼으니까.


    ◇ 망가진 천안함을 눈으로 보고 분단 현실을 깨닫다.

    첫째날 1일 오전 9시. 도청 앞에 대학생기자단 30여명이 집결했다. 버스 2대로 나눠 타고 처음 들른 곳은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 사고 1주기를 맞은 천안함이 전시된 곳이다. 사령부 내 안보공원에는 제1,2 연평해전 전승비와 전적비도 있다.

    오전 10시 볕은 따스했지만 무거운 고요와 슬픔이 참배객의 마음을 내리누른다. 녹슨 함체에 폭침의 상흔을 간직한 천안함의 몰골은 처참했다. 그 안에서 국가를 지키다 스러진 46용사의 넋을 기리며 대학생기자단은 묵념했다.

    참배를 마친 대학생들이 느낀 점이 많은지 저마다 한마디씩 소감을 쏟아냈다. 정희돈(가톨릭대 경제학과 3년) 군은 “그동안 매스컴의 추측기사로 혼란스러웠는데 가까이서 직접 보니 정부의 말에 설득력이 있다는 것 같다”며 “혼란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말했다.

    김보연(21․동국대 정치외교학과) 양도 “처음엔 천안함 사고의 원인도 확실히 모르고 언론에서 말하는 것도 뭐가 진짜인지 몰랐다. 보고 나니까 다른 사람한테 말해줄 수 있을 듯하다”며 “어떤 일이 있었고 군인들이 왜 희생당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DMZ 일대 탐방도 나섰다. DMZ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도라전망대과 제3땅굴을 거쳐 내친김에 판문점까지 다녀왔다. 남과 북이 코앞에서 대치하는 현장에 섰다. 북한땅인 판문각에서 방문객들을 파악하는 초병들과 함께 장성급회담장소도 들어가본다.

    JSA 내에 있는 대성동마을에서는 100m 높이의 태극기와 1800m 저 편에 있는 북한 기정동 마을에 세워진 160m 인공기를 보고 놀랐다. 서로 더 높게 더 크게 달기 위해 경쟁했다는 에피소드를 들으며 분담의 안타까움을 새삼 느꼈다.

  • ▲ 천안함이 자작극이라 생각했다는 대학생들이 직접 평택 해군사령부를 찾아 부서진 천안함을 살펴보고 북한의 소행이라 확신하게 됐다고 한다. ⓒ 뉴데일리
    ▲ 천안함이 자작극이라 생각했다는 대학생들이 직접 평택 해군사령부를 찾아 부서진 천안함을 살펴보고 북한의 소행이라 확신하게 됐다고 한다. ⓒ 뉴데일리


    ◇ “햇볕정책? 쌀지원? 핵무기로 돌아온다.”

    2일째 저녁 탐방을 마친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을 벌였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선뜻 동참했다.

    으레 대학생들의 관심을 끌만한 밸런타인데이가 북한에도 있는지, 북한도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내는지 등의 북한의 연애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간 뒤 ‘대북 지원’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가 모아졌다.

    한 새터민 여성이 충격적인 일화를 소개했다. 남한에 정착한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박효민(가명)씨는 “북한에 있을 때 UN에서 지급한 소고기를 받은 적이 있다. 상점에서 UN사람들이 직접 나눠줬는데 5 Kg을 배급받고 함께 사진까지 찍었다”고 했다. 남한말로 하면 인증샷인 셈이다. “하지만 배급받은 직후 뒷문에서 기다리는 관장님(북한에서는 통장을 관장이라고 부름)에게 4.5Kg을 돌려주고 500g만 받았다”고 박 씨는 증언했다.

  • ▲ 이번 캠프에서 새터민들의 증언을 직접 들은 남한 대학생들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사진은 둘째날 벌어진 토론회에서 남한 대학생이 발언하는 모습. ⓒ 뉴데일리
    ▲ 이번 캠프에서 새터민들의 증언을 직접 들은 남한 대학생들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사진은 둘째날 벌어진 토론회에서 남한 대학생이 발언하는 모습. ⓒ 뉴데일리

    곧바로 비슷한 새터민 증언이 이어졌다. 또 다른 새터민은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보내지는 약품은 북한의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남한에서 보내주는 그 쌀들이 핵무기가 돼 우리(남한)를 겨누고 있다는 걸 아셔야 한다”고 했다.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 북한 상황의 증언이 이어지자 남한 대학생들은 분개했다. 한 남한 대학생은 “우리가 지원하는 쌀을 북한 군인들이 먹고 총을 우리 대한민국에 겨누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대북지원은 뭐하러 하냐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새터민들은 침착하게 계속 말을 이어갔다. 20대 청년으로 보이는 새터민은 “그래도 대북지원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학생들은 17살에 군대를 가게 되는데 키가 170cm를 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북한 군인들이 그것조차 못 먹게 되면 영양실조와 질병에 걸릴 것”이라고 했다.

    또다른 여성 새터민은 새로운 지원 방식을 제시했다. 그는 “방법론에 대해서 저도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살면서 그런 방법을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저도 대북지원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처럼의 수수방관식의 지원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좀 더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 죽 끓여주기 운동을 벌였으면 좋겠다. 그 꽃제비(북한의 어린 거지) 애들의 목구멍에 죽이 넘어가는 것을 봐야 마음이 놓이겠다”고 했다.

    김 지사도 말을 거들었다. 그는 “오늘 얘기 들었듯이 우리는 가족들과 함께 자유롭게 산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아야 한다. 통일이 되면 우리는 차를 몰고 백두산 금강산 뿐 아니라 만주, 시베리아도 갈 수 있다. 지금은 섬이 아니지만 섬 같은 나라로 되어 있다. 이 철조망만 사라진다면 우리는 대륙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