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시해도 일선에선 해결의지 희박, 선주에게 책임 떠넘겨보안요원탑승 의무화, 청해부대 보강 등 주장은 현실과 괴리“차라리 프랑스, 러시아처럼 해적 격파해 버려야” 주장 많아
  • 지난 15일 정오(현지시각) 아라비아해 인근에서 화학운반선 ‘삼호주얼리호’가 피랍됐다. ‘삼호드림호’가 풀려난 지 두 달 만에 또 같은 회사 선박이 납치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해적들이 한국 선박을 노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뒷북 소리’ 요란한 정부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는 난리법석을 떨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신설된 위기관리실을 찾아 상황을 보고받은 뒤 “삼호주얼리호 피랍사태 해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반복되는 상선 피랍에 골머리를 앓던 국토해양부는 16일 “앞으로 위험지역을 운항하는 선박에는 민간보안요원 탑승을 의무화하도록 규정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선박 내에 일종의 ‘패닉룸’인 ‘선원 피신처(citadel)’도 갖추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17일 “삼호해운 측이 삼호주얼리호 선장 석 某 씨와 통화한 결과 선원들은 일단 안전하다고 확인했다”며 “정부는 현재 삼호주얼리호의 위치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 중이며 피랍선원들을 무사히 구출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정부는 해적과 협상하지 않을 것이며 몸값을 지불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원칙은 고수했다.

    국방부도 청해부대로 파견나간 4,500톤 급 구축함 ‘최영함’을 현지에 급파했다. 국방부는 “현재 정부가 전문가 채널을 통해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데 해적들이 우리나라 언론 보도를 보면서 정보를 수집한다고 하니, 언론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아직은 정확한 상황을 모른다”고만 답했다. 

    이런 모습들만 보면 현재 정부는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전투함과 특수부대원들을 급파하는 한편 협상 채널을 통해 해적들을 압박, 무력시위를 하려는 듯 한 인상을 준다. 

    전쟁이 생활인 해적 vs. 곱게 자란 해군

    송영선 의원(미래희망연대)은 17일 오전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이 기업화, 대규모 조직화되어 있는 마피아로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며 4,500톤급 구축함을 추가 건조해 파견하고, 특수부대원들 또한 해적 소탕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의원의 주장은 몇 년 전 상황이라면 맞는 말이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2008년까지는 ‘배후세력’의 지원을 받아 활동했다. 하지만 해적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제는 전 국민이 해적질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소말리아 해적들은 국제법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고 사람을 해친다. 무기도 7.62mm 자동소총에서부터 14.5mm 중기관총, RPG 7 등의 대전차 로켓까지 다양한 종류를 ‘마음 놓고’ 사용한다.

    소말리아 해적들의 생활환경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나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인이 들이닥치면 해적들이 겁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30년 이상 내전을 겪은 소말리아 사람들에게 전투는 ‘일상’이다. 시장에 가면 수류탄과 총탄을 kg단위로 팔고, 거짓말 조금 보태면 PRG 7과 같은 대전차 로켓이 집집마다 있는 나라다. 때문에 단순 경고나 위협사격만으로는 아무런 성과를 거둘 수 없다.

  • ▲ 청해부대로 파견 중인 최영함. 청해부대에는 초계헬기 인력과 해군 특전단 병력들을 포함해 300여 명이 활동 중이다.ⓒ
    ▲ 청해부대로 파견 중인 최영함. 청해부대에는 초계헬기 인력과 해군 특전단 병력들을 포함해 300여 명이 활동 중이다.ⓒ

    반면 청해부대에 파병된 부대를 포함, 우리 군은 실제로 적을 사살해 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 모든 활동 또한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 만약 해적들이 특수부대의 접근을 감지하고는 모든 무기를 바다로 던져버린 채 무죄를 주장하면 풀어줄 수밖에 없다.

    이런 점 때문에 현재 아덴만 등지에서 상선보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제보안기업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국제민간보안기업인 ‘쉴드 컨설팅’ 관계자는 “최근 들어 소말리아 해적이 너무 늘어나 골치가 아파졌다”고 토로했다. 과거에는 보안요원들이 ‘적정 수준’의 화력을 장비하고 있다 해적이 다가올 때 대응하면 됐으나 이제는 해적들이 ‘피라냐’ 떼처럼 달려든다고 한다. 또한 보안요원이 소총을 쏘면 해적은 12.7mm 중기관총을 쏴대니 ‘국제법’을 준수해야 하는 보안요원으로는 해적에 대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때문에 일부 보안 회사들은 자체적으로 경호선박까지 갖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적, 정보 비대칭성도 무기로

    한편 해적들은 정보 수집 능력도 갖추고 있다. 보험 브로커를 매수해 ‘돈이 될 만한 선박’들의 항해 경로를 수집하고 있다는 정황도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해적들이 본거지에서 1,000km 이상 떨어진 곳을 항해하는 선박들을 납치할 때 영국과 두바이에서 활동하는 보험 브로커들로부터 정보를 매수한다’는 주장도 있다.

    선박을 납치한 해적들은 해당 국가 언론보도를 모니터링 해 협박 수위를 조절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아프리카 출신들에게 한국은 마음대로 입국할 수 있기 곳이기 때문이다.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에 따르면 2010년 3분기까지 우리나라에 들어온 아프리카人은 모두 2만1227명. 그 중 남아프리카와 이집트를 제외해도 7000여 명을 넘는다. 이들 외에도 서울 이태원 일대에는 아프리카人들이 모여 사는 ‘타운’이 있을 정도다. 이들은 현재 국토해양부가 제공하는 ‘해양안전정보종합시스템(GICOMS)’에도 마음대로 접속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소말리아 현지 사정을 거의 모른다. 현재 소말리아는 무정부 상태인 관계로 공관이 없다. 인근 케냐 대사관이 소말리아와 모리셔스 지역에 대한 영사업무를 함께 맡아 하고 있다. 소말리아가 무정부 상태인 관계로 국정원 요원들 또한 소말리아 내부에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2007년 마부노 1, 2호 납치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영국계 브로커를 통해 소말리아 해적들과 협상을 해 왔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이런 ‘정보 비대칭성’을 철저히 활용해 거액의 몸값을 챙겨갔다.

    정부 대응, 현실적으로 효과 있을까

    이런 현실임에도 정부는 이번 ‘삼호주얼리호’ 피랍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눈치다. 정부 고위 관계자 또한 “지금 정부에서는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삼호주얼리호는 물론 해적에 대해서도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다”며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 소말리아 해적들에 의한 피랍을 지켜본 바로 미뤄볼 때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알고 있는 소말리아 해적에 대한 정보는 실무진들이 취합한 ‘일반 정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청해부대의 전력으로 볼 때 군 또한 인질구출이나 해적 본거지 소탕에 나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제법에 대한 검토, 해적들과의 교전 중 인질 사망 시 좌파 진영의 여론 조성 등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 ▲ 2008년 4월 해적들은 프랑스 선적 요트를 피랍한 뒤 몸값을 요구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들어주는 척하다 특수부대를 투입, 해적들을 모두 체포하고 몸값까지 뺏어왔다.ⓒ
    ▲ 2008년 4월 해적들은 프랑스 선적 요트를 피랍한 뒤 몸값을 요구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들어주는 척하다 특수부대를 투입, 해적들을 모두 체포하고 몸값까지 뺏어왔다.ⓒ

    한편 국토해양부에서는 향후 인도양 및 소말리아 인근 해역 등 해적 출몰이 잦은 곳을 지나는 선박 중에서 속도가 15노트(약 27km/h) 이하, 건현(배가 가장 많이 잠길 때 수면부터 갑판까지 높이) 8m 이하인 배에는 반드시 보안요원을 탑승시키도록 하고, 긴급 시 선원들이 대피할 수 있는 시설(citadel)을 갖추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규정을 적용할 경우 현재 우리나라 선적인 배 861척(2009년 12월 기준) 중 약 84%가 따라야 한다. 하지만 선사들은 비용 문제로 난색을 표하고 있어 규정이 지켜질 지는 미지수다. 결국 한동안 한국 국적 선박들은 ‘위험한 항해’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해적이 피해가는 나라들

    그런데 소말리아 해적들이 건들지 않는 배들이 있다. 바로 러시아와 북한, 프랑스 선박들이다. 이들은 대체 어떻게 했기에 해적들이 피해갈까. 답은 간단했다. 해적을 보는 즉시 ‘사살’하거나 ‘체포’했다. 2008년 4월 4일 프랑스 선적의 요트가 해적들에게 피랍당하자 프랑스 정부는 몸값을 지불하는 척하면서 대테러부대 GIGN을 투입해 육지까지 쫓아가 해적들을 모두 체포했다. 몸값도 물론 되찾았다. 프랑스는 같은 해 9월 2일에도 피랍된 요트를 급습, 해적 1명을 사살하고 6명을 체포했다.

    러시아는 더 했다. 2008년 해적들은 러시아 선적 유조선을 납치했다가 러시아 구축함 ‘마샬 샤포쉬니코프호’에 있던 특수부대원들에게 모두 체포됐다. 러시아 해군은 해적들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무동력 고무보트에 태워 해안에서 2,200km 떨어진 곳에다 풀어줬다. 같은 해 11월 15일 해적이 또 러시아 유조선을 납치하자 러시아 정부는 ‘함대’를 파견했다. 놀란 해적들이 ‘인질들을 풀어주겠다’고 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범죄조직과의 협상은 없다’며 작전을 전개했다. 결국 해적들은 전원 사살되고 인질은 무사히 구출됐다. 이후 2009년부터 소말리아 해적은 러시아 선박을 건드리지 않는다.

  • ▲ 러시아 해군 특수부대에 체포된 소말리아 해적들. 선원들은 피신처(citadel)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 러시아 해군 특수부대에 체포된 소말리아 해적들. 선원들은 피신처(citadel)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선박 피랍 때도 정부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해적과의 협상은 없다’면서도 영국계 브로커를 통해 선주와 해적이 협상하는 것을 지원한다며 그 비용을 고스란히 선주에게 떠넘긴 것, 제대로 된 인질구출계획 한 번 펼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니 북한조차도 ‘한국 정부는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국격’도 좋고 ‘G20’도 좋고 ‘선진국’도 좋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 국민을 건드리면 그 누구도 무사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